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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읽어주는 여자(소노 아야코)

한 남자를 사랑할 때

어떤 사랑이든 마음을 뒤흔드는 그리움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불타는 사랑이 사라졌을 때 가늘고 불꽃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용서의 감정이 필요하다. 이 역시 다른 형태의 사랑이라 할 수 있다. 용서는 높은 쪽에서 낮은 쪽을 하는 것이 아니다. 용서는 마음 깊이 포용하는 감정일뿐 결코 영웅적인 것이 아니다. 대체로 여자들은 남자보다 운동력이나 지성이 떨어진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을 믿는 맹목적인 힘 만큼은 남자보다 뛰어나다. 사실 여자라고 해서 마냥 다정하거나 섬세한 것은 아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잔인해지는 것이 여자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그것을 완수할 수 있는 힘은 일부는 이성적인 계산이요, 나머지는 광적인 집착이다.

 

가정생활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비판자보다 지지자가 되려는 노력이다. 설령 남편이 잘못했더라도, 주변 사람에게 비판해서는 안된다. 비판만으로 남편을 성공시킬 수 있을까? 남에게 다소 빈축을 산다해도 무조건적 으로 믿고 지지해주는 것이 슬기롭지 않을까? 지식도 마찬가지다. 나라면 만일 남편이나, 아들이 죄를 지어도 맹목적으로 그를 믿는 어머니가 될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제아무리 악평을 한다한들 나만은 자식의 편에 서리라. 그것이 어머니의 의무이고, 본능이고, 특권이 아닌가? 아내가 활기차게 일하면, 그 일에 만족한다면 남편으로서도 마음이 편하다. 게다가 남편 인생의 깊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내가 느끼는 보람도 커다란 관심거리가 될수 있다. 아내들은 집에 있다 보면 종종 시간이 남아돈다. 그녀들이 관심을 두는 것은 그저 남편의 동료들과 그의 가족과 친척들사이의 일, 집안의 정돈, 아이들과 학교 문제들 뿐이다. 그러나 직업을 가진 아내는 한 단계 나아가 조직의 힘이라든가, 남편의 세계에도 흥미를 느끼며 혹은, 예술적인 분야에 관심을 쏟기도 한다.

 

직업이란 사회와의 직접적인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일이다. 여자는 직업을 포기하고, 남편의 그늘 아래서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싫어, 한 인간으로서 사회와의 유대룰 맺고자 한다면, 결코 물러서지 말라. 직업이란 울든 웃든 타인과 약속한 일에 책임을 지는 일이다. 여자가 일을 하다보면 매력적이든 그렇지 않든 문제를 일으킨다. 매력이란 의식적으로 꾸미려 들수록 그 빛이 흐려지며, 적어도 동성들에게는 불쾌감을 불러일으킨다직장에서 누구에게도 폐가 되지 않고, 매력을 살릴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모성을 발휘하는 일이다. 간호원이 백의천사라 불리는 것도 직업상 모성의 요소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대다수 여자들은 일단 사랑에 빠지면 깊이 몰두하므로, 한 남자를 사랑하면 음식의 기호나 인생관까지 영향을 받는다. 사람들은 평범한 행복을 꿈꾸면서도 그런 것에는 무심한 영웅적인 인물들을 좋아한다. 사랑은 목적과 방향을 가지고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벼락을 맞듯 '피습 당하는 것'이다. 예컨대 사랑이란 객관적인 진실이 아니다. 사랑은 얼마만큼 상대를 오해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어떻게 말하면 어리석은 일이지만, 그만큼 상대를 과대평가할 수 있다는 것도 하나의 재능이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요즘은 사랑에 목숨을 건 사랑이 없어졌다고. 사랑의 향기를 자극하는 첫째 요소는 자신의 사랑이 지지받지 못한다는 고독감이 있기 때문이다. 사회규제가 강하고 전쟁으로 인해 피폐했던 시대에는 사랑하면서도 결합할 수 없었던 연인들이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지금의 연인들에게 본질적으로 뛰어넘어야 할 고난 자체가 별로 없다. 결국 사랑은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이 되었고, 그로 인해 ‘사랑의 불신’과 같은 말이 그럴 듯하게 포장되어 공공연히 떠돌고 있다. 누구나 직장이든 가정이든 미움으로 이루어진 관계도 있다. 그러나 미움의 관계라도 일단 유지되고 있다면 그다지 절망할 필요는 없다. 사랑과 미움은 단지 그 표현이 안과 밖을 이루고 있을 뿐이다. 바꿔 말하면 미움은 상대에 대한 관심이니 그나마 나쁘지 않다. 관심없는 상대에게는 미움도 사랑도 가질수 없기 때문이다.사랑하는 줄만 알았던 관계가 한 순간에 무너지는 경우가 있다. 나는 사랑과 미움 중 무엇이 보다 안정된 것이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미움의 감정이라고 답할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마치 인간의 추한 면만 내세우는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사실 인간은 누구나 때에 따라 친구의 실패를 바라기도 한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그가 성공할 경우 자신이 초라해질까 하는 걱정일 수도 있고, 그간 묵은 감정 때문일 수도 잇다.

 

대개 사랑은 그것에 이르기까지 피눈물 나는 일들을 겪어야 하고, 일단 도달했다 해도 언제 깨져버릴지 모른다. 물론 그로 인해 그 사랑의 소중함이 절실해지기도 한다. 누군가를 사랑한다 해도, 언제나 마음으로부터 사랑할 수 있는건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사랑이 식었다 한들 태도만은 언제나 상냥해야 한다. 사랑은 거기서 다시 시작되니까. 마음속으로는 어떻든 최소한 겉으로 나타나지만 않으면 되는 것 아닌가. 사랑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배반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랑을 과신해 배반의 결과에 절망하게 되는 나약한 정신이다. 아내가 하는 일은 남편에게 약간의 도움을 줄뿐, 그를 조종하는 기술이 될 수 없다. 차라리 지나치게 유능한 아내보다는 다소 무능한 아내가 남편에게 도움이 된다. 아내는 남편의 장단점을 모두 인정해야 한다. 똑똑한 남편은 아내의 칭찬을 곧이 곧대로 듣지 않는다. 사실 아내든 남편이든 평소 괴로운 일 투성이다. 집에 돌아와서까지 비판을 받거나 이래라 저래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회의와 슬픔만 쌓인다. 자신의 약점을 보여줄 수 있는 관계, 그것이 바로 부부다. 때로는 아내가 재산을 갖고 있는 경우, 그것이 곧잘 문제의 씨앗이 된다. 남편이 그 돈으로 허황된 꿈을 꾼다면 어떻게 될까? 이럴 때 가정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대답은 간단하다. 아내가 다시 빈털터리가 되면 된다. 하지만 아내가 그 재산을 지키려 들면, 그 사이의 신뢰는 어김없이 깨지고 만다. 부부는 함께 상처를 나누려 하지 않는 순간, 당장 남이 되는 법이다.

 

남편이 출근했다 오늘도 퇴근한다. 늘 같은 물음을 던지니 돌아오는 대답도 시원찮다. "별일 없었어“ 물론 하루종일 회사에 별일 없었을리 없다. 아내는 하루종일 기다린다. 저녁 무렵 남편이 그녀에게는 너무 먼 곳에 있는 사회의 활기를 품고 돌아와 주기를 말이다. 그러나 남편은 밥상을 앞에 놓고 무미건조하게 숟가락질하며 텔레비전만 본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한테도 ”오늘 학교에서 무슨 일 없었니?“라고 물어보지만, 역시나 ”아무 일도 없었으요“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아이는 시큰둥한 대답을 마치자마자 냉큼 놀러가 버렸다.  사실 아내가 무심하고 허무한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조직속에서 대화는 이렇다. ”그거 있잖아. 어제 그거 그걸 그리로 보내줘” 이런 식의 이야기가 통해야만 비로소 굴러가는 것이 사회다. 남편으로서는 결코 그런 곳의 이야기를 꺼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남편은 애당초 '회사라는 곳은 비정하고 민주적이지 않다'라는 좋지 않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 아내가 자기 생활을 궁금해 여기는 것을 즐겁게 여기는 남편들도 있다. 아내는 남편 이야기에 무언가 의견을 덧붙이려 하기보다는 오늘 있었던 자기 일을 즐겁게 조근조근 얘기하는 것이 더 좋다. 나는 여자의 수다를 미덕으로 본다. 정작 남편은 진지하게 듣지 않을지라도 여자의 수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가정의 행복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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