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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읽어주는 여자(소노 아야코)

출발에 서서

집이나 혼수를 마련해 가는 결혼은 수치스럽다. 차라리 약점을 가지고 가는 편이 낫다. 혼수 때문에시작부터 문제가 생긴다면 차라리 결혼을 단념하는 것이 낫다.  부자보다는 가난한 집, 지위있는 부모보다는 가난한 부모밑에서 자란 이들이 순수한 사랑을 만들어낸다. 처음에는 사랑하지 않았지만 몇십년이 지나면서 좋은 부부가 된 사람들도 얼마든지 많다. 이런 부부들은 대다수 남편은 인내심이 강하고 성실하며, 아내는 관대하다.  한마디로 참을성 없는 남자나, 이유없이 남편을 볶아대는 여자는 결혼이라는 불가사의 하고도 아름다운 자각에 이르기 힘들다. 가정은 생각하기에 따라 삶의 안식처가 되지만, 삶의 전쟁터가 되기도 한다. 가정이란 본래 미완성이다나는 지금껏 완벽한 가정을 본 일이 없다. 부부는 누구나 장님에 벙어리다. 게다가 이 문제는 죽을 때까지 해결되지 않는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평범한 것, 범용한 것을 위대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대통령의 가정도 역시 부부가 이루는 것인 이상, 본디 범용한 것이고, 범용해야한다. 만약 비범하다면 그 비범함으로 인해 그 부부는 필경 괴로움에 빠진다. 그러나 평범한 부부도 20년이나 30년, 어쩌면 50년을 살아가려면 관대함과 동시에 동정과 체념 등을 익혀야 한다. 범용이야 말로 한없이 보편적이고도 아름다운 가치이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이 쓰러지는 서부활극이나 스파이 영화를 좋아한다.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고 여행을 좋아하고, 시골을 좋아하고, 만화를 좋아한다. 이런 소소한 일치점은 살아가면서 얻어냈다. 우리 두 사람은 이 정도면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머지야 그런 상대를 고른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마라. 생활에 두 사람의 통치자가 있어서는 곤란하다. 아내는 특별히 남편을 도와줄 필요가 없다. 아내는 그저 건강하고, 태평스럽고, 자질그레한 일을 귀찮아 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아내는 내조의 공을 의식하는 순간 남편의 일을 참견하게 된다.  그러다가 핀트가 어긋나 짐만 되고 만다. 똑똑한 남편은 아내의 도움 없이도 훌륭하게 해나간다. 물론 예외도 있다. 요컨대 남편이든 아내든 통솔자와 비통솔자가 분명히 갈라져 있으면 문제 될 것이 없다. 훌륭한 사람은 훌륭하지 않는 사람과 있는 것이 낫다. 훌륭한 사람은 나름대로의 책임감과 아량으로 훌륭하지 못한 쪽을 위로하면 된다. 그 힘의 관계만 분명하다면 어떤 부부도 아름다워질 수 있다. 힘의 관계란 지위를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서로 인정해 주고, 나름대로 주어진 역할만 충실하면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도 지나치게 멋스러운 부부는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반면, 익살스러운 부부는 안정감이 있다익살스럽다는 것은 서로에게 약점을 내보이는 것과 다름없다. 따라서 그 약점을 사랑하고 나면 그 부부는 어떤 일이 있어도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아름다워서, 훌륭해서, 돈 때문에 서로 사랑하는 거라면, 늙거나 병들 경우 한쪽이 다른 쪽을 버리게 된다. 그런 부부들은 겉으로는 다정해도 한구석에는 어두운 면을 가지고 있다. 집안이 즐거워지려면 우선 남편이 정신적, 경제적으로 독립해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높은 사회적 지위에 있어도 여전히 아내에게 의존하는 젖먹이 같은 남자도 있다. 이런 가정은 참으로 딱하다. 나는 한 집안의 아버지를 생각하면 항상 서부 개척자들이 생각난다.  몇 달씩 포장마차를 몰고 서쪽으로 달리는 아버지, 광야를 헤치고 손수 나무를 잘라 집을 짓는 아버지, 그 아버지들은 비록 남루하고 학식도 없었지만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가족을 책임질수 밖에 없었다. 가난해도 좋다. 개척자처럼 굳세면 된다.

 

가정이란 내부에서 힘이 넘칠 때 밝아진다. 이미 마흔에 가까운 매력없는 여성, 흰머리카락, 주름살, 늘어진 피부, 슬프고도 흉하기 짝이 없다.  그러니 이제는 웃음으로 이를 가릴수 밖에 없다.  그런데 거기에 불쾌한 표정까지 드리워지면 어떻겠는가?  대다수 아내들은 온종일 가만히 앉아 남편의 외도, 돈, 시부모에 대한 불만을 껌씹듯 되새기며 남편의 귀가만 기다린다. 물론 피로에 지쳐 돌아오는 남편이 대꾸해 줄리 없다. 물론 외도나 경제문제는 기분전환 정도로는 햬결할 수 없는 중대사이다. 따라서 문제가 커지기 전에 양쪽 모두 깊이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부부가 어떻게 날마다 웃고만 지낼수 있겠는가? 하지만 상황이 심각해진 뒤에는 웃는 습관을 들여도 그 실행이 힘들다. 그러므로 심각한 위기에 빠지기 전에 한쪽이 먼저 여유를 되찾으면, 거북한 말도 웃으며 할 수 있게 된다.

 

결혼이 없었더라면 나는 영영 내 약점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부부는 결혼을 통해 비로소 상대의 성격을 발견한다. 이후문제는 어떻게 그것에 대처해 나가는가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진짜 피 터지는 싸움이다. 어느 부부도 늘 완벽할 수 없다. 자신의 모습 생각지 않고 상대방만 비난하는 것은 어리석다. 충분한 위로를 받으려면 감사의 마음을 잊지말라. 부부관계는 양보의 미덕 없이는 지속되기 힘들다. 충성심은 대개 맹목적이다.  똑똑해서  눈밝은 사람보다 아둔하지만 한결같은 사람이 더 행복하다. 함께 사는 동안은 무조건 충성해야 한다고 마음 먹는 것이 편하다. 현명하든 그렇지 않든 충성심은 행복을 낳는다. 수 많은 연인들과 부부들이 약혼에서 결혼까지 결혼후에는 헤어지든가, 죽을 때까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싸움을 하고 있는가? 어느 순간에 다다르면 이제 저 인간 얼굴은 보기도 싫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보통 부부들은 아무리 격렬하게 싸워도 그 싸움의 이유를 오래 기억하지 않는다. 만약 기억한다면 그 싸움은 꽤 뿌리깊은 원인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그 연인이나 부부사이에는 이미 금이 가고 있다고 봐도 좋을 것이 . 싸우고 난 후 어느 쪽이 사과를 하든, 누가 잘하고 누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극히 적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결국 양쪽 다 잘못이 있다. 한편 남편이 열등감이 많으면, 자연스러운 화해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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