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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읽어주는 여자(소노 아야코)

내 마음의 등불

굶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이 훈훈해진다. 대지에 누워 별을 바라보며 원만한 삶을 살아가는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평범하면서도 아름다운 일생이 아니겠는가? 내가 생각하는 정직함이란 가장 먼저 허영심이나 관계에 의지하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 또한 나는 인간에 대한 자유로움을 잊지말기를 바란다. 나는 최소 한번 쯤은 아들에게 정장을 입혀 으리으리한 레스토랑의 까다로운 코스요리를 먹인다. 어떤 장소에서도 얼떨떨해지지 않도록 만들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나머지 364일은 차가운 땅바닥에서라도 잘 수 있도록 단련시킨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거치다 보면 누구나 자신이 한없이 평범한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본질적으로 가치기준으로 보면, 돈이나 집, 직함 따위가 별 의미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면 누군가를 만났을 때 장소나 의복 때문에 상대에 기죽지 않고, 얕보지도 않게 된다. 한마디로 상대를 오직 한사람의 소중한 인간으로 마주하게 된다.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알수 없다. 더구나 앞으로 다가올 미래는 더욱 복잡하고 급격하게 변할 것이다.

 

대체로 생활이란 것은 고민을 내포한다. 옛날에는 가난 때문에 힘든 사람이 많았지만, 지금은 절대빈곤이 감소했을 뿐아니라, 대다수 사람들이 누구나 귀천없이 살아야 한다는데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그 동의 역시 한계를 지닌다. 권리라는 것은 다만 기본적인 선까지만 평등할 뿐, 나머지 개개인이 지닌 성격, 운, 불운, 재능 등의 조건에 따라 확연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생활이란 그와 관련된 모든 방식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다. 텔레비젼 처럼 다 만들어 놓은 작품을 떡 받아 먹듯 받아먹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노력해서 얻어야만 진정한 내것이 아닐까. 대다수 보모들이 자식의 인생은 내 소유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막상 그것을 실천하지 못한다. 그 자식이 아내애게도 어머니와 똑같은 모습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머니 만큼은 잘해줄 여인은 없다. 그건 여자도 마찬가지다. 어머니와 너무 강한 유대감을 가진 딸은 결혼해서도 남편과 진정한 부부가 될 수 없다. 진정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라면 일치감치 그 자식을 떼어놓아야 한다.

 

설사 고아가 되더라도 그가 홀로 서서 사람들과 믿음을 나누며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식이 좋아하는 길을 인정해 주는 수 밖에 없다. 부모가 한평생 자식의 생활을 책임질수 없기 때문이다. 현실은 끝이 없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밝은가 하면 어둡고, 끝없는 수렁이 펼쳐지다가도 발디딜 곳이 생기며, 긴 것 같으면서도 짧고, 움직이는가 싶다가도 어느새 멈춘다. 자식들에게는 이해심 많고 펑화로운 가정이 훨씬 도움이 된다. 그러나 완전한 가정을 만드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므로 부모들 또한 자신의 가정이 삐뚤어져 있다고 해서 마냥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 사실 요즘 사회적으로 더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가정의 불완전함 그 자체보다도 모성을 잃은 어머니와 관련된 것이다. 나는 자식에 대한 사랑을 특별히 숭고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본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누구든 자식을 키우면서 이를 숭고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더없는 착각이고 오만이다.

 

한 인간이나 여자로서가 아닌 어머니로서만 살아온 사람들은 노년기에 어둡고 음울해지기 쉽다. 어머니로서의 역할에만 충실해 왔으므로, 이제 무엇을 해야 좋을지 모르게 되는 것이다. 그럴 때 그들은 인생이 끝나 버렸다고 생각한다. 부모로서 자식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도움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아무 대답도 할 수 없다. 그것은 질문하는 사람이 더 잘 알기 때문이다. 나는 부모로서의 모습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틀을 세워본 적이 없었다. 부족해도 어쨌든 열심히 사는 모습만 보여준다면, 그것으로 얼마든지 족하다고생각한다. 식물이 스스로 가랑잎을 거름으로 삼듯, 노력하면서도 언제나 실패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그 자체로 자식에게 거름이 된다. 자식은 그런 어머니를 통해 새로운 시선에서 인간이라는 존재를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무언가 려주려고 애쓰는 부모보다는, 짐을 남겨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부모쪽이 훨씬 믿음직스럽다. 그렇다 사실 곁에서 오래 살며 그 곁에 있어 주는 것, 그것이야 말로 평범한 어머니가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이다.

 

겉으로는 아무리 행복해 보여도 누구나 그 마음 밑바닥에는 괴로움이 있다. 그중 가장 큰 괴로움을 찾는다면 바로 자신감을 잃는 것이 아닐까. 여자들은 대부분 남자가 자기를 인정해 주기를 기다린다. 평범한 가정주부들도 사소한 일로 자신감을 잃는 것이다. 사실 주부 입장으로 사회와 유대를 맺는 일은 결코 만만치가 않다. 그렇다고 틀어박혀 집안 일만 한다고 해서 누구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가족들은 매일 같이 보내는 하루 하루가 그저 공으로 얻어진다 생각해, 아내 또는 어머니의 일을 특별하게 생각해주지는 않는다. 그냥 운명이라 생각하는 것이 마음 편하다. 나는 큰 일은 스스로 결정하되 사소한 일들은 운명에 휩쓸려 흐르기로 했다. 아무래도 어쩔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사람의 힘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은 고작 저녁 반찬거리 정도이며, 그나마도 시장가면 다 팔렸거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물며 운명이라면, 그 무엇도 결정하기 힘들다. 20세기말에 저마다의 부모밑에서 태어난 것, 과연 이것을 우리의 의지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그 운명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자연스럽게 흘러가자는 생각은 나를 지켜준 기본적인 믿음이었다. 비록 그 흐름의 끝이 죽음이라 해도 삶이란 어차피 마지막을 향해 흐르는 것이므로, 당당하게 받아들일줄 알아야 한다. 이렇게 보면 틀어박혀 집안 일만 한다고 해서 고독한 것도 아니다. 누구에게 칭찬받지 못해도 그 모습은 그 자체로 완결되어 빛나고 있다. 평가받고 싶어하는 사람은 늘 아등바등하기 마련이다스스로 만족한다면 남이야 뭐라든 개의치 않아도 되지 않을까? 정신과 의사들은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라고 한다. 괴로울때는 괴로워 하고, 잠이 안올 때는 잠자려 애쓰지 말며, 억지로 소설을 쓰려고 하는 어리석은 강박도 고치라 했다백치 여인상인 “여자의 일생” 주인공 잔느, 여자가 어리석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도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 여자는 항상 자신이 불행하다고 착각해, 타인들이 자기의 신세타령을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상이나를 정당하게 평가해 주지 않아도 적당히 넘어가고 익숙해져야 한다. 비록 손해를 볼지언정 가능하다면 거기서도 묘미와 아름다움을 찾아야 한다. 반면 누군가는 과분한 평가를 받고 부당한 득을 본다. 그리고 이런 엉터리 같은 일조차 즐겁게 여겨지지 않는다면, 어찌 이 세상에서 꿈을 가질 수 있겠는가?

 

고독은 누구나 싸워 이겨야 하는 상대다. 고독은 본질적으로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친구나 가족들은 안정과 즐거움을 준다.  하지만 우리가 진정한 고독을 느낄 때는 친구도, 부모도, 배우자도, 자신을 구원해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다. 그 순간의 절망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그러나 인간은 천지가 생긴 뒤부터 하나같이 고독이라는 문제로 고민해 왔으며, 이같은 범인간적인 운명을 혼자만 모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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