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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하게 늙고 싶다.(소노 아야코 지

아름다운 노년의 모습

노인이 되어서도 인생의 목적과 목표가 필요하다. 나이가 들수록 경제적인 가치가 창출되는 자기만의 일이 중요하다. 내가 열심히 한 일에 대가를 받는다는 것은 사회에 소외되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노인이 건강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비결은 '사는 보람'이다. 즉 어떤 목적이 필요하다. 누구를 막론하고 타인이 삶의 이유랄까, 목적을 대신 가르쳐 수는 없다. 그 사람이 희망하는 바를 이뤄주기 위해 도와주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삶의 목적은 본인 스스로 결정해야 될 문제이다. 노인이 되었어도 인생은 목표를 요구한다. 그것 없이는 제대로 살아갈 수 없다.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산다는 것은 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어서도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노인이 되어서도 청소 같은 것은 하찮다고 무시한다면 한심할 따름이다.  노년에는 시시하다고 사회가 경시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도맡아야 한다. 그것이 아름다운 모습이다. 일한다는 것은 밖에 나가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손자를 돌보는 일인데, 손자가 근처에 살지 않거나 함께 살지 않는다면 어렵다. 그런데 음식을 만들고, 청소를 하고, 세탁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즉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활동이다. 이런 활동을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귀찮아서 하기 싫은 생각이 드는 까닭은 남이 억지로 시켜서 몸을 억지로 움직였기 때문이다.  '한번 해볼까' 하고 도전한다면 집안 일도 한가로운 시간에 즐길수 있는 놀이가 된다.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이 되면 행복해진다. 받기만 하는 사람은 더 많이 더 좋은 것을 받고 싶어한다. 이것이 채워지지 않으면 '배우자가 무엇을 해주지 않는다, 며느리가 무엇을 해주지 않는다' 라면서 불만이 쌓여간다. 반대로 주는 사람이 되면, 작은 것을 베풀어도 즐겁다. 상대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이면 기쁨은 한층 더 커진다. 어른이 될수록 주는 것이 더 많아진다.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안아주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학교를 보낸다. 어릴 때는 그저 받기만 한다. 인간은 받기도 하고 주기도 한다. 그러나 나이를 먹을수록 주는 것이 더 많아진다. 장년쯤에는 거의 주기만 한다. 그리고 노인이 되면 다시 받는게 늘어난다. 잠자코 받기만 한다면 아이나 다름없다. 감사 인사를 잊지 않는다면 주는 사람도 무척 기뻐할 것이다. 차 한잔을 대접 받고도 말없이 당연한 것처럼 마실 때와 '잘 마실께요'라고 말할 때 상대방의 기분은 극과 극이다.

 

서로 절충할 수 있는 부부가 되어야 한다. 남은 인생이 길지 않으므로, 이 나이가 되면 서로 살고 싶은 대로 살게끔 인정해 주는 것이 마땅하다.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부부사이에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사는 것이 별로 힘들이지 않고 서로의 개인적인 부분도 타협하고 지내기가 편하다. 나이든 부부가 절충을 받아들인다면, 사이가 좋아진다기보다는 각자의 생활이 편해진다. 그로인해 서로 인생의 파트너로 살아갈 수 있다. 친한 사람에게도 예절을 지켜야 한다. 부모가 자녀에게 베풀수 있는 중요한 유산중 하나가 깨끗한 이별이라고 생각한다. 자녀를 가르쳐 최종적으로 독립이 가능한 상태에 놓였을 때, 자녀앞에서 아무렇지도 않은듯 조용히 사라지는 것이다. 나는 아이에게 짐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을 무렵, 다행히 아들은 내 품을 떠나 그의 인생을 걷기 시작했다. 한동안 경제적으로 보살펴 주었지만, 대학을 입학하던 그때 자녀 교육은 끝이 났다. 그후로 35년 가까이 지냈다. 아들은 내 품에서 살았던 세월의 배가 넘는 시간을 홀로 걸어왔다. 취미도 세상을 보는 눈도 나와 다른게 당연하다. 그래도 항상 걱정스러운게 부모 마음이다. 이프다고 하면 불안하고 하는 일이 잘 안된다고 하면 노심초사하며 성공 하기를 기원한다. 그나마도 이런 마음에 대해 오랫동안 잘 알고 지낸 사람이니까 그냥 염려하는 정도로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하루 뿐이라면 모든 사람이 어렵지 않게 좋은 사람이 된다.  문제는 이를 지속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매일 저녁 얼굴을 마주하다 보면 흠이 보이기도 한다.  언제나 상냥하게 다가간다는 것은 여간해서 할 수 없다.

 

2010년 판 일본백서에 65세이상의 고령자와 자녀 동거비율이 1980년대 70%였는데, 1999년에 50%로 줄고, 2008년에는 44.1%로 크게 줄었다. 연령이 낮을수록 자녀와의 동거비율도 낮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2005년도 고령자 대상으로 마음의 지주가 되는 사람이 누구인지 물었다. 과반수 이상이 자녀를 꼽았다. 60세이상의 고령자와 독랍한 자녀의 접촉 빈도수를 조사한 결과 거의 없다는 대답이 53.2%였다. 자녀와의 관계에서 소외된 부모가 과반수 이상이라는 뜻이다. 아직도 늙으면 자식이 돌봐주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거나, 자녀에게 노후를 맡기려는 부모가 적지 않은데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서 기본은 자립이다. 아들이든, 딸이든 버리고 싶어한다면 부모로서 버림을 받아주어야 한다. 그런 부모를 보면 자식농사를 실패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진실은 당사자만이 아는 법이다. 남의 일에 함부로 판단을 내세우는 것은 교만이다. 세상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보답받지 못하는 일이 얼마든지 있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더 많다. 자녀가 그렇게 된 것은 상당부분 부모의 책임이다.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현상중 하나이다.

 

뭐가 문제인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해서, 내 인생이 실패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자녀의 불효는 깨끗이 잊어버리고, 그때그때 즐거운 기분이 드는 아름다운 것을 바라보며, 남은 인생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만에 하나 자녀가 좋은 소식을 전해왔을 때 '잘 됐구나'하고 기뻐해주고, 자녀가 범죄를 자질러 교도소에 수감되면 출소한 날 저녁에 대문을 열어주고 밥을 지어 먹여야 한다. 자녀가 어떻게 행동하든 이를 받아주는 것이 부모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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