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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코그니토(INCOGNITO): 데이비드 이

왕좌에서 물러난 인간(2)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같은 미생물은 내부에서 보이지 않는 전투를 벌이며, 특정한 방식으로 우리를 지배한다. 광견병 바이러스가 그 예이다.  작은 총알 모양의 이 바이러스는 포유리끼리 깨무는 행동을 통해 신경을 기어올라 뇌의 측두엽으로 간 다음, 그곳의 뉴런들에 자신을 맞추어 넣는다. 그리고 그곳의 활동패턴을 바꿈으로써 감염된 숙주에게 공격성, 분노, 물려는 성향을 유발시킨다. 또한 이 바이러스는 타액선을 타고 이동하는데 그 과정에서 다음 숙주를 물게 만들어 바이러스를 퍼뜨린다. 동물의 행동을 조종함으로써 다른 숙주에게 퍼져 나가는 것이다. 헌틴턴병은 전두엽피질을 서서히 손상시키며 성격의 변화를 낳는 병으로 작은 돌연변이 유전자가 원인이 된다. 이 병에 걸린 사람들은 지나친 공격성 혹은 성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드러내거나, 충동적인 행동을 저지르게도 하고 사회규범을 무시하기도 한다. 헌틴턴병 환자에게 자신의 의지로 이상한 행동을 하지 말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니코틴, 신경전달물질, 호르몬, 바이러스, 유전자 등 보이지 않을만큼 미세한 분자들은 우리의 행동이라는 운전대에 제각기 손을 올려놓고 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이면에 존재하는 기계의 변화는 당신에게 영향을 미칠수 밖에 없다. 당신을 어떠한 존재로 규정할지는 다양한 요인들로 이루어진 거대하고 복잡한 네트워크에 달려있다. 따라서 분자와 당신의 행동을 일대일로 연결짓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아무리 복잡해도 당신이라는 세계가 생물학적 시스템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것만은 분명하다. 모두들 인간 게놈프로젝트에 의해 한번쯤 들어 보았을 것이다. 이는 30억개에 달하는 인간게놈의 모든 염기서열을 해독하기 위한 프로젝트로서 1990년에 시작하여 2003년에 완료 되었다. 이 프로젝트 목표는 30억개 정도되는 염기서열뿐 아니라, 이 데이터에 포함된 유전자를 찾아내는 것이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에 의하면 인간유전자는 모두 2만 5천개 정도라고 한다. 인간의 게놈을 해석하게 되면, 암이나 알츠하이머 같은 유전자 관련 질병을 치료하는데 결정적인 해결책이 되어 줄 것이다.

 

하지만 일부 어떤 의미에서는 실패에 그친 프로젝트이다. 유전자의 전체 코드를 해독하긴 했지만, 인간의 고유한 유전자를 찾는데는 실패했기 때문이다. 대신 생물학적 유기체의 기본을 구성하는 거대한 원리와 다른 동물도 인간과 본질적으로 같은 게놈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인간과 동물을 이루는 기본적인 구성요소는 동일하지만 배열이 다르다. 겉모양은 이렇게 다른데.... 이는 공장을 둘러보면서 거기서 쓰이는 여러 나사들을 자세히 살펴봐도 최종 상품이 토스트기인지 드라이어기인지 알수 없는 것과 같다. 다른 기능의 제품으로 만들어졌다 뿐이지 뜯어보면 양쪽다 비슷한 부품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은가?  실제 하나의 돌연변이 유전자와 한가지 질병이 매치되는 경우는 드물다. 대다수 질병은 10개 혹은 심지어 수백개의 유전자들이 작용하여 발생한다. 게놈의 영향력은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고려해야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정신분열증을 연구한 결과 이민자들의 경우 이민간 국가의 문화나 외모와 많이 다른, 이민자 집단이 정신분열증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한다. 사회의 다수 집단에 수용되지 못하면, 정신분열증이 발병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계속되는 사회적 좌절이 도파민시스템의 정상기능을 방해하는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문화적인 유산과 혈통을 자랑스러워 하고, 편안해 하는 사람들은 더욱 안정된 모습을 드러냈다.

 

유전이 정신분열증에 일정한 역할을 한다. 유전자와 환경의 조합이 최종결과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인간의 성향을 사전에 결정짓는 유전자가 있다. 하지만 실제 우울증에 걸릴지는 살면서 겪은 사건들에 달려있다. 분명 우울증에 걸릴 성향을 제공하는 유전자 조합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나쁜 사건들을 많이 경험할 때만 발현된다. 그들이 운이 좋아 괜찮은 인생을 산다면, 그런 성향의 유전자를 타고났다고 하더라도 남들보다 우울증에 더 잘 걸리는 것은 아니다. 당신은 신체도 환경도 마음대로 선택한 것이 아니다. 그 둘의 얽힌 상호작용은 말할 것도 없다. 당신은 유전자 설계도를 물려받아 그저 주어진 세상에 태어나 형성기의 대부분을 보낸다. 사람들마다 세상을 보는 방식이. 성격이, 의사결정 방식이, 다른 이유다. 이것들은 선택 가능한 사항이 아니다. 예초부터 자기에게 주어진 카드패라 하겠다. 유전자와 환경은 서로 얽히면서 어마어마한 복잡성을 만들어 낸다. 따라서 개인이 어떤 식으로 발달해 갈지를 이해하려면 긴여정이 필요하다. 한평생의 경험과 대화, 학대, 즐거움, 섭취한 음식, 처방 받은 약, 교육수준 등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는 대단히 복잡한 과정이다.  우리가 분자의 단백질과 뉴런들에 묶여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을 조각과 부분으로만 설명하는 것은 논리적이지 않다. 우리가 스스로를 구성하는 세포들에 불과하다는 극단적인 환원주의는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는 출발점이 되지 못한다. 시스템이 조각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게 시스템을 움직이는 데 중요하다고 해서 그것이 전부라고는 볼수 없지 않은가? 

 

작은 부품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뇌에서 살펴본 것처럼 니코틴 추가나 신경전달 물질의 수치변화, 돌연변이 유전자 등은 사람의 본질을 바꾸어 놓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당신이 나사와 점화점을 변경한다면. 자동차 엔진은 다르게 작동할 것이다. 차의 속도가 빨라지거나 늦어져 다른 차와 충돌사고를 일으킬지도 모른다. 교통흐름은 그러한 부품들의 통합에 달려 있다. 부품 하나하나를 살펴보면 그만큼 의미가 크지 않다. TV 프로그램이 왜 재미있는지는 텔레비전을 구성하고 있는 부품을 연구해서는 알수 없다. 프로그램에 재미를 느끼는 것이지 부품에 재미를 느끼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마음 또한 뉴런들의 통합에 달려 있는 것이지, 뉴런 자체가 사고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발달과정이나 신체구조를 연구하는 인간생물학은 화학과 물리학으로 환원될 수 없다. 대신 진화, 경쟁, 보상, 갈망, 명성, 탐욕, 우정, 신뢰, 배고픔 등의 독자적인 언어로 이해 되어야 한다.  당신의 뇌는 당신이 누구인지 판단하는 게임의 유일한 참여자가 아니다. 뇌는 내분비물은 물론 면역시스템과 끊임없이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 보다 큰 신경계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신경계는 영양상태, 중금속 오염, 대기오염 등과 같은 화학적인 환경과 분리될 수 없다.

 

당신은 각종 상호작용으로 생물학적 뇌를 바꾸고, 그로인해 행동이 바뀌는 복잡한 사회적 네트워크의 일부다. 어떻게 당신이라는 존재를 정의해야 하는가? 유일한 해결책은 당신다움이 가장 집중적으로 밀집된 곳이 바로 뇌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산의 정상이지 전체는 아니다. 과학자들은 종종 최절약원리를 내세운다. '오컴의 면도날'처럼 가장 단순한 설명이 옳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최절약 원리가 보여주는 간결함에 무조건 넘어가서는 안된다. '최절약원리'야 말로 더욱더 흥미롭고 생산적인 토의를 저해해 왔다. 과학적인 문제를 한쪽 방향으로 몰아 해결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우주가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큰 것처럼 우리 자신은 우리가 직관적으로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거대하다.

 

(간단하게 오컴의 면도날을 설명하자면, 어떤 현상을 설명할 때 불필요한 가정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하는 말로 번역하자면, '같은 현상을 설명하는 두 개의 주장이 있다면, 간단한 쪽을 선택하라'는 뜻이다. 여기서 면도날은 필요하지 않은 가설을 잘라내 버린다는 비유로, 필연성 없는 개념을 배제하려 한 "사고 절약의 원리" (Principle of Parsimony)라고도 불리는 이 명제는 현대에도 과학이론을 구성하는 기본적 지침으로 지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