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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코그니토(INCOGNITO): 데이비드 이

비난 받아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1966년 찰스 휘트먼 이라는 사람의 총격사건으로 13명이 사망하고 33명이 부상을 입었다. 휘트먼은 총기사건이 나기 전, 자기가 죽고 난 후 자기 뇌를 검사해달라고했다. 휘트먼의 몸은 검시소로 옮겨졌다. 그이 뇌에서 5센티 정도의 종양이 발견되었다. 종양이 시상하부까지 침입해 편도체를 압박하고 있었다. 편도체는 두려움과 공격적인 감정을 조절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뇌과학자들은 1800년대후반, 편도체의 손상이 정서적, 사회적 불안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의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 그는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자기안의 무언가를 통제 하려는 것 같았어요." 아마도 무언가는 분노에 찬 공격적인 좀비 프로그램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뇌에 손상을 입은 채 무구한 사람에게 총격을 가한 사람를 통해, 비난 타당성을 따져볼 것이다. 법적인 관점에서 그에게 유책성을 물을수 있을까? 뇌손상이 그가 선택할수 없는 것이라면,그의 잘못은 어느 정도일까?  결국 우리는 생물학적인 뇌로부터 자유로울수 없지 않은가? 뇌가 결정하면 의사결정이나 취향, 갈망도 변한다. 우리는 자신의 선택을 자유로운 결정이라 생각하지만, 잘들여다보면 여기에는 한계가 존재한다.

 

뇌의 변화가 행동의 변화를 낳는 또 다른 사례는 파킨슨병 치료에도 나타난다. 2001년 무렵 파킨슨병 환자의 가족과 간병인은 이상한 현상을 눈치채기 시작했다. 환자들에게 프라미펙솔이라는 약을 처방하면 일부가 도박꾼으로 변한다. 가끔 도박을 하는 정도가 아니라, 병적인 도박꾼이 된다. 어떤 이들은 단순히 도박을 넘어서 강박적인 식탐이나 음주, 성욕과잉 현상을 보이기도 했다.  대체 그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파킨슨병은 손이 떨리고, 손발이 굳고, 얼굴 표정이 사라지고, 균형감이 점차 떨어지는 퇴행성 장애이다. 이는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을 생산하는 뇌세포들이 사라져서 생기는 병이다. 따라서 파킨슨병을 치료하려면 도파민 수준을 높여야한다. 도파민은 뇌에서 두가지 역할, 운동명령과 더불어 보상시스템의 주된 전달자 역할을 맡고 있다. 음식, 음료, 배우자, 그리고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을 안내하는 것이다. 따라서 도파민의 불균형은 도박이나 폭식, 약물중독을 유발한다. 내과의사들은 파킨슨 병환자의 돌출행동을 '프라미펙솔' 같은 도파민 약의 부작용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가족과 간병인에게 환자의 신용카드를 빼앗고, 온라인 활동이나 여행을 하는지 주의깊게 지켜보라고 당부한다. 다행히 투여량을 줄이면 충동적인 도박행위는 눈에 띄게 줄어든다. 이처럼 뇌에 존재하는 화학물질의 균형이 약간만 흐트러져도 행동에 큰 변화가 일어난다. 환자는 결국 자신의 생물학적인 뇌와 별개로 행동할수 없는 셈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이 내린 선택이 본인의 자유의지라 믿는다.

 

사람들은 성인이라면 누구나 건전한 선택을 내릴 동일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틀렸다. 사람들의 뇌는 자라난 환경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많은 병원균이 당신이 성장에 영향을 미친다. 임신부의 약물 남용 및 스트레스, 저체중 출산 등도 마찬가지다. 성장기에 방치되거나 육체적인 확대를 당하거나 뇌가 손상될 경우, 정신발달에 문제가 생길수 있다. 성장한 뒤에도 약물남용이나 다양한 종류의 독성에 노출되면, 두뇌가 손상되어 지능이나 공격성에 영향을 미친다. 이처럼 당신의 미래는 환경에 달려있다. 따라서 누군가의 잘못을 비난하기 전에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의 발달경로를 선택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범죄자가 저지른 범죄를 보면서 "글쎄, 난 그래도 그렇게 하지 않을텐데" 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당신이 코카인이나 납중독, 육체적학대에 노출되지 않은 이상, 그와 당신을 직접 비교할없지 않은가? 당신의 뇌가 그의 뇌와 다르다면, 그의 처지를 상상하려해도 제대로 파악하기 조차 힘들 것이다. 당신의 삶은 유년기 이전부터 정재진 것일 수도 있다. 아니 수태되는 순간 정해졌을 수도 있다. 우리는 미국 사법부 통계를 바탕으로 특정 유전자를 가진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을 분석해 보았다. 특정 유전자 조합을 갖고 있을 경우 폭력범죄를 저지를 확률은 무려 82%에 달한다. 유전자와 환경의 주된 공통점은 둘다 자신이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유전적인 청사진으로 만들어져 스스로 선택할수 없는 세상에 태어나 대부분의 형성기를 보낸다. 유전자와 환경의 복잡한 상호작용은 애초 모든 사람들이 제각기 다른 관점이나 성격, 의사결정 능력을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자유의지로 고른 것이 아니다. 그냥 주어진 카드일뿐이다. 우리 스스로 뇌의 형성과 구조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선택할 수 없다.

 

진화적인 측면에서 포유류의 뇌는 서로 세부적인 사항만 약간 다를 뿐이다. 그렇다면 자유의지는 인간의 회로 어디에 존재할까? 법은 인간이 최소한의 실천이성(행동을 통제하는 이성)을 갖고 있다고 판단한다. 의식적으로 심사숙고한 후에 행동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통제력에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는 이상, 인간은 스스로의 행동을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 따라서 검사는 범죄행위뿐 아니라, 범죄를 저지른 마음, 범행동기까지 증명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이성이 있다고 보는 관점에는 문제가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선택할수 있을까? 비자발적 움직임과 발성으로 고생하는 투렛증후군이 바로 그러한 경우다. 전형적인 투렛환자는 혀를 내밀고 머리를 풀어 헤치고 누구나에게 욕을 퍼붓는다. 하지만 이는 환자 자신이 선택한 행동이 아니다. 강박증외설증이라 불리는 투렛증후군의 공통된 증상은 저주나 인종차별적 발언, 외설이나 음담패설 등을 갑자기 불쑥 내뱉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단어들은 대부분 그들이 절대 하고 싶지 않은 말들이다. 강박증외설증은 공고롭게도 그러한 말을 하지 말아야 하는 상황에서 유발된다.

 

우리는 투렛환자를 보면서 두 가지 사실을 배울 수 있다. 첫째 우리의 행동이 자유의지가 없는 상황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 우리 자신이나 다른 누군가의 행동을 목격했다고해서 그 이면에 자유의지가 존재한다고 확신할 수 없다. 둘째 투렛환자는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다. 그들은 자신의 뇌가 하기로 결정한 일을 막거나 통제할수 없다. 결국 하지 않을 자유가 없는 것이다. 투렛증후군은 좀비시스템들이 결정을 내리는 전형적인 사례다. 수면수반증으로 알려진 수면장애를 살펴보면, 뇌의 거대한 네트워크는 수면상태에서 각성상태로 매끄럽게 전환하지 못한다. 그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다. 수면상태에서 각성상태로 전환하는데 엄청난 양의 뉴런이 조율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러한 일이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는게 놀라울 따름이다. 뇌에서 일어나는 모든 활동은 다른 활동과 연관되어 있다. 만일 자유의지가 신체의 활동에 영향을 미친다면, 뇌의 활동에도 영향을 미쳐야 할 것이다. 모든 뇌는 다른 영역과 긴밀히 연결되어 영향을 받는다. 어떠한 부분도 독립적이지 않고 자유롭지도 못하다마음이 내킬 때 손가락을 들어올리도록 했을 때 의식적으로 올리고자 할 때는 이미 결정을 내리고 있었다. 우리가 손가락을 움직이겠다는 위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는 뉴스를 듣기 전 이미 우리의 뇌는 무대 뒤에서 모든 일을 마친 것이다. 신경연합을 추진하고, 행동을 계획하고 표결에 붙이는 일 말이다.

 

뇌의 회로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될수록 우리는 지나친 탐닉이나 동기부족, 절제력 부족이라는 비난보다는 생물학적 관점에서 정신장애를 바라보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행동하는 이유를 신경과학적인 측면에서 규명할수 있다. 그럴수록 변호사들은 생물학적인 요소들을 참작해 달라고 호소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 처럼 피고인들은 비난해도 좋은지, 배심원들의 고민은 점점 더 커져갈 것이다. 뇌에 종양이 있다고해서 모두 총격을 저지르는 것은 아니다. 남자들이 모두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아니다.  이는 유전자와 환경이 매우 복잡한 패턴으로 상호작용한 결과다. 따라서 인간의 행동은 항상 예측불가능할수 밖에 없다. 법적시스템은 간질이나 정신분열, 우울증같은 의학적 상태를 감안해 범죄자의 행동을 이해해야 한다. 그 후에는 생물학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맞춤형 사회복귀를 제안해야 한다. 수감된 대다수 범죄자들은 충동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한다. 그들은 옳은 행동과 잘못된 행동의 차이도 알고 처벌의 무서움도 안다. 하지만 자신의 충동을 억제할 능력이 없기에 유혹에 굴복하고 만다. 미래에 대한 걱정보다 눈앞에 닥친 욕구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다. 충동을 제대로 억제 못하는 사람들에게 공감을 느끼기 어렵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자. 당신은 어떤 행동을 한 다음 후회한 적은 없는가? 우리가 제시할 새로운 사회복귀전략은 전두엽이 단기적인 욕구를 억제하도록 연습하는 것이다.

 

뇌는 라이벌로 이루어진 민주적인 팀이다. 이러한 개념은 점검과 균형이라는 좋은 시스템을 갖추기 위한 것이다. 전전두엽 단련운동은 정당들을 위한 토론의 장을 마련하고, 행동하기전에 충분히 성찰하도록 돕는다. 이는 바로 성숙을 의미한다. 십대와 성인뇌의 주된 차이는 뇌가 얼마나 성숙했는지, 즉 전두엽이 얼마나 발달되었는지에 달려있다. 인간의 전전두엽피질은 20대 초반까지는 완전히 발달하지 못한다. 십대들이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이유다. 전두엽은 때때로 '사회화 기관'이라 불린다. '사회화'된다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충동을 억누르는 회로가 발달되었다는 뜻이다. 술을 진탕 마시면 가면이 벗어진다. 정상적인 전두엽 기능은 사라지고, 좀비들이 메인 무대에서 설친다. 우리가 충동에 필요로 하는 것은 억제할 통제권을 전두엽 피질에 심어주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기로 작심을 해도 그가 행동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우리가 사람의 생각을 중단시킬 수는 없다.  우리의 법적시스템의 목표는 충동성을 억제하고, 성숙한 성찰을 장려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대중의 이해를 구하는 것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괘많은 사람들이 범죄자의 사회복귀보다는 일종의 보복을 하고 싶은 욕구를 갖고 있다. 외국인 혐오증을 생각해보자. 이는 어찌보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과 비슷한 외모에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을 선호하지 않는가.

 

처벌이 죄수들을 교정시키기 위해 존재한다면, 그걸 받아들일 뇌가소성이 없는 상황에서는 무조건적인 처벌은 옳지 못하다. 처벌과 보상을 통해 사회로 복귀할 정도의 변화를 이끌어낸다면 그러한 처벌은 적절하다. 하지만 처벌로 별다른 교정효과를 이끌어 낼수 없는 범죄자라면 다른 시설로 보내야 한다. 감옥은 약물중독자들로 붐빈다. 약물중독자들은 수감보다 사회복귀적인 차원에서 접근하는 편이 훨씬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