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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코그니토(INCOGNITO): 데이비드 이

뇌가 나의 마음을 만든다.

우리는 뇌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의식하지 못한다. 아마 많은 이들이 모든 일에 개입하기를 바라지도 않을 것이다. 자칫했다가는 아무런 문제없이 잘 돌아가는 뇌만 방해하게 될테니까. 피아노 연주를 망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손가락에 집중하는 것이고, 제대로 호흡하지 못하는 최선책은 호흡을 의식하는 것이며, 내기 골프를 망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필드에서 자기 스윙을 분석하는 것이다.새로운 경험을 의식적으로 기억할 수 없는 기억상실증 환자들은 게임을 배운 다음 날, 배운 기억이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들의 뇌는 암묵적으로 게임을 배웠기 때문에 게임실력은 정상적인 수준에 근접해 있다. 세상과의 모든 상호작용은 이러한 무의식을 바탕으로 한다. 아버지의 걸음걸이나 코모양, 웃는 모습 등을 말로 표현하기는 힘들어도 비슷한 외모나 걸음걸이를 가진 사람들을 보면 바로 알아차리는 것처럼.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을 솔직히 드러내지 않는 이유는 단지 그가 정직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자신이 생각을 전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소설가 에드어드 포스터는 이렇게 이야기 했다. " 내가 하는 말을 듣기 전까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두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이유로는 무엇이 있을까? 일반적으로 성적 매력이나 이해심, 가정환경, 존경심 등 다양한감정들이 떠오를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무의식이라는 은밀한 장치는 배우자를 고르는 일과 무관해 보인다. 미국 어느 지역에서 결혼기록 1만 5천건을 검토한 결과 이름의 첫글자가 같은 사람끼리 결혼한 비율이 우연으로 보기에 지나치게 높았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무의식적인 자기애 또는 익숙한 것을 보면 느끼는 일종의 안락감으로 해석한다. 암묵적 자기중심주의라 해도 좋을 것이다. 암묵적 자기중심주의는 배우자뿐 아니라, 평소 선호하거나 구매하는 상품에도 영향을 끼친다. 무의식적인 자기애는 특정인이나 물건에 대한 선호를 넘어서서 거주지나 직업을 택하는 데도 미묘한 영향을 끼친다.

 

뇌는 당신이 앞으로 할 행동을 미묘하게 조작할 수도 있다. '지X학'같은 몇몇 단어를 완성해보자. 이때 당신은 조금 전에 읽었던 단어중에 고를 확률이 높다. 뇌의 일부는 많은 단어들을 접하면서 변한다. 이처럼 선행사건이나 자극이 후속반응에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점화'라 부른다. 선행효과는 일시적인 자극 이상의 효과를 발휘한다. 당신이 전에 누군가의 사진을 본적이 있다면, 나중에 봤을 때 더욱더 매력적이라 판단할 것이다. 사회심리학에서는 이를 단순노출효과라 부른다. 사람들은 어떤 얼굴이나 상품을 자주 접할수록 친밀감을 느끼고 결국 더욱 선호하게 된다. 좋아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할 때 암묵적인 기억이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암묵기억은 '진실효과 착시'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진실효과는 동일한 진술이나 주장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그것이 진실이든 아니든 진실이라고 믿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이러한 진실효과 착시는 종교의 강령이나 정치적 구호에 반복적으로 노출된 사람들이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준다.

 

세계적인 신경과학자인 안토니오 다마지오는 '우리 몸의 물리적상태가 만들어 낸 감정이 행동과 의사를 결정하는 길잡이가 된다'고 주장한다. 우리의 몸은 세상에서 벌어지는 사건들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나쁜 일이 생기면 뇌는 몸 전체를 활용해 심장 박동이나 내장수축, 근육이완 등 자기만의 느낌을 등록한다. 다음에 그 사건을 떠올리면 뇌는 무의식적으로 시뮬레이션을 시작한다. 사건과 관련된 물리적인 느낌을 되살리는 것이다. 이러한 느낌은 나중에 올바른 의사결정을 하는데 이용된다. 뇌는 느낌이 나쁘면 행동을 포기하게 하고, 느낌이 좋으면 행동을 부추긴다. 윔블던에 참가한 테니스 선수들의 시속145키로에 육박하는 공을 따라 민첩하게 움직인다. 프로 테니스 선수들은 어떤 것도 의식적으로 움직이는 법은 없다. 당신이 책을 읽거나 차선을 바꾸듯이 그들은 무의식적인 기계에 전적으로 의지해 경기를 운영한다. 이러한 테니스 로봇들은 무의식적으로 반응하지만, 이 모든 움직임은 전적으로 의식에 의해 훈련된다. 빠르게 날아다니는 공을 정확하게 칠수 있도록 의식은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뇌의 의식적인 부분은 목표를 설정하고, 자원을 배분하고, 신경기제의 다른 부분을 훈련시킨다. 그들이 수없이 반복적으로 훈련하므로서 로봇시스템은 수 많은 시냅스로 연결된 네트워크를 이용해 미세하게 조정한다. 코치는 보통 선수가 의식적으로 듣거나 이해해야 할 것들을 계속 주문한다. 이러한 훈련이 몸에 베어 더 이상 의식이 접근  수 없을때까지 로봇처럼 훈련을 거듭한다. 의식은 회사의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하는CEO와 같다. 의식이 목표를 정하면 나머지 시스템은 목표를 달성하는 법을 배운다.

 

뇌의 가장 인상적인 특징중의 하나는 눈앞에 닥친 거의 모든 일을 배울 수 있는 유연성이다. 우리는 이로 인해 지구의 모든 지역의 언어를 구사할수 있고, 악기를 연주하고 비행기를 조종하는 등의 일을 할 수 있다. 뇌는 해야할 일을 발견하면 최대한 효율적으로 실행할때까지 회로를 재배열한다. 맡은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뇌에 필요한 두가지 요소가 있다. 첫째 속도다. 자동화는 빠른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한다. 의식이라는 느린 시스템이 뒤로 밀려나야만 다른 프로그램들이 신속하게 자기 일을 마칠수 있다. 145키로로 날아오는 공 앞에서 여러 가지 방법을 검토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새로운 스포츠를 처음 배울 때를 기억하는가? 노련한 선수들은 가장 기본적인 움직임만으로 손쉽게 승리를 거둔다. 반면에 당신은 팔다리를 어떻게 움직여야 좋을지 점프를 해야 할지, 빗발치는 새로운 정보속에서 애를 먹는다. 그러다 경험이 쌓이면서 당신은 어떻게 움직이고, 피하고, 속이고, 공격해야 할지를 배운다. 점점 자동화 됨에 따라 당신은 더욱더 빨리 행동하고 결정하게 된다.

 

뇌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두번째 요소는 에너지 효율성이다. 뇌는 프로그램을 최적화 함으로써 문제해결에 필요한 에너지를 최소화 한다. 우리는 배터리로 움직이는 생명체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에너지절약이 중요하다. 뇌는 주어진 임무에 맞게끔 자신의 회로를 바꾸어 서툴고 어려운 임무를 신속하고 능숙하게 처리한다. 이제껏 우리는 의식이 대부분의 업무를 방해한다는 사실에 집중했다. 하지만 의식은 목표를 설정하고 로봇을 훈련시킬때는 더없이 유용하다. 의식이 너무 적으면 인간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잃어버린다. 반면에 의식이 지나치게 많으면, 시스템은 느리고 투박하며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수렁에 빠뜨린다. 스킬은 뇌의 회로안에 베어 있어야 한다. 운동선수들이 몰입하게 되면, 무의식이라는 기계는 쇼를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진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