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창기 신경과학의 선구자인 찰스 셔링턴은 "나는 종이를 집어들 때 근육의 움직임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그저 별다른 어려움 없이 제대로 움직일 뿐이다"라고 했다. 그나마 신경과학자가 아니었다면, 신경이나 근육, 힘줄 등의 존재를 떠올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는 이렇게 추론했다. " 나의 팔을 움직이는 것은 정신적인 산물이다. 인간의 의식은 경험하지 않은 요소들을 기반으로 외부세계를 지각한다." 인간의 의식을 신문에 빗대어 생각해보자. 헤드라인 임무는 뉴스를 요약하는 것이다. 의식도 헤드라인처럼 신경계의 모든 활동을 간추려 제시한다. 실제는 수십억개의 전문화된 기계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데 말이다. 일부는 감각데이타를 수집하고, 일부는 행동프로그램을 보낸다. 다수는 신경이라는 일터에서 일한다. 이들은 정보를 조합하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측하고, 무엇을 할지 결정을 내린다. 이처럼 복잡한 상황에서'의식'은 사과나 강처럼 더 큰 범주의 그림을 그리는데 유용한 요약본을 제공한다.
'본다'는 행동은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그 이면에 거대하고 정교한 기계가 존재한다고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뇌의 3분의 1이 시각에 배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뇌는 눈에 들어온 정보를 분명히 파악하기 위해 맥락을 고려하고, 가설을 세우고, 기법을 발휘한다. 그럼으로써 명확한 판단을 가로막는 온갖 방해물들을 처리해 나간다. 실제 수십년 동안 장애인으로 살다 수술로 시력을 회복한 경우 한동안 세상을 보지 못한다. 앞으로 보려면, 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처음 그들이 바라본 세상은 온갖 형태와 색깔이 마구 쏟아져 들어오는 웅성거리고, 어지러운 세계다. 완벽하게 시력 회복이 되었다해도 그들의 뇌는 들어오는 데이터를 해석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일반적으로 뇌는 눈 근육을 활용해 관심있는 쪽을 바라보며, 해상도가 높은 중심 시각을 활용한다. 따라서 어디를 바라보든 제대로 보고 있다고 착각한다. 실은 그렇지 않은데 말이다. 이는 '냉장고 불은 항상 켜져 있을까' 하고 착각하는 것과 같다. 냉장고 문을 열면 불이 자동적으로 켜지므로 항상 켜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뇌는 관심이 가는 물건을 포착하면 변화를 쉽게 알아차리지만, 이러한 일은 지칠만큼 철저히 살펴본 다음에나 일어난다. 주변환경이 바뀌어도 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를 '변화맹'이라 하는데. 이는 관심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사물의 변화를 보려면 먼저 그것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눈에 들어온 소량의 정보만을 부호화 한다. 나머지는 모두 가정에 불과하다. 이제 이해가 가는가? 무언가를 바라본다고 해서 반드시 그것을 본다고 할수 없다. 이 사실을 발견한 사람들이 신경과학자가 처음은 아니다. 마술사들은 이미 오래전에 이것을 알아차리고 사람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린 채 모두가 보는 앞에서 마술을 부린다.
사실 우리는 스스로 묻기전까지는 모든 것을 의식하지 못한다. 지금 왼쪽 신발이 어떻게 느껴지는가? 에어컨 소리는 어느 정도인가? 우리는 변화맹이기 때문에 자신이 놓친 부분에 집중한 후에야 세부사항을 인식하게 된다. 세상을 탐지하는 눈은 데이터를 최적화 하는 임무를 띤 요원들처럼 합리적으로 움직인다. 그러나 그게 당신의 눈이라 해도 당신은 그 임무에 대해서 거의 알지 못한다. 물고기는 다른 세상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물을 보거나 상상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당신은 한번에 2개의 이미지를 볼 수 없으며, 혼합된 이미지를 볼 수도 없다. 하나를 보고 그 다음 또 다른 하나를 보고 그리고 다시 돌아온다. 시각 시스템은 충돌하는 정보들의 분쟁을 겪으며, 어떤 지각이 승리를 거두느냐에 따라 그때 그때 다른 것을 본다. 외부세계에는 변함이 없는데 뇌가 완전히 다른 해석을 해놓는 것이다.
뇌는 주어진 소량의 정보를 더 많은 정보로 전환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 추측한다. '뇌'라는 위대한 기계를 면밀히 살펴본 결과, 특수세포와 뇌의 회로들로 구성된 시각피질이라는 복잡한 시스템이 발견되었다. 이 회로들은 제각기 다른 역할을 맡고 있으며, 일부는 색깔, 일부는 움직임, 일부는 테두리를 담당한다. 물론 다른 임무를 맡기도 한다. 회로들은 촘촘히 연결되어 있으며, 하나의 집단으로서 결론을 내린다. 과학자이자 야구광인 마이크 맥베스는 내야 플라이를 잡는 행위에 숨겨진 신경계의 계산법을 이해하기 위해 연구에 나섰다. 그는 외야수들이 공의 낙하점이 아니라, 어떻게 계속 달릴지 알려주는 무의식적인 프로그램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들은 언제나 공이 날아가는 포물선 경로를 직선처럼 생각하고 움직인다. 공의 경로가 직선에서 이탈하는 것처럼 보이면, 곧장 달리는 경로를 변경한다. 시각은 그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고해서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시신경을 따라 흐르는 전기화학적 신호들을 해석할 줄 알아야한다. 시각이 외부세계를 객관적으로 해석하는 것처럼 보여도 이는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 전에 뇌의 학습이 이루어져야 한다.
뇌는 둥근 두개골의 암흑속에 갇혀서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뇌가 아는 것이라고는 소량의 신호들 뿐이지만, 놀랍게도 당신은 다채로운 색을 띤 세상을 지각할 수 있다. 뇌는 어둠속에 있어도 당신의 마음은 빛을 구성한다. 따라서 뇌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자극들이 눈이든, 귀든, 혹은 다른 부위든, 어디서 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뇌는 촉각에 의해서도 우리가 시각이라고 부르는 감각을 구성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 입력된 신호들에 의미가 부여된다. 당신이 즉각 단어들의 의미를 이해하듯 뇌 또한 소나무 숲을 전속력으로 달리는 말처럼 마구 쏟아져 들어오는 전기화학적 신호를 시기적절하게 해석해 낸다. 뇌에게 정보만 제공하라. 나머지는 뇌가 알아서 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껏 자각의 흐름을 다음과 같이 생각해 왔다. 자기 기관들의 데이터가 뇌로 들어가면 감각들의 위계서열이 매겨진 다음,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느끼게 된다고, 말그대로 외부를 지각하는 셈이다. 하지만 뇌는 내부에서 발생하는 고유한 활동으로 운영되는 다분히 폐쇄적인 시스템에 가깝다. 놀라운 사실은 내부데이터가 외부감각에 의해 발생하지도 않을 뿐더러, 거의 조율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뇌에서는 척수뿐 아니라 중추신경계 전체가 작동된다. 내부적으로 발생한 활동은 입력된 감각에 의해 조율된다. 깨어있는 것과 잠든 것의 차이는 눈에 입력된 데이타들이 지각을 붙들고 있느냐의 여부일 뿐이다. 지금 당신이 책상 위에 놓인 은으로 만든 펜의 환각을 본다고 해도 그게 진짜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힘들다. 은으로 만든 펜은 실제로 존재하니까 무언가 이상해야만 환각임을 알아차리지 않겠는가? 정상적인 지각과 환각은 크게 다르지 않다. 후자가 외부입력에 의해 고정되지 않는다는 사실만 제외하면 말이다. 환각은 고삐 풀린 시각일 뿐이다. 뇌는 왜 이처럼 정신없이 얽혀 있을까? 어떤 이점이 있기에? 뇌는 단순히 자극에서 반응으로 이어지는 행동을 넘어서서, 실제 감각보다 먼저 예측하는 능력을 발휘한다. 예를 들어 높이 뜬 내야 플라이를 잡는다고 하자. 이때 시각시스템이 단순히 조립라인으로 되어 있다면 ,당신은 공을 잡을수 없을 것이다. 빛이 각막에 닿는 순간부터 움직임 이라는 명령을 수행할 때까지 족히 수백 밀리세칸드는 걸리기 때문이다. 대신 뇌에 내장된 물리학모형을 이용해 공을 잡을 경우, 당신은 항상 공이 있었던 곳으로 손을 뻗게 된다. 이러한 내부모형은 중력가속도의 효과를 고려해 언제, 어디서 공이 떨어질지 예상한다. 뇌는 당신이 특정상황에서 어떠한 행동을 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를 내부적으로 시뮬레이션 한다.
1956년 신경학자 도널드 맥케이는 뇌의 시각피질을 세상에 대한 모형을 만들어 내는 기계라고 말하며, 일차시각피질이 각막으로 들어오는 데이터를 예측한다고 주장했다. 피질은 시상으로 자신이 예측한 내용을 보내는 동시에 눈을 통해 들어온 것과 이미 예측한 것과의 차이에 대해 보고한다. 시상은 그러한 정보의 차이를 피질로 되돌려 보낸다. 즉 예측하지 못한 부분을 말이다. 뇌는 이런 식으로 실수가 덜 발생하게끔 세상을 인식하는 내부모형을 조금씩 다듬어간다. 뇌는 예측한 내용과 입력된 감각을 적극적으로 비교한다. 이로 인해 더 큰 개념을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당신은 입력된 감각이 예상과 다를 때만 주변을 인식한다. 제대로 세상을 예측할 때는 굳이 인식할 필요가 없지 않는가? 뇌가 혼자서 알아서도 잘할테니까? 뇌출혈로 시력을 잃는 안톤증후군 환자는 자신이 앞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부정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보이는 척하는게 아니라 정말 보인다고 믿는다. 자기만의 시각에 빠진 것이다. 그러다가 가구나 벽에 계속 부딪힌 뒤에야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낀다. 환자의 현실은 현실과 상관없이 거의 뇌가 만들어 내는 것이다.
시각과 청각뿐 아니라, 시간을 지각하는 것 또한 뇌의 역할이다. 당신이 손가락으로 툭툭 바닥을 두드리면 당신의 눈과 귀는 그에 대한 정보를 등록하고, 뇌의 나머지 부분들이 이를 처리한다. 하지만 입력된 신호들은 뇌에서 아주 천천히 이동한다. 구리선에서 신호를 운반 하는 전자들보다 100만배는 더 느리게 말이다. 그래서 툭툭거리는 소리를 처리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사실 당신이 지각한 순간, 이미 툭툭거림은 지나가버렸다. 당신이 지각하는 세상은 항상 실제보다 뒤처진다. 마치 생방송이 아닌 생방송을 내보내는 TV 쇼처럼. 이러한 쇼들은 누군가 부적절한 언어를 쓰거나, 폭력을 가하거나, 부적절한 상황이 발생할 것에 대비해 몇초 늦게 방송한다. 우리의 의식적 삶도 마찬가지다. 생방송으로 내보내기전에 상당한 정보를 수집한다. 이러한 사실은 청각과 시각의 정보가 뇌에서 다른 속도로 처리되고 있는데도 툭툭거리는 손가락의 모습과 소리가 동시에 일어나는 것처럼 느껴진다. 게다가 이제 손가락을 움직이겠다는 당신의 결정 또한 손가락을 움직이는 순간과 거의 동시에 행해지는 것 같다. 이는 뇌가 벌인 화려한 편집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외부에 있는 것들을 거의 인식하지 못한다. 뇌는 시간과 자원을 절약하기 위해 예측을 하고 필요할 때만 세상을 보려한다. 스스로 물어보기 전에는 대부분의 것을 의식하지 못한다는 점을 잊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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