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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코그니토(INCOGNITO): 데이비드 이

내 머릿속에 누군가가 있다

'나'라고 말하는 나는 누구인가?  인코그니토는 우리 말로 '익명의,  보이지 않는'이라는 뜻으로 저자는 인간 이면에 숨어있는 뇌의 무한한 능력과 거기서 비롯되는 인간행동에 주목한다. 수십억년 동안 인류가 생존과 번식을 위해 진화하는 동안 인간의뇌도 자연선택을 거치며, 가장 최적의 형태로 발달해 왔다. 인간의 놀라운 능력은 뇌라는 창조적이고 놀라운 기계안에 일종의 프로그램처럼 새겨져 있다. 우리가 모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것도, 바이올린을 멋지게 연주하는 것도 모두 뇌 덕분이다 . 저자는 뇌가 모든 것을 조종한다면, 인간에게 자유의지란 애초부터 없는 것이 아니냐는 근원적이고 심오한 의문을 제기한다. 나아가 이러한 사실은 뇌에 손상을 입어 범죄를 저지른 이들을 비난하는게 타당하냐는 윤리적인 논쟁을 초래한다.  정말 인간은 단백질과 분자와 뉴런덩어리에 불과한 것일까?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뇌는 단순한 뉴런정글이 아니라  세상과 환경에서 자유로울 수없는 사회적 네트워크기 때문이다. 거울에 비친 당신 모습을 꼼꼼히 뜯어보라.  세련되고 멋진 모습뒤에 무수한 네트워크로 된 기계가 이끄는 또 다른 우주가 숨어 있다. 그 기계는 빈틈없이 맞물린 뼈와 그물처럼 얽힌 근육, 특수한 액체, 당신을 위해 어둠속에서 소리없이 움직이는 내부기관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 안에 바로 뇌가 들어있다.

 

뇌는 1.4Kg에 불과하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물건이다.  수천억 개의 세포들은 유전정보의 집합체인 게놈을 포함하고 있으며 수십억 개의 분자들을 복잡하지만 효율적인 방식으로 이동시킨다. 세포들이 만들어내는 네트워크는 인간의 언어로는 도무지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다. 인간의 행동과 생각, 경험들은 신경계라 불리는 거대하고 축축한 정글과 뗄래야 뗄수 없을 만큼 긴밀하게 얽혀있다. 뇌는 우리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이면의 기계이자 우리의 일부다. 생각은 무게가 없고 찰나에 불과하며 되돌릴 수 없다. 모양이나 냄새도 없다. 물리적인 것으로 바뀔 것 같지도 않다. 그러니 생각을 잡아낸다면, 그것은대단한 마법이다. 하지만 소리와 마찬가지로 생각도 물리적인 요소를 바탕으로 한다.  뇌에 물리적인 변화가 생기면, 생각의 종류도 달라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낮에는 정상적이고  사회적으로 용인된 생각을 한다.  때로는 알코올이나 약물, 담배, 커피, 운동  등으로 뇌의 화학적 분비물을 억제하고 조절한다.  즉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뇌의 물리적인 상태에 달려있다. 희망, 꿈, 갈망, 두려움, 위대한 사상, 성적 취향, 유머감각, 충동.... 이러한 생각은 모두 뇌라는 기이한 기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마디로 뇌가 변하면 우리도 변한다. 흔히 생각은 물리적 요소와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바람에 날리는 깃털처럼 한번 날아가버리면 잡을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인간의 생각은 1.4Kg의 미션 통제센타인 뇌의 상태에 따라 확연하게 달라진다. 아침에 일어나 활동을 시작하는 '나'라는 의식적인 개체는 뇌에서 일어나는 일중에서 극히 일부분만 담당한다. 인간의 정신적인 삶과 뇌의 기능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지만, 뇌는 자신만의 쇼를 펼친다.그리고 우리 뇌는 그 쇼에 참여하지 못한다.

 

만일 우리가 마음에 드는 이성을 선택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접근할 수 없는 뇌가 그렇게 결정한 것이다.  미와 매력이라는 개념이 뇌에 깊이 새겨져 있으며, 수백만년 동안 자연선택적으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에 의해 조종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가장 매력적인 여자를 고른게 자신이 아니라, 뇌회로에 내장된 프로그램인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다. 뇌는 모든 정보를 수집해 적절한 행동을 이끌어낸다.  뇌는 대개 자동조종장치로 운영되며,  의식은 소리 없이 돌아가는 이 미스터리한 공정에 거의 접근 조차 하지 못한다. 일상에서도 이러한 일을 종종 겪을 것이다. 우리 몸의 신경회로는 인류가 진화하는 동안 직면했던 문제를 해결할수 있도록 자연선택적으로 빚어졌다뇌 또한 비장이나 눈처럼 진화라는 압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의식 또한 마찬가지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의식은 언제나 인간에게 유리하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가정에 영향을 미칠 새로운 세금법안이 통과 되었는지 알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런 법안을 누가 내 놓았는지, 입법자와 기업, 의사진행과 관련된 세부사항까지 일일이 신경쓰지 않는다.  소고기 공급이 원활이 이루어지는지는 알고 싶어하지만, 소의 사육방식이나 처리법까지는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결국 우리가 알고자하는 것은  최종적인 결과다.  공장에 대해서 아무 관심이 없다가 파업에 들어가면  그제야 신경을 쓴다. 우리가 신문을 통해 얻는 정보란 그런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인간의 의식은 신문에 비유할 수 있다. 우리의 뇌는 늘 분주하다. 신문의 헤드라인을 읽고난 다음 '내가 방금 생각해 낸거야'라며 자신에게 공을 돌린다. 정작 많은 일을 한 것은 바로 당신의 뇌인데 말이다. 놀랍게도 정신적인 삶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일들이 의식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사실 그편이 훨씬 낫기도 하다. 의식은 모든공을 자신에게 돌리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뇌에서 벌어지는 일과 의식은 가능하면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좋다.  의식이 자꾸 끼어들기 시작하면  뇌의 효율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손가락이 어느 건반 위에 있는지 고민하는 순간부터  제대로 피아노를  수 없는 것 처럼.

 

라이프니츠는 '우리가 의식은 못하지만 분명 인간의 행동을 이끌어내는 갈망이나 욕망이 존재하며,  그것이야 말로 인간이 무의식적이고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이유'라 주장한다.  19세기 후반 생물학자들은 외부의 신호가 눈을 지나 시상과 연결된 축색을 따라 이동한 후  신경이라는 하이웨이를 타고 피질로 가서  뇌 전체에서 처리되는 패턴의 일부가 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만은 달랐다.  여전히 인간의 생각은 물리적인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과정으로 간주되었다. 인간의 선택과 결정이 숨겨진 무의식에서 비롯되었다면, 자유로운 선택이라는 개념 자체가 환상이 아닐까. 브로이어는 오히려  '인간이 이전보다 보이지 않는 무엇에 의해 더욱 강한 구속을 받고 있다'고 여겼다.

( 브로이어는 프로이드의 멘토이자 친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