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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코그니토(INCOGNITO): 데이비드 이

모든 일에는 목적이 있다(1)

모든 관심은 상호적이다. 인간은 인간에게 끌린다. 뇌는 인간이라는 종에 적합한 갈망만을 위해 배열되어 있다. 뇌가 우리의 생존에 필요한 행동을 유발하게끔 치밀하게 설계된 기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과와 달걀을 맛있다고 느낀다. 그것은 분자의 형태가 훌륭해서가 아니라, 당분과 단백질이 함유된 완벽한 패키지기 때문이다. 우리의 뇌는 몸에 유용한 음식을 맛있다고 여기게끔 설계되어 있다. 이와 달리 배설물에는 몸에 해로운 미생물이 들어있기 때문에 그것을 먹지 말아야겠다는 반감이 발달했다.  하지만 새끼 코알라는 소화를 돕는 박테리아를 섭취하기 위해 어미의 배설물을 받아먹는다. 그래야만 유독성 식물인 유칼리 나뭇잎을 먹어도 생존할 수 있다. 우리의 생각과 달리 처음부터 맛있거나 역겨운 음식은 없다. 맛은 당신이 그 음식을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맛은 유용성의 지표일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매력이나 맛있다는 느낌에 익숙하지만, 이러한 것들이 진화적인 목표와 얼마나 깊게 관련 되어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즉 진화적 목표는 우리의 생각을 움직이고 형성된다.

 

우리는 원자나 우주는 커녕 자기의 고유한 공간에서 일어나는 활동들도 보지 못한다. 자동차라디오는 무선주파수를 잡아내지만, 당신은 라디오나 TV에서 흘러나오는 뉴스가 지금 당신의 몸을 통과하고 있다고 해도, 당신은 절대 볼수 없다. 그 부분의 스펙트럼을 감지하는 수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이와는 달리 꿀벌은 현실에서 자외선 파장으로 운반되는 정보를 읽어낸다. 방울뱀은 적외선을 볼 수 있다. 당신이 경험할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생물학적 뇌에 의해 제환된다. 눈, 귀, 손가락 등이 물리적인 외부 세계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관점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기술의 도움으로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되면서, 뇌가 물리적인 세상의 극히 일부만을 이용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독일 생물학자 냐코프 폰 윅스퀼은 같은 생태계에 사는 동물들이 동일한 환경에서 서로 다른 신호를 읽어낸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블랙 고스트 나이트피시라는 열대어는 전기장으로, 박쥐는 초음파로 외부 탐지를 한다. 그는 우리가 볼 수 있는 세계를 '움벨트'로, 더 큰 현실을 '움게붕'이라고 불렀다. 어째서 자신이 감지할 수 있는 움벨트 외에 다른 세계가 존재하는지 생각해야 할까? 우리는 자신만의 움벨트를 수용하고, 거기서 멈춘다.

 

혹시 앞을 보지 못하면 어떤 기분이 들지 생각해 본 일이 있는가? 당신이 냄새를 잘맡는 사냥개라 생각해 보자. 당신의 긴 코에는 2억개의 후각 수용기가 존재 한다.  당신은 냄새로 모든 것을 감지한다.  어느 날 오후 주인을 따라가던 당신은 새로운 사실에 놀라 가던 길을 멈출 것이다. 저렇게 부실한 코를 가진 인간은 어떻게 살아갈까? 하지만 인간은 개와 다르다. 그만큼 냄새를 못 맡는다해도 결함이나 상실감 따위를 느끼지 않는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일 뿐이다. 선천적인 시각장애인도 마찬가지다. 그들도 하나도 잃은게 없다. 애초 부터 시각은 그들의 현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처럼 인간들 사이에서도 상당한 개인차가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노랑을 빨강이라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나의 시각과 당신의 시각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사물을 뭐라 부를지 어떻게 정의할지에 동의한다면, 어떠한 문제도 일어나지 않는다. 뇌의 기능은 사람마다 다소차이가 있기에 우리는 때때로 세상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석한다. 그리고 자신이 경험하고 해석하는 것이 진짜 현실이라 믿는다.

 

진홍색 화요일, 형태를 띤 맛, 물결치는 초록색 교향곡을 느껴 본적이 있는가? 100명 중의 1명이 이런 식으로 세상을 경험한다. 이를 '공감각'이라 하는데 공감각자들은 하나의 감각을 자극하면 이례적인 지각을 경험한다. 색깔을 듣거나 형체를 맛보는 식으로. 여러 감각들의 혼합을 경험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뇌에 존재하는 감각영역끼리의 교차대화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2월이나 수요일을 공간적인 느낌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하지만 일부 공감각자들은 숫자나 시간단위, 사건의 순서 등을 어디에 위치 한다는 식으로 느낀다. 12월이 어디에 있는지 느낀다는 것이다. 공감각자들은 모든 사람들이 자기처럼 숫자를 시각화 하지 않는다는데 놀란다. 그들은 시간을 시각화하지 않고 살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당신의 현실을 기이하게 느낀다. 당신이 그 사람을 기이하게 느끼는 것처럼.

 

뇌가 지각한 것이나, 지각할수 있다는 것은 나름대로 판단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주관적이다. 현실은 뇌에 의해 수동적으로 기록되는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구성된다. 당신의 정신적인 삶은 특정 영역안에 존재하며, 나머지 범위에서는 제한되어 있다. 세상은 당신이 미처 생각할수 없는 생각들이 존재한다. 당신은 우주에 떠다니는 수많은 별들을 이해할수 없다. 우리의 눈과 내부기관, 생식기관 등은 수백만년의 진화를 거치면서 신중하게 빚어진 것이다. 생각이나 믿음도 마찬가지다. 인류는 진화하는 과정에서 병균에 대한 면역력뿐만 아니라, 채집과 수렵을 거치면서 직면한 문제들을 풀기 위해 신경기제까지 발달시켰다. 따라서 우리의 뇌는 환경과 상황에 적합한 행동을 추구하게끔 만들어졌다.

 

신경과학자들이 뇌를 구성하는 조각을 연구 한다면, 진화심리학자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소프트웨어를 연구하는 셈이다. 물리적인 뇌에는 구체화된 프로그램들이 장착되어 있는데, 이는 수백만년동안 인류가 겪었던 문제들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다. 신생아의 뇌는 얼굴을 예상한다. 태어난지 10분도 채 안된 아기라 해도 얼굴과 유사한 패턴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마구잡이 패턴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어른들의 의도를 추측한다. 어른들이 무언가를 행동으로 보여주면, 아기들은 어른을 흉내내려 한다. 아기들의 옹알거림은 인간의 뇌에 미리 프로그램밍된 자질을 물려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선행 프로그램의 또 다른 사례는 마음읽기 시스템이다. 다시말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나 움직임을 이용해 그들이 원하고, 알고, 믿고 있는 것을 추론한다.

 

본능은 복잡하지만 따로 학습할 필요가 없는, 말 그대로 타고난 행동이다. 이는 경험과 크게 상관없이 저절로 나타난다. 진화에 의해 설계된 본능적 프로그램들이 우리의 행동을 순조롭게 운영하고, 우리의 인지를 적절하게 조종한다. 인간은 본능에 의해 움직이지만 인간은 본능 이외의 다른 것, 이성을 바탕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한다. 본능은 도구상자의 도구와 같다.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더욱 더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본능을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본능이 별다른 노력없이 정보를 자동적으로 처리하기 때문이다. 본능은 처음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인간의 타고난 행동은 매우 유용해서 DNA라는 수수께끼 같은 암호문에 기록 되었고, 자연선택의 논리에 따라 생존과 번식본능이 강한 조상들을 통해 면면이 전해져 왔다. 하지만 수백만년동안 특수화 되고, 최적화된 본능은 효율적이고 빠르다는 장점이 있는가 하며, 의식적으로 접근하기 힘들다는 단점도 있다. 본능은 쉽고 자연스러운 행동이라는 생각 때문에, 우리는 그 이면에 복잡한 회로가 존재한다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다. 알고 보면 가장 쉬운 것이 가장 어려운 것인데 말이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대부분의 활동은 신경시스템적으로 대단히 복잡하다. 앞을 보는 행위가 자연스러운 것은 이면에 복잡하고 정교한 기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