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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고 있는걸 당신도 알게된다면

자식

육아는 대부분 사람들이 제대로 훈련도 받지 않고, 준비도 하지 않은 채 맡게 되는 분야다. 분명 내 유전자를 타고난 아이들이지만 때론 외계인 처럼 보일 때도 있다. 아이들은 감정노동을 시키기도 하고, 감정 보상을 해주기도 한다. 바로 이런 점에 육아의 다면성이 있다. 아이들은 나를 성숙하게 하고, 도전하게 하고, 변화하게 만든다. 아이들은 예측할 수 없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즐겨라. 많은 사람들이 자녀가 독립해서 집을 떠나기 전까지 20년 혹은 그 이상의 세월을 양육으로 보낸다. 물론 독립했다고 해서 부모 역할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자녀가 성인이 된 후는 물론이고 자녀가 중년이 될 때까지 양육의 끈을 놓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의 행복은 가장 불행한 자녀의 행복지수 만큼이다.'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행복한 일이 많아도 자녀가 불행하면 부모는 행복할 수 없다. 양육만큼 고무적이고, 즐겁고 도전적 이고, 실망스러운 경험은 드물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든 사람들에게 양육에 관한 조언을 구하지는 않는다.

 

아이와 유대감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아이가 부모에게 원하는 것은 돈이나 돈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특히 함께 있고 싶을 때 더욱 그렇다. 훗날 가장 후회스러운 것이 있다면 바로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이다. 실제로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 시간 보내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 다만 부모가 무언가 함께 하자고 명령하는 것이 문제다. 관심이 있건 없건 자녀의 관심사를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과 함께 한 것은 어떤 행위가 아니라, 바로 시간이다. 시간을 나누는 것이다. 그리 긴 시간도 아니다. 일과중 생긴 자투리 시간이거나 어쩌다 갖게되는 짧은 시간이다. 그러나 그 시간에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고 신뢰를 쌓고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특별한 사건보다는 일상을 함께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첫째, 아이들은 원하는 것은 시간이다,

둘째,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과 함께 무언가를 하는 것이다. 취미, 운동, 캠핑, 낚시 등 아이들과 함께 무언가를 하라.

셋째,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희생도 기꺼이 감수하라. 가정경제는 좀 빠듯할지 몰라도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

 

자녀양육의 문제는 편애다. 대부분 부모가 편애한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 좋아하는 아이가 달라진다. 우리 사회에는 자녀들을 평등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불문율이 있어서 이것을 드러내놓고 위반하면, 자녀와의 친밀감을 포기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모든 것이 그렇게 공평하지만은 않다. 부모 역시 자녀와 인간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모든 관계가 그러하듯이 불가피하게 더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유독 정이 가는 녀석이 있을 수 있고, 그런데 중요한 것은 티를 내선 안된다는 거다. 자녀들은 부모가 공평하게 대우하지 않는다고 느끼면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정신건강도 더 나빠지며, 비행 청소년이 되는 경우도 많다.  부모가 편애하는 경우를 보고 자란 아이들은 형제와 자매가 더 많이 싸우고, 덜 행복하게 느끼며, 우애도 덜 돈독하다. 어린시절에 편애를 겪으면 형제 사이가 소원해지면서 시간과 경험, 추억을 공유하지 못하게 된다.

 

어느 정도 편애는 정상이다. 편애를 완전히 안하기는 어려우며, 아무리 편애하지 않으려 노력해도 헛수고가 된다. 아이들은 저마다 개성이 있고, 부모는 보통 자신과 비슷한 아이를 좋아한다. 누구에게는 유독 매력을 느끼면서, 다른 이들에겐 매력을 덜 느끼듯 가족 구성원도 마찬가지다. 이는 정상이며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절대 아이들이 알게해서는 안된다. 아이가 성공하기를 바란다면, 아이를 사랑해야 한다. 살다보면 한두번 쯤은 아이땜에 이성을 잃고 흔들릴 때도 있지만, 할 수만 있다면 절대 체벌을 해서는 안된다.  아이를 때리는 것은 어떤 이유든 사랑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가 분노를 조절해야 한다. 아이와 이야기를 많이 하면 할수록, 아이에게 더 많이 설명해 줄수록 아이는 더 좋아진다.

 

아이를 때리고 나면 부모도 속상하고 좋은 점이 전혀 없다. 사춘기 아이들에게 가하는 체벌은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악화시키고, 그 영향은 자녀가 성인이 된 후에도 지속된다는 사실 역시 연구결과를 통해 알수 있다. 체벌을 자주 당한 아이들중에는 성장한후 자신의 배우자나 자녀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다. 정직하지 않은 행동이나 신뢰를 깨트리는 행위는 부모 자식간 균열의 원인이다. 부모와 자녀의 균열은 배신, 분노, 모욕, 차별 등 돌이킬수 없는 어떤 원인으로 말미암아 부모나 자녀 둘중 한쪽이 혹은, 둘다

내린 결정이다. 어떤 가정이든 균열이 일어날수 있다. 한번 균열이 생기면, 그 균열은 저절로 번지며 회복이 더 어려워진다. 그러므로 균열의 조짐이 보이는 초기에 즉각 행동을 취해야 한다. 양쪽이 입장차이가 있을 경우 아무 노력을 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두면 관계는 급속도로 굳어진다.

 

부모는 자식과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려하고, 관계에 가치도 더 많이 부여하기 때문에 관계가 악화되거나 붕괴 되었을 때 느끼는 상실감도 크다. 이 상실감이 아주 큰 경우 자식과의 균열의 여파가 손자나 손녀에까지 미쳐 이들과도 심리적 거리감이나 단절감이 생긴다. 만일 문제가 있었다면 어쩔수 없다. 지나간 일은 그냥 흘러가게 내버려 두어야 한다. 완전히 끝난 일이다. 어찌해 볼 수 없는 일이니 그냥 흘러가게 내버려 두는 수밖에. 어쨋든 항상 자식과의 균열은 피해야 한다.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가족의 삶에 변화가 생기고,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 아이는 아예 시간과 노력과 온 정신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어버린다. 탄생의 신비부터 아이와 보낸 숱한 불면의 밤들, 아이가 아장아장 걷는 모습을 바라보며 느꼈던 흥분과 아이가 아프면 어떡하나, 성적이 나쁘면 어쩌지, 그렇게 대학을 가고 군대를 가면, 모든 부모가 그러하듯 집을 떠나는 아이의 뒷모습을 지켜본다. 아이가 집을 떠난 후를 생각해 보면 예기치 못한 질문이 떠오른다. 이제 남은 삶을 어떻하지?

 

20대에서 30대에 부모가 된 후 약 20년에서 30년동안 아이와 함께 한지붕 아래서 보내게 된다. 자녀가 립할 무렵 50대가 되고, 이후에도 30년을 살아야한다. 단순히 계산해 보아도 부모로 보내는 시간에는 아이들이 어려서 한집에 살 때 뿐 아니라, 그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도 포함된다. 인간의 평균수명이 크게 늘면서 삶의 형태가 많이 달라졌다. 부모와 성인이 된 자녀가 함께 보내는 기간이 늘어난 것이다. 옛날 같으면 보통 막내 아이가 성인이 되면 부모는 수명을 다하고 세상을 떠났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자녀에게 집중하는 순간은 집에서 아이를 양육할 때이다. 부모와 자녀는 대개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20년에서 30년을 함께 보낸다. 이 시기에 자녀가 독립하면 모든 것이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자녀 독립이후의 삶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자녀들은 결국 부모에게 있어서 삶의 연속성이자 의미이며, 애정이고 무엇보다도 더 큰 삶의 목적이다. 그런데 성장한 자녀들이 부모와 함께 시간을 보내려하지 않는다면, 노년기는 매우 힘들어질지 모른다.

 

자녀를 양육하는 바로 지금 설령 희생을 하더라도 더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고, 가혹한 체벌은 피하고 균열이 생기기전에 불화를 조정해야 한다.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자녀와의 관계도 투자를 해야 보상을 받는다. 옛말에 '미래에 이익을 가져다줄 일은 반드시 지금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훗날 자녀에게 바라는 것은 아이들이 나를 좋아했으면, 나와 가까이 있었으면 하는 소박한 것이었다.  훗날 그런 바램을 이루는데 걸림돌이 될만한 행동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완벽한 아이를 둔 부모는 없다. 모두 자녀 양육을 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시행착오도 있으며, 불행한 시기, 뼈아픈 과오도 있다. 완벽한 아이로 키우겠다는 생각을 버려라. 완벽한 부모가 되겠다는 생각도 버려라. 가능한 한 쉽게 키워라. 우리는 완벽할 수 없다. 하지만 예의 바르고 사랑스러운 아이로 키우기 위해 만족스러운 양육은 할수 있다. 만족스러운 양육이란 '자녀에게 실패를 허용한다'는 말이다. 완벽한 아이로 키우려는 욕심을 버리고, 잘못을 통해 배울수 있도록 아이를 내버려 두라.

 

아이들이 직접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자. 물론 아이들의 결정이 항상 옳지는 않다. 하지만 실수에서 뭔가를 배울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실수를 전혀 하지 않는다면, 어떤 것이 옳은 방법인지 어떤 것이 그른 방법인지 알 수가 없다. 아이에게 결정권을 주는 것이 최상의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은 어려움에 대처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자녀에게 기대수치를 낮추고, 불가피한 실패도 염두에 두라. 문제가 생겼을 때 중요한 것은 대처하는 방법이지, 완벽한지 아닌지가 아니다. 완벽함을 포기하고 만족스러운 정도로 대체하라. 양육에 관한 부모의 덕목은 열린 마음과 아이의 말을 들어주는 자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