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독의 위로( 앤서니 스토 지음, 이

불행을 극복하는 창조

상상력은 얼마간 외로운 어린시절을 보낸 재능있는 사람들에게서 특히 발달되는 경향이 있다. 고독은 상황에 따라 해로운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이로운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상황이 지나치게 열악해서 정신분열을 일으킬 정도만 아니라면, 인간관계가 얼마간 부족한 것은 오히려 상상력의 밑거름이 된다. 어린시절에 여러 박탈을 경험하다 보면 친밀한 애착관계를 맺기가 어려워진다. 이럴 때 상상의 세계는 불행에서 비껴나고 상실을 보상받게 해주며, 미래 창조활동의 기반이 되게 해 준다. 창의력이라는 재능을 지닌 사람들이 맺는 관계는 폭이 좁고 불완전할 수 있다. 창조적인 예술가들은 본질적으로 가치있는 관계보다는 작업에 도움이 되는 관계를 선택하는 경향이 많다. 동년배들과 관계맺는 것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어른이 되면 작가가 되든, 되지 않든 아이들이나 동물들과 있을 때 더 편안해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가정을 꾸리는 것을 힘들어 하는 사람들은 대개 끊임없이 여행을 하거나, 자주 이사를 한다. 그들은 매력과 사랑스러운 성격덕에 친구들이 많지만, 본질적으로 외로움을 끝내 극복 못하는 사람들이다. 행복은 자신이 만들어야 하며 스스로 지탱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어떤 어려움도 견딜수 있다.

 

벌을 받을까봐 두려워 하면서 자란 아이들만 경계심과 불안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건강이 좋지 못한 어머니와 지내야 하는 아이들 또한 지나치게 불안해 하며, 주위 눈치를 본다. 그런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의 기분은 금방 알아차린다. 또한 여느 아이들처럼 어머니나 다른 보호자에게 쉽게 기대지 못한다. 늘 경계 하고 조심하는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다른 사람들이 말을 잘 들어주고, 다른 사람들에게 의지가 되어주면서도 정작 자신은 그들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고 제대로 된 관계를 맺지 못한다. 관계를 맺는데서 느끼는 어려움이 꼭 어린시절의 불행한 환경 때문인 것도 아니다. 사람들은 성장환경도 다 다르지만 유전적 기질도 다르다. 어린시절에 아무리 많은 애정을 받아도 타인과 가까운 관계를 맺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간관계의 부족한 부분을 소설 창작보다는 부를 쫓으면서 메우는 사람들도 있다. 작가를 만드는 재능은 상실과 고립속에서 싹틀 수 있다. 친밀한 애착의 대체물이었던 것이 그 무엇 못지않게 유익하고 재미있는 삶의 방식이  될 수 있다. 그들 삶의 중심이 친밀한 애착이 아니라고 해서 그 삶이 충만하지 않다고 생각할 이유는 없다.

 

글쓰기는 치료의 한 형태다. 글을 쓰거나, 작곡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지 않는 사람들은 인간의 상황에 내재해 있는 광기, 우울증, 두려움을 어떻게 피하는지 궁금하다.( 그레이엄 그린: 영국작가) 창조적 상상은 치료역할을 한다.예술가는 예술작품에서 일체감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통해 외부세계에 실제로 존재하는 작품을 창조한다. 어릴적 부모 잃는 경험이 나증에 나이를 먹어 겪는 정서적인 문제와 종종 연관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얘기다. 어린시절에 사별한 환자들이 사별의 경험이 없는 사람들에 비해 더 어려움을 느끼는 것은 확실했다. 그들은 강렬하고 불안정한 인간관계를 맺으며, 만성적인 공허감과 권태를 호소했다. 공허감이 우울증에서 가장 흔히 나타나는 증상이므로 어린 시절에 경험한 환자중 일부는 만성적인 우울증 증세를 보인다고 할 수 있다. 무조건 사랑을 받는다는 느낌이 내면에 확실하게 자리 잡고 있을 때 자아존중감이 생긴다고 했다. 어린시절 내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존재는 어머니이기 때문에 어머니와 사별하고 나면, 사랑 받는다는 느낌을 내면에 간직하기 어렵고, 그 결과 자아존중감을 형성하거나 유지하는 것 또한 힘들어진다. 어린시절 부모와 따뚯한 관계를 맺지못한 것이 성인기에 나타나는 우울증의 주된 요인이라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자아존중감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사람이 우울증에 잘 걸린다는 말이다.

 

자아존중감은 사랑받는다는 느낌뿐 아니라, 유능하다는 느낌도 관계된다. 이혼하거나 베우자와 사별해 우울해 하는 사람들은 그들을 사랑해줌으로써 자아존중감을 갖게 해준 상대를 잃었다는 상실감 뿐 만 아니라, 혼자서 살아가면서 느끼는 무력감 때문에도 종종 실의에 빠진다. 열한살 될때까지 아이는 주로 엄마를 통해 세상을 통제하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이후에는 자신이 직접 통제력을 발휘하려고 한다따라서 어머니를 일찍 잃을수록 아이는 환경을 지배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다. 열살이 되기 전에 어머니를 잃은 어린이는 훨씬 더 의존적이되며, 의존적인 성향은 자신이 무능하다는 느낌, 삶의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는 느낌과 밀접하다. 부모를 대신해줄 사람과 결혼하면, 혼자서는 세상을 극복할 수 없다는 의식이 더 강해진다. 의지가 되어주고 조언을 해주고, 결정을 내려주는 누군가가 늘 곁에 있으면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하는 법을 배우지 않으려 한다. 배우자에게 유달리 의지했던 사람이 배우자를 잃으면, 그렇지 않았던 사람들보다 무럭감을 더 많이 느낀다. 이 무력감이 오래도록 지속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가하면 더 이상 의지할 사람이 없기 때문에, 이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한 힘을 스스로에게서 발견하는 경우도 있다.

 

배우자의 죽음, 이혼, 실직, 신체적 상해, 징역과 같이 힘겨운 변화를 겪으면서 이런 상황을 혼자 힘으로 감당할 수 없다고 느낄 때, 이런 느낌의 시간이 지나면, 병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자신의 삶이 주로 외부의 힘에 의해 좌우된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삶을 스스로 헤쳐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 비해 스트레스에 취약하고, 더 크게 고통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별로 심각하지 않은 상실이나 실패를 겪었는데, 그에 비해 심각한 우울증을 보이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주로 인간관계에서 자아존중감을 찾으려는 태도 역시. 고통에 취약한 성향으로 이어질수 있다. 어린아이들이 인간관계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면, 그들이 천재가 아닌 이상 관심분야와 능력을 개발할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하고, 그 결과 자신의 능력에 대한 확신도 약해질수 밖에 없다. 반면 창의적인 작품에서 자아존중감을 찾는 사람은 가까운 인간관계에 전적으로 의지하려는 사람에 비해 강점을 지닌다.

 

글쓰기를 비롯한 다양한 창작활동은 상실을 적극적으로 극복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창조활동은 대응기제, 즉 정서를 표현하는 방법일 뿐만 아니라, 통제력을 발휘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사실 창작에 별재능이 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어떤 일로 고통받을때 정서를 표현하면, 어느 정도는 상황을 통제하는 느낌을 얻는다. 질서, 일체감, 완전함의 추구는 기질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의 삶에서 아주 중요한 동력이 된다. 누구나 마음 속에서 어느 정도는 상상을 갈망한다. 내면의 부조화가 클수록 조화를 찾고자 하는 충동이 더 커진다. 그래서 재능이 있는 사람의 경우 조화를 창조하고자 하는 충동이 커진다.

 

유리 같은 시냇물, 넓게 가지를 뻗은 소나무

미풍에 떠는 오리나무들

그것들은 상처받은 영혼들을 위로 할 수 있을 것이며

누군가를 즐겁게 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처럼 언제나 변하지 않는 보살핌도

내면의 슬픔을 위로해 주지는 않는다.

모든 곳에 슬픔이 있으면

계절과 풍경도 아무 상관이 없다.

 

아름다움을 머리로 인식하면서도 감정적으로 느끼지 못하는 것은 우울증의 한 가지 특징이다. 우울증을 회복하는데 가장 장애가 되는 것은, 악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복종하는 태도다. 이런 태도는 삶에서 습관으로 굳어진다. 오랫동안 환경에 타성적으로 목적없이 복종하는 존재가 된다. 시인들은 극심한 기분 변화에 잘 빠진다. 정신질환에 걸리기 쉬운 성향의 작가들에게는 그것이 자극이 되어 내면의 깊은 곳을 탐험하고, 고통스럽고 대개는 보답없는 작업을 시작하게 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대부분의 창의적인 사람들이 보통 사람들에 비해 더 쉽게 불안해지면서도, 자신의 갈등과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능력 또한 더 많이 갖추고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과잉적응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잃어버리는 외향적인 사람은 고독속에서 진정한 자아를 회복하고 표현할 수 있다는 얘기를 한다. 또한 어린시절의 분리되고 고립된 경험 때문에 제대로 내면의 성장을 이루지 못한 사람은 상상력을 발휘하면서 위안을 얻는다. 한 단계 더 나아가 창작과정은 개인이 우울증에 짓눌리지 않도록 보호하는 역할도 한다. 창작과정은 상황을 자신의 힘으로 지배한다는 느낌을 되찾게 해주며, 사별로 자아에 상처를 입거나, 인간관계에서 자신감을 잃고, 우울증에 빠질 때 어느 정도는회복할 수 있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