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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의 위로( 앤서니 스토 지음, 이

혼자서만 느낄 수 있는 충족감

관심은 그 사람이 혼자 있을 때 혹은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와 상호작용이 극히 적을 때 나타난다. 신경이 외부로 쏠리지 않아 공상이 아주 활발해진다. 기본적인 신체적 욕구가 층족된 사람들이 여가 시간에 관심을 갖고 하는 여러 활동도 그렇다. 모든 사람은 인간관계뿐 아니라 관심사도 필요로 한다. 관심사도 인간관계 못지않게 개인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삶에 의미를 주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어떤 사람들은 주로 인간관계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려 하며, 또 다른 사람들은 흥미, 믿음, 사고의 형태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려 한다. 창조의 재능이 있는 사람에게는 인간관계가 아무리 중요해도 인간관계보다 그가 노력을 쏟는 특별한 분야가 훨씬 더 중요한 때가 많다. 그의 삶에 의미를 주는 것은 인간관계보다 일이다. 사실 창의적인 사람중 다수가 성숙한 인간관계를 맺지 못하며, 때로는 지나치리 만치 고립되어 지낸다. 그런데 창의력이 잠재되어 있는 사람은 어느 정도 고립되어 지낼 때, 어린시절의 분리나 사별로 생긴 외상이 동력이 되어 창작의 방향으로 개인성이 발달하기도 한다. 아주 만족스러운 인간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라 해도 뭔가를 성취하려면, 인간관계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상상력의 발달덕에 인간은 자기계발의 중요수단, 자아실현으로 가는 중요한 과정으로 인간관계 뿐만 아니라,  인간관계 이외의 것까지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모든 사람에게는 잠재력이 있다. 다만 그 잠재력이 배아 상태로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고대인이 재물로 쓸 동물을 정확히 그렸다면, 그만큼 자신이 그리고 있는 동물을 잘알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잘알수록 사냥에 성공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대상에 이름을 붙이는 것이 첫번째 창조적 행동이라면, 그 대상을 그리는 것은 두 번째 창조적 행동이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관념을 형성하는 것과 비슷하다. 종교의 개혁으로 인해 칼뱅주의가 성장하고 프로테스탄트 윤리가 확립되었다. 그로부터 오래 지나지 않아 가난은 게으름이나 무책임에 대한 벌로, 부의 축적은 근면과 절약이라는 미덕에 대한 보상으로 인식되었다. 사회의 규모가 커지고 복잡해질수록 작업이 전문화 되면서 개인이 더 뚜렷이 구별되었다. 도시가 성장하면서 사회적 관계는 더 느슨해지고 덜 친밀해졌다. 그리고 사람들은 소규모 사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친밀한 관계에서 해방되면서 자유를 얻은 반면 어떤 전통적 규범에도 속하지 않는 데서 생기는 괴리감을 느껴야 했다.

 

정신분석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신경증을 없애거나 성격의 기본구조를 바꿀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 삶의 혼란스러운 면을 듣고 이해해주려고 하는 작업 자체만으로도 사람들은 마음을 열려고 한다. 원시사회 같은 공동체 생활에서는 집단감정의 공유에 높은 가치를 둔다. 집단의 견해와 다른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를 갖거나 창의적인 글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웠던 듯하다. 그런 환경에서는 감정만 억압당하는 것이 아니라 파괴되기 때문이다. 개인의 자아는 너무 허약하게 느껴져서 강력한 집단자아가 사라지면 존재할 수가 없다. 우리의 삶은 타인과의 친밀한 애착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신앙심이 깊은 사람중에는 금욕과 고행, 명상과엄격한 규율의 고독한 삶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것이었다. 누구나 은둔자의 삶을 살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아주 일찍부터 깨달았다. 그래서 수도원의 전통이 생겼으며, 거기에서 수도사들은 이제 혼자 지내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이루면서 하나님을 향한 헌신의 삶을 살았다.

 

타인과의 친밀한 애착을 중요하지 않게 여기는 사람의 삶이 꼭 불완전하거나 열등한 것은 아니다. 인간의 본성 때문에 인간관계는 필연적으로 불완전 할수 밖에 없는데도 인간관계에서 완전한 충족감을 찾도록 사람들을 부추기면 해악이 더 크다. 오늘 날 현대사회에서 이혼이 증가하는 이유는 결혼을 하면서 딱맞는 사람과 이상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죽을 때까지 변함없이 친밀한 관계를 맺고, 그런 관계에서 행복을 느끼는 운 좋은 사람들도 많이 있다. 하지만 아주 친밀한 관계라 해도 분명 결점과 약점이 있게 마련이며, 사람들이 그런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기 때문에 필요이상으로 불행해 하고, 서로를 포기하려 하는 것이다. 어떤 관계도 완벽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사람들이 인간관계가 아닌 다른 영역에서 충족감을 얻으려 하는 이유가 쉽게 이해가 된다. 창조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고립되어 살면서 자아실현과 자기계발, 혹은 삶과 관통하는 일관된 형태를 찾는 것에 관심을 기울인다. 누구에게나 어느정도의 인간관계가 필요하다. 하지만 동시에 혼자서만 느낄 수 있는 충족감도 필요하다. 주변에 친구와 지인이 있고, 또 자신에게 중요한 일에 열정적으로 몰입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주변사람들과 아주 친밀한 관계를 맺지 않아도 행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