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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재발견 (하르트무트 라데볼트

노년의 또다른 삶의 기회찾기(1)

전쟁의 상흔으로 얼룩졌던 유소년기를 보낸 경험은 나이 들면서까지 기본적으로 짐으로 작용한다. 이런 경우 평생 바쁘게 일하고, 나이가 들어 의무에서 벗어나면 내적 공허가 찾아온다. 나이든 많은 여성들은 지금 나는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질 때가 많다. 많은 여성들이 이렇게 말한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누가 말해주었으면 좋겠다고...' 그들이 하고 싶은 것은 다 마음속에 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런 생각을 유치하고 아이같은 꿈으로 치부하고 억눌러 버린다. 이것을 찾는 것이 나이든 사람의 과제다.

 

* 어린시절 관심과 취미가 무엇인가?

* 그중에 어떤 것을 되살리고 싶은가?

* 평생 꿈꾸어 온 일이 있는가?

*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어떤 것을 배워야 하고, 어떤 도움을 받아야 하나?

 

우리는 일생동안 변화를 경험한다. 유소년기에는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발달과정 가운데 끊임없이 변화를 겪는다. 그래서 우리는 주변세계는 변화하지 않기를, 최소한 외부세계는 안전하고 믿음직스럽게 유지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청소년기에 접어들면 변화를 추구하고 부모로부터 벗어나려 한다. 그렇게 60세까지는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반면 노년기는 정적으로 다가오고 변화가 별로 없을 것 같은 삶을 살아야 할 것만 같다. 그러나 60세 이후 겪게 되는 변화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직업활동에서 은퇴한다. 직업적인 인맥이 끊긴다.

* 노화 와 질병으로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변한다.

* 인간관계가 변한다. 어떤 관계는 돈독해지고, 어떤 관계는 약화된다.

* 사회적 역할과 기능이 변한다.

* 자립능력과 독립성이 감소한다. 도움을 받아들이는 일이 자연스러워진다.

* 주어진 삶의 기간이 점점 더 짧아지고, 남은 삶이 어느 정도인지 보장할 수 없다.

 

노년기의 변화는 전과 달리 대부분 주체적으로 꾀한 것이 아니라 강제적으로 주어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변화의 결과를 감수해야 한다. 또한 노년기의 변화들은 상실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중요한 사람들을 떠나보낸다든지, 자신의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기능을 잃어버린다든지, 삶의 가능성과 독립성을 상실한다든지.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는 경우는 애도를 통해서만 그 상실을 받아들일 수 있다. 애도함으로써 서서히 내적 전환을 통해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 예전에는 가까운 사람을 잃은 경우 최소 반년 또는 1년의 애도 기간을 갖곤 했다. 애도는 누구를 혹은 무엇을 잃었는지 차츰 고통을 깨달아 가는 것이다. 슬픔은 얼굴표정, 태도

등에서 다양하게 드러난다. 애도는 여러 단계를 포괄한다. 충격, 부정, 상실과의 대면, 상실로부터 서서히 떨어져 나오는 과정을 거친다. 애도 과정이 마무리 되고 나면, 보통은 다시금 자유롭게 주변과 새로운 인간관계와 삶의 가능성과 관심사에 시선을 줄 수 있다.

 

애도가 끝나지 않고 지속되는 경우가 있다. 이에 해당하는 사람은 마치 고인이 아직 살아 있기라도 한 것 처럼 삶을 살아간다. 이런 경우 새로운 인간관계가 끼어들 자리가 없다. 시도는 해보지만 끊임없이 고인과 관계 짓고 모든 이야기가 고인에게 귀결됨으로써, 새로운 인간관계는 막혀 버린다. 그리고 병적인 슬픔이 우울증으로 옮겨가기도 하는데, 의기소침, 무관심, 불면증, 죄책감, 자살충동, 우울증의 증상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아직 우울증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압박감, 절망감, 무기력감 같은 증상보다는 오히려 피로, 두통, 복통 등을 비롯하여 신체적 원인을 찾을 수 없는 불편을 호소한다. 애도는 상실이라는 현실을 인식하고 슬픔을 경험하고 표현하며, 주변의 변화를 극복하고 스스로 회복하고 살 힘을 얻는 것을 의미한다.

 

노년기 상실로 인해 일상을 물러나 있는 경우 결과가 좋지 않을 수 있다. 중요한 사람을 잃었을 때 슬퍼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일로 겪는 반응과 감정은 당연한 것이지, 이상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매우 정상적인 영적인 과정이다. 그러므로 이런 노인들과 함께 하되 약간 거리를 둔 채 애도과정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으며, 그가 어떤 주제에 머물러 있는지를 면밀히 관찰해야 한다. 노인들은 도움을 청하기보다 젊은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한다. 노인은 스스로 건강에 신경쓰고 자신을 돌보고 매일 일과를 계획하고, 외부 세계를 위해 할 일을 찾고, 의도적으로 도움을 구하고, 사람들과 만나려고 애쓰는 것이 중요하다. 나이들면서 동반되는 변화는 수치심을 불러일으키고, 계속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요인이 된다. 외모, 능력, 매력, 정력 등 모든 것이 유감스럽게도 뚜렷이 나쁜 쪽으로 변한다. 나이 들어가면서 어떤 점이 내게 문제로 다가오고, 힘들게 하고, 갈등을 빚는지 이해할 수 있는가? 노화로 인해 우리 모습이 우리의 자아상과 이상형에서 점점 멀어지면서 우리는 모욕감과 불쾌감을 느낀다. 솔직하게 자신을 살피면 어떤 부분이 가장 실망스러운지를 알 수 있다. 어떤 측면이 걱정스러운가? 머리가 빠지는 것, 머리가 희지는 것, 주름이 생기는 것, 치아가 흉해 지는 것, 팔다리가 가늘어지는 것, 정력감퇴.... 나이 든다는 것 어떤 부분이 가장 나를 상심하게 하는가?

 

세월이 지나서 돌아보면 지금 그렇게 상처되는 것들이 별로 중요하지 않고 문젯거리가 되지 않음을 명심해라. 사실 상실이나 슬픔으로 더 이상 매사에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고 회피하는게 더 문제다. 외출도 하지 않고 모임도 가지 않고, 목욕도 하지 않고, 잘 웃지도 않고, 소극적으로 물러나는 것이 진짜 문제다.  나이 들어가면서 쩔수 없이 생기는 변화로 인해 지금까지 당연하고 좋고, 자신의 잣대로 만족스러웠던 기능과 행동들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된다. 그로인해 많은 사람들이 불쾌감을 느끼고 좌절하고 수치심을 느낀다. 듣고 보고 먹는 것이 더 이상 예전처럼 되지 않는다. 재확인해야 하고 자꾸 뭘 흘리고 더럽힌다. 감정조절도 잘되지 않는 듯하다. 쉽게 삐치고 울기 시작한다. 종종 이런 제약들은 눈에 띄지 않고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으며 심지어 수용된다. 대부분 제약보다는 제약에 대한 주위의 반응을 지레 의식하고 움츠러들기 때문에 계속 회피하고 물러나는 것이다. 나이든 사람들은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욕구를 부끄러워 한다. 수치심이 느껴지더라도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소망, 욕구와 대면하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