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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재발견 (하르트무트 라데볼트

만족스러운 노후를 위해 필요한 지식들(1)

우리의 삶은 종종 여행에 비견된다. 장소를 이동하는 여행이 아니라 끊임없는 변화를 동반하는 삶의 시기를 통과하는 여행이다. 그 변화들은 노력해서 이룬 것일 수도 있고, 주변 상황이나 운명이 부과한 것일 수도 있다. 이렇게 볼 때 오늘날의 60대앞에는 나이 들어서 통과해야 하는 여정들이 놓여 있다. 나이들어 통과해야 하는 여정을 위해 모델로 삼을 만한 사람은 흔치 않다. 그리고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는 것은 극도로 개인적인 겅험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는 아주 모호한 인식인 경우가 많으며 전체적으로 볼 때 문제가 있고, 그리 유용하지도 않다. 가능하면 오랫동안 자립적인 삶을 살고, 자신의 상황과 인간관계를 만족스럽게 형상화하고, 필요한 경우 도움을 청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하기를 요구한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우선 다음 사항을 조사필요가 있다.

 

* 나의 신체적, 정신적 상태는 어떤가?

* 재정적인 가능성과 다른 가능성은 어떤가?

* 알맞은 옷과 장비는 있는가?

* 함께 여행할 사람은 있는가?

* 전문적인 여행동반자가 필요한가?

 

나이듦을 여행에 비유할 때 우리는 재정적 가능성, 필요한 장비, 특별한 관심에 대해서도 질문해야 한다.

* 정기적인 수입은 얼마인가?

* 살림, 주거, 자동차, 여가 등에 열마나 지출 하는가?

* 미래에는 얼마나 지출을 할 것인가?

* 현재 보유한 보험이 전부 필요한가?

* 집안 구조는 노후생활에 맞게 설계되어 있는가?

* 대중교통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가?

* 물품은 쉽게 구입할 수 있는가?

* 병원, 은행 등은 이용하기 편리한가?

* 노동의 부담은 얼마나 되는가?

* 자동차를 이용할 수 없다면 크게 불편한가?

* 다른 사람의 손이 필요한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홀로 여행해야 하는 경우 장기적으로 볼 때 지루하고 우울하고 위험하다. 그렇다면 기존 인간관계망에서 우리는 어떤 동행자들을 가지고 있는가?

* 현재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가?

* 친척, 친구는 어떤가?

* 이전의 직업활동과 현재의 봉사활동과 관계된 사람은 얼마나 되는가?

* 부부가 공동으로 맺고 있는 관계는 얼마나 되는가?

* 최근 10년 동안 새로 사귄 친구가 있는가?

 

노후 여행은 특별한 관심사를 쫓을 기회를 제공한다.

* 나는 어떤 관심사와 취미를 추구하는가?

* 어떤 것을 혼자하고 어떤 것을 배우자와 함께 하는가?

 

의사들 또는 다른 노인전문가들은 보통 노년의 우울한 측면과 계속 마주치게 되고 만성질환, 중질환, 진행질환을 앓고 있는 노인들을 종종 사망시점까지 치료하고 돌본다. 의사들 역시 질병과 상실과 고독과 노화로 인한 어려움을 두려워한다. 그러다보면 나이듦과 노화에 거부감을 가질 수 있다. 이런 태도는 치료에 악영향을 끼친다. 인생여정에서 계속 당면하고 해결해야 하는 발달과제가 있다는 이야기는 이미 언급했다. 은퇴로 말미암아 당면하게 되는 발달과제를 파고들면, 지금까지 많은 과제가 지체되어 있음이 드러난다. 정체된 것을 신속히 청산하고 해결해야 하는 것이 팔요하다. 현재 60-65세 의 사람들 앞에는 더 고령의 나이로 나아가기 위한 발달과제가 놓여 있다중년에 속한 사람들은 직업상 과중한 부담과 요구로 인해 지치고 함들어 하는 경우가 많다. 힘든 데 비해 별로 인정 받지 못하고 좋은 소리도 못 듣는다. 그래서 그들은 오랫동안 은퇴를 바란다. 이미 은퇴하여 여유롭게 사는 연금생활자들을 부러워한다. 그러나 퇴직이 다가올수록 확정날짜가 가까워질수록 많은 사람들은 예상과 달리 불안하고, 초조하고 거부감을 느낀다.

 

남성의 경우 은퇴를 하고 나면 이제 의미없고 중요하지도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느낀다. 고물로 전락하여 나머지 인생을 아무런 쓸모없이 살아가게 될 것을 두려워한다. 퇴직즈음에는 다음 세가지를 질문해야 한다.

* 무엇으로부터 떠나는 것인가?

* 현재 상황은 어떤가?

*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가?

 

그런데 이런 질문은 경시된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일이 있었다. 꽉 짜인 일과가 있었다. 정해진 시간에 등교나 출근을 해야 했고, 해야 할 일이나 공부가 있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로 또는 상사, 담임 선생님의 평가가 있었다. 학교는 나중에 우리가 노동세계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여러 해에 걸쳐 우리를 훈련시켜왔다. 그 후 오랜세월 우리의 인격은 직업적인 활동과 지위, 그로인한 수입과 뗄려야 뗄수 없었다. 거기에 능력, 직함, 지위상징이 더해졌다. 모르는 젊은 청년이 나타나면 사람들은 이렇게 묻는다. '나중에 뭘 할 거래?, 무슨 일 하는 사람이야?' 직업을 갖는다는 것은 지금까지 우리에게 든든한 안정감을 선사했다. 경제적 발전이 거듭 되면서 이들은 나중에 가장 강력한 소비주체가 되었고, 경제성장과 소비에 참여항 기회를 갖게 되었다. 사람들은 드디어 바라는 바를 이룰 수 있었으며, 일생동안의 직업활동과 그로써 달성한 지위는 그들의 자신감에 기여했다. 학창시절을 시작으로 거의 60년간 굳어져 온 생각들이 이제 직업활동의 마감을 앞두고 문제없이 전환될 수 있으리라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직업활동의 마감을 의식적으로 원했고 마음속으로 준비했을지라도 다르지 않다. 그렇게 준비된 조건아래서도 이런 변화의 걸음을 신체적, 정신적으로 완수하기 까지는 최소 2-3년이 필요하다. 은퇴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미처하지 못한 사람들은 이런 변황에서 수년간, 일부는 심지어 죽을 때까지 자신이 가치없고 중요하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며 괴로워 할수 있다. 그는 퇴직무렵 회사가 자신을 붙잡을거라 생각했지만 결국 남들과 같이 퇴직했다. 그는 깊이 상처 받았고 커다란 공허감을 느꼈다. 자신의 인생이 더 이상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두자녀는 오랜전에 독립한 상태다. 그 동안 직업 활동에서 물러나는 것, 그리고 자녀들과 관계를 개선하는 것 등의 발달 과제를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이제 이런 과제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부부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살지 아내와 이야기 하고 계획하기 시작했다.

 

근무연령제한이 법적으로 철폐된다면, 그래서 연령 때문에 퇴직하지 않는다면, 과연 무엇 때문에 퇴직할 될 것인가? 그것은 퇴작하는 모든 이의 능력을 평가하여 그가 신체적, 정신적으로 자신의 일을 제대로 수행할 없음을 증명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오랜세월 힘들게 일한 후 이런 평가로 인해 상처받고 의기소침한 채로 강제로 직업활동을 끝내야 한다 말인가? 지금처럼 제한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미리 퇴직에 대한 준비를 할 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의 다양한 국면을 자각할 수 있는 시간의 창문은 퇴직하고 나서야 비로소 눈에 보인다. 퇴직연령을 두는 것이 좋은 이유가 있다. 그것은 현재의 높은 실업율, 앞으로 더 높아질 실업율을 고려할 때 퇴직하지 않고 너무 오랫동안 직업활동을 계속하는 사람은 젊은이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로 인해 젊은이들은 배운 것을 현장에서 활용해 보지도 못하고, 안정된 수입을 올릴 기회도 얻지 못하게 된다.

 

많은 여성들이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구사해 왔기에 퇴직문제와는 무관한 것 처럼 여긴다. 살림을 하고 가족을 돌보는 등 지금까지의 과제와 의무는 변함없이 유지되어 그들에게 안정감을 부여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여성들의 직업활동도 나이가 들면서 변화를 겪게 된다. 하루의 리듬이 달라지고, 돌봄의 과제가 변화되거나 없어진다. 집안 일도 분담될 수 있고 분담되어야 한다. 남편이 가정으로 복귀하면 부부 둘만의 생활이 시작된다. 자녀들이 독립했다면 가족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부부가 함께 계속해서 둘이서 함께 살고자 한다면 , 어떤 모습으로 함께 살아가고, 어떤 형태로 삶을 꾸려가고자 하는가? 부부는 각자, 그리고 공동으로 자신들의 관심사와 바람을 어떻게 추구하고자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