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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가 되는 삶들 (지그문트 바우

쓰레기가 되어 가는 삶

당신은 차량점검은 매년 하면서 파트너와의 관계는 점검하지 않는가? 정말 그렇다. 차에게 그래야 한다면 파트너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즉 당신의 요구를 만족시켜 줄 때에만, 그리고 작동방식이 당신 마음에 드는 한에서만  서로가 의미가 있다. 이들이 자기과업을 영구히 잘 수행할 것이며, 당신의 만족감은 영원하리라고 가정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차는 결국 낡기 마련이므로 점차 번쩍거림과 광택을 잃고 작동을 멈춘다. 열쇠는 점화장치에 꽂는 것만으로로는 더 이상 달리게 할 수 없다. 계속 주행하게 하려면 전에 없던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여기에 기울여야 하는 주의는 시간과 정력을 소모한다. 수확체감의 법칙이 작용하는 것 같다. 처음에는 조금만 노력해도 대단히 새롭고 경험해보지 못한 흥분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점점 더 많은 생각과 헌신과 노동을 투자해야만 다음 번에도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일일까? 더 좋은 신형차, 더 멋지고 매력적이고 운전하기 쉽고 말을 잘 듣는 차들이 수없이 많이 있다. 차를 바꿀 생각을 할 때가 된 것이다. 낡은 차를 쓰레기로 버릴 때가 된 것이다. 어쨌든 차라는 물건이 영원히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인간관계의 사용/소비가 자동차 사용/소비의 유형을 재빨리 따라 잡으며, 구매에서 시작해 쓰레기 처리로 끝나는 주기를 반복하는 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영국에서 함께 사는 기간은 평균 2년 정도이다. 결혼한 부부의 40%가 결국 이혼한다. 미국에서는 이 비율이 50% 이며 계속 상승 하고 있다.

 

철저하게 개인화된 우리 사회에서 친구와의 우정이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 아마 그것은 타당 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의 수가 증가 하고 잇다. 사회통합을 지탱하던 전통적 구조들이 빠르게 해체되는 상황에서 우정으로 맺어진 관계들이 우리의 구명 조끼나 구명선이 될 수 있다. 우정을 후기 현대생활의 ‘사회적 호위’라 부른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는 듯하다. 후기 현대 또는 유동적 현대의 삶에서 인간관계는 모호한 문제로서 날카롭고 신경을 건드리는 양쪽 감정의 초점이 되는 경향이 있다. 우리 모두가 열렬히 원하는 우정을 얻기 위해서는 언제나, 적어도 부분적으로나마 독립성을 포기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아무리 우정을 열망해도 독립성을 포기하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다. 관계의 단절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일이며, 미리 생각하고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계산해본 결과 그러한 관계가 폐기될 가능성이 높게 나온 경우, 앞날을 내다보는 신중한 충고는 미리미리 폐기물 처리 시설을 잘 준비해두어야 한다.

 

당신은 인생에서 타인이 없다는 끊임없는 결핍감, 사별의 아픔과 유사한 공허함과 외로움으로 괴로워 한다. 당신은 애인과 친구로부터 버림받을 것이라는 두려움에 영원히 시달릴지 모른다. 이것은 즉석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파트너 관계로 점절된 삶의 자연스럽고 논리적이며, 합리적인 귀결인 듯하다.  우리 모두가 두려워 하는 것은 우리 존재가 버림받고, 배제되고, 거부되고, 배척되고, 부인되고, 버려지고, 빼앗기는 것이며, 우리가 되고자 하는 바가 거절당하는 것인 듯하다. 우리는 난감하고 불행한 상태로 혼자 남겨지는 곳을 두려워한다. 우리가 가장 절실히 그리워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일들이 우리에게는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확실성이다. 최첨단 테크놀러지의 본산이자 현대판 멋진 신세계의 전진기지인 실리콘 밸리에서 평균 고용기간은 직종을 불문하고 8개월이다. 이것이 바로 지구촌 시민 누구나가 부러워하고 열심히 모방하려고 애쓰는 더없이 행복한 삶이다. 대부분 우리가 얼마나 오래 이 자리에 머무를지 확신하지 못하며, 지금 우리와 한자리에서 교류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오래 머무를지 확신하지 못한다. 만약 현재의 유대 관계가 어느 순간에 끊어질지 모르는 것이라면, 이러한 유대를 강화하기 위해 시간과 자원을 투자하고, 이러한 유대가 훼손되지 않게 보호하는 데 배전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친족과 운명적 형제들의 진정한 네트워크가 우리의 노력 여부와 무관하게 당연히 제공하던 안전망이 해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휴대전화의 전화번호부가 잃어버린 공동체를 대신하고 있고, 잃어버린 친밀성을 대신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으며, 일련의 기대 -온전히 지탱하는 것은 고사하고, 그것을 품을 힘도 없는-를 채워줄 것으로 기대 되고 있다.

 

가족간의 지속적인 대화와 가족관계들을 점점 더 대체해 나가고 있는 누군가와의 소소한 상호작용들이 소셜네트워크에 의해 급격하게 번져나가고 있다. 사람들이 전자기술에 의헤 쉽게 형성되는 접촉에 노출됨에 따라, 현실세계의 사람들과 자발적으로 상호작용을 하는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우리 주변에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진짜 사람들과의 복잡하고, 어지럽고, 예측불가능한, 끼어들거나 빠져 나가기 어려운 상호작용에서 도망치기 위해 휴대전화에 손을 뻗어 격렬하게 버튼을 눌러되며 메시지를 보낸다. 3분데이트와 휴대전화 메세지로 이루어진 허깨비 공동체가 방대할수록 진짜 공동체를 유지하는 작업이 더 힘겹게 느껴진다.  아무리 애써도 상인들이 없애주겠다고 약속한 갈증은 사라지지 않는다. 인간은 아마도 소모품으로 재활용될 수 있겠지만 소모품은 인간이 될 수 없다. 뿌리, 친족관계, 우정, 사랑을 절실히 찾도록 고취하는 유형의 인간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쓸모 있는 것과 쓰레기 사이에 선을 긋는 사람은 우리 소비자들이다. 몇몇 고독한 승리자를 제외하면, 진정으로 필수불가결한 사람은 없으며, 인간은 타인에게 이용될수 있는 동안만 타인에게 유용하며 쓰레기통은 더 이상 그러한 이용 방식에는 맞지 않거나, 그러한 방식으로 이용당하고 싶지 않는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도착지이다. 생존은 인간이 집단을 이루면 벌일 수 밖에 없는 게임의 이름이며, 생존에 걸린 궁극적인 판돈은 '타인보다 오래 살아남기' 이다.

 

빅브라더는 적합하지 않거나 다른 보다 덜 적합한, 덜 영리하거나 덜 열성적인, 능력이나 자원이 덜 풍부한, 짜투리 인간들을 내쫓는데 열중한다. 그리고 한번 쫓겨나면 영원히 쫓겨나게 된다. 그들이 있는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을 골라내 거기서 쫓아내면서 그들이 어울리는 곳으로 추방하거나 근처에 오지 못하게 한다. 20세기 내내 우리 조상들은 빅브라더의 가공할 권력에 맞서 싸우며, 담장과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울타리와 감시탑을 무너뜨리기 위해 투쟁하면서 선택의 시간이 스스로 선택한 길을 따라 걷는 것을 꿈꾸었다. 그 꿈은 상당부분 실현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결국 또 다른 빅브라더의 감시의 눈길 아래 놓이게 되었다. 포함/배제의 게임이 공동의 인간생활을 영위하는 유일한 방식인지, 그리고 그러한 게임이 우리가 공유하는 세계가 결과적으로 취하게 될 것이라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형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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