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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가 되는 삶들 (지그문트 바우

국가의 역할

사람들을 무력화 시키고 있는 불안의 근원을 필사적으로 찾는 시민들의 갈채속에서 국가는 공개적으로 위력을 시위한다. 가장 힘 없고 불안한 생활을 하고 있는 주변인들을 범죄자 취급하고, 가장 호되고 엄격한 강경정책을 고안하며 시골에서, 또는 해외에서 유입되어 도시들의 교외에 버려진 인간쓰레기에 초점을 맞춰 거창하게 범죄자와의 전쟁을 벌이는 것이다. 계속 증가중인 대규모 폐기된 인간의 무리가 바로 곁에 있는 상황에서 사회의 건강, 즉 사회체계의 정상적 작동이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보다 엄격한 분리주의 정책과 비상한 안전 조치가 필요하다. 파슨스에 따르면 모든 체계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수행해야 할 악명 높은 과업인 긴장관리와 유형유지는 거의 전적으로 인간쓰레기를 사회의 나머지 사람들과 철저히 분리하는 것이다. 더는 인간 쓰레기를 멀리 있는 쓰레기 처리장에 버려지거나, 정상적인 생활이 닿지 못하는 곳으로 옮겨 놓을 수 없다. 따라서 철저히 밀폐된 용기에 밀봉해 버려야 한다. 한번 불량품은 영원한 불량품이다. 전과자로서 가석방중이거나 보호관찰중인 사람들이 사회로 돌아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와 그들 사이의 상호이해 가능성도 이해와 가교도 실질적인 의사소통도 있을 수 없다.

 

모든 쓰레기는 잠재적으로 유독하다. 또는 쓰레기로 규정된 이상 적어도 적절한 질서를 오염시키거나 훼손 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만약 재활용이 더 이상 이익을 내지 않고 더 이상 실현될 가망이 없으면, 쓰레기를 처리하는 올바른 길은 이들을 보통 사람들의 거주지로부터 가능한한 안전하게 격리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일자리, 사회복지, 가족의 지원이 전과자들을 주로 사회에 재통합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이런 자원들의 감소로 인해, 감옥에 수감되는 것은 장기적인 처분이 되었다. 오늘날 감옥은 위험하다고 알려진 인물들이 공공의 안전이라는 이름 아래 격리 되는 일종의 금역지대로 사용되고 있다. 누구든지 재판부의 평결에 맞서 필사적으로 싸우고, 평결을 뒤집기 위해서 싸우고, 자기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변론하고, 자기 주장이 기각 되면 상급법원에 항소하고 여론의 분노와 항의를 조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이 모든 것이 실패하면 법원의 관할권에서 탈출하는 것이다. 현재 진행중인 부수적인 피해자, 즉 전지구적 법적, 정치적, 윤리적 질서의 창조적 파괴가 만들어 낸 쓰레기들은 이런 수단들 가운데 아무것도 써 먹을 수 없다. 그들에게 저항하고, 배상을 청구할 대상이 되는 권력 당국이 없다. 상호 경쟁적인 무수한 설계, 건설프로젝트들 한복판에서 누구도 진정으로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한다.

 

사회국가는 오늘날 쇠퇴하고 있다. 사회국가가 정당성을 주장하는 기초이자 시민들의 충성과 복종을 요구하는 기반은, 뜻하지 않는 재난 뿐만 아니라, 잉여와 배제와 폐기의 운명으로 부터도 시민들을 보호해 준다는 약속, 즉 개인적인 약점이나 불운으로 인해 인간쓰레기로 전락하지 않도록 보호해 준다는 약속이 있다. 시장경쟁이 초래한 불안정한 고용상태는 당시에 지금도 그렇지만, 시민들을 괴롭히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그리고 불안정한 사회적 입지와 자기존중의 주요한 원천이 되었다. 사회적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해결과제로 떠맡은 것은 일차적으로 그러한 불확실성이었다. 직업 안전성을 높이고 미래를 더 확실하게 보장함으로써 그러한 과제를 해결하려 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국가는 사회국가의 약속을 이행할 수 없고, 정치인들 또한 더 이상 그러한 약속을 되뇌지 않는다. 대신 그들이 내놓는 정책은 한층 더 불안하고 위험으로가득찬 삶을 따라서 극단적인 처신을 필요로 하지만, 인생계획은 거의 불가능하게 되는 삶을 예시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생산된 문제들에 대해 개인적으로 그들 나름의 해결책을 찾아보기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종류의 공포는 또한 모든 인간적 결속의 결합인자인 신뢰도 해체한다. 우리 친구들의 도움 그 자체보다는, 우리 친구들이 우리를 도우리라는 확신이 더 큰 도움이 된다. 신뢰가 없으면, 인간적 헌신의 망은 산산조각 나고 세상은 더욱 위험하고 두려운 곳이 된다. 신뢰는 불신의 만연으로 대체 되었다. 모든 결속은 신뢰할 수 없고, 믿을수 없고, 뒤통수 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신뢰할 수 있고 진정 믿을만한 증거란 어떤 것일까? 물론 그것을 눈으로 보더라도 알아볼 수는 없을 것이다. 설사 그것을 정면으로 마주치게 되더라도 정말 믿을만한 증거인지 의심하게 될 것이다. 결속을 형성하고 강화하기 위한 노력은 무한한 실험의 연속이다. 신뢰를 상실하고 의심으로 점철된 삶은 쉽게 해결할 수 없는 이율배반과 모호성으로 가득차게 된다. 삶은 '쓰레기' 라는 표지판이 있는 곳에서 벗어나기를 바라지만, 실망에서 좌절감으로 오락가락하면서 삶을 탐험하는 여행을 시작할 때마다 벗어나고 싶어하던 바로 그 지점에 도달하고 만다. 그렇게 사는 삶은 결국 잘못된 관계들, 포기한 관계들만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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