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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가 되는 삶들 (지그문트 바우

쓰레기 문화

육체적인 삶은 무기력할 정도로 짧고, 인간이 살면서 하는 일들이 짜증날 정도로 불완전하다.  무엇이든 영원한 시간속에서 가치를 발휘할 때가 없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무엇이든 존재했던 것은 신의 설계와 신성한 존재의 사슬의 일부였던 것이 분명하며, 그 존재의 적절성과 지혜로움은 인간의 능력으로 판단할 수 없다. 세상에는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고사하고 지속성을 띠는 것은  없다. 오늘은 유용하고 필수불가결한 물건들도 극히 일부를 빼면 내일은 쓰레기가 된다. 어떤 것도 진정으로 필요하지 않으며, 어떤 것도 대체 불가능하지 않다. 모든 것은 임박한 죽음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 태어나고, 사용기한 딱지가 붙어 생산라인을 떠난다. 모든 것은 태어나는 것이든, 만들어지는 것이든 인간이든 아니든 유한하며 없어져도 상관없는 존재이다.

 

문화는 인간에게만 고유한 삶, 즉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논리와 이성에 반하여 살아야 하는 삶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장치다. 문화는 어떻게든 죽음에 대한 공포를 삶의 동력으로 바꾸어 낸다. 그것은 죽음의 불합리성으로부터 삶의 충만한 의미를 빚어낸다. 죽음을 치유할 수 없게 되자 행복해지기 위해 인간은 그러한 것들을 생각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여유로울 때보다 위험이 닥쳤을 때 죽음에 대해 덜 깊이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 순간 아무 생각없이 게으르게 보내지 않도록, 한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을 남김없이 채움으로써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인생의 문제들에 몰두하는 무익한 일에 빠져들지 않도록 해준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우리가 처한 불행한 상황을 생각할 여지를 주는 안이하고 평화로운 삶이 아니라, 그러한 상황을 잊고 다른 곳으로 주의를 전환하도록 해줄 수 있는 흥분이다.

 

사람들은 이제 어린시절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어렴풋하게 조차 본인들의 여행의 의미를 알지 못한 채, 그리고 여행에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확신조차 하지 못한 채 걸어가야 한다. 생물은 죽을 수 밖에 없으며, 우리 각자도 죽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죽을 것이고 조만간 우리가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아는 사람들, 우리 삶과 연결되어 있는 모든 사람들도 죽을 것이다. 그러나 같은 이유로 인해 우리 중 누구도 죽음의 경험을 가까이 느끼지 않는다. 어떤 의심의 여지도 없고 어떤 불복종도 하락되지 않는 권위주의적 명령에 의해 버려지고, 잔인한 평결과 그 결과로서 따라오는 책무의 과중함으로 인해 고통 받았기 때문에 인간들은 선택의 필요가 없는 태평하고, 마음 편한 상태와 자신의 행위가 선한 행위 혹은 악한 행위로 귀결될 것을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를 낙원이라고 불렀다. 20년도 안되는 기간동안에 깜짝 놀랄만한 성공과 믿어지지 않는 붕괴를 겪은 거대기업 엔론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는 상세한 자료로 남아 있다. '가라앉지 않으려면 해엄치라'는 무자비한 철학을 가지고, 일년에 두차례 전직원의15%가 관례적으로 해고되어 새로운 직원으로 대체되었다. 그런 다음 30% 생산성을 높이라는 경고를 받았다. 고참과 신참을 막론하고 직원들의 절대적인 헌신이 요구되었으나, 일자리는 오래 가지 않았다. 엔론은 평생 계획을 세울수 있는 부자가 아니라, 그저 세우기 쉽고 접기는 더 쉬운 휴대용 텐트를 세울수 있는 야영지일 뿐이다. 너무 치열한 회사의 업무 문화가 직원들의 사기와 내적 단결력을 파괴했다.

 

당신이 현실주의적으로 희망하고 추구할 수 있는 목표는, 다른 오늘이지 더 나은 내일이 아니다.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니까 인생을 유용하게 활용하라. 그러므로 쓰레기더미로 가는 여행들의 사이사이에 즐길수 있을 만큼 실컷 즐기도록 노력하라. 기다리는 것은 수치이며, 기다리는 것의 수치는 기다리는 사람에게 되돌아온다. 기다림은 나태함과 낮은 지위의 증거이며, 거절의 징후이자 배제의 신호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에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자기가 진짜 필요한 존재가 못되는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이제 표면으로 떠올라 수많은 파문을 일으키게 된다. 왜 나는 내가 탐하는 것을 갖기 위해 기다려야 하는가?  나는 진정으로 필요하고 환영받는 존재인가? 아니면 냉대 받고 있는가? 나를 계속 기다리게 하는 사람들이 비밀리에 작성한 잉여인간 목록에 다음으로 이름이 오를 사람이 나인가? 바로 내가 쓰레기로 전락하게 되리라는 두려움은, 사람들의 욕망을 한층 더 탐욕스럽게 한다.

 

사람들은 5명중 3명 꼴로 사고 나서 나중에 후회한 물건들을 사느라고 빚을 졌다고 시인했으며, 3명중 1명꼴로 경제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물건을 샀다고 시인한다. 외상과 빚은 소비자들의 생활양식에 더욱 깊숙이 파고 들어간다. 외상과 빚으로 사는 방법이 손닿는 곳에 늘 있는데, 왜 완전한 만족을 주지 않는 것에 매달려 있겠는가? 외상과 빚은 쓰레기의 산파역할을 하며 이러한 역할이야말로 소비사회에서 외상과 빚이 눈부시게 발전할수 있는 가장 뿌리깊은 근거이다.  우리 인간은 위반하는, 초월하는 동물이며 이를 피할 수 없는 존재이다. 우리는 현재를 앞서 살아간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세계보다 항상 한걸음 앞서 있다. 아름다움의 가치는 우리를 이끌어 주는 그것의 힘안에 온전히 담겨있다. 우리가 아름다움에 도달하면 아름다움은 힘을 잃고 따라서 가치도 잃게 된다. 

 

고요함은 묘지에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우리를 살아있게 하고, 우리 삶을 분주하게 하는 것은 고요함에 대한 꿈이다. 이 꿈이 실현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한, 우리는 하루하루를 세며 하루하루도 가치를 가진다. 변화에 대해 숙고할 때면, 우리는 늘 욕망과 공포 기대와 불확실성 사이에서 고통스러워 한다. 바로 불확실성이 문제다. 오늘 당신에게 유익한 것은, 내일이면 당신에게 유해한 것으로 재분류될지 모른다. 굳건해 보이는 약속과 엄숙하게 서명한 계약은 하룻밤 새에 뒤집어질지도 모른다. 약속들은 또는 대부분의 약속은 단지 배신하고 어기기 위해 하는 듯하다. 희망을 갖고 여행하는 것이 이미 목적지에 도착한 것보다 낫다.

 

현재 실천되고 있는 어떤 것도 습관으로 만들지 않는 것, 자신의 과거 유산에 얽매이지 않는 것, 쓸모 없어지거나 유행이 지난 셔츠를 재빨리 갈아 입듯이 현재의 자기 정체성을 고정시키지 않는 것, 어떤 유보나 후회도 없이 과거의 교훈을 거부하고 과거의 기술을 버리는 것, 이 모든 것은 오늘 날 유동적 현대의 삶을  증명하는 표시이며, 유동적 현대의 합리성이 지니는 속성이 되고 있다. 유동적 현대의 카지노 문화에 받아들여지려면 가리지 않고 무엇이든 잘 먹어야 하고, 취향을 너무 엄격하게 규정하거나 오랫동안 한 가지 취향을 고수하지 말아야 하며, 현재 제공되는 것은 어떤 것이든 시험해 보고 즐기는 자세를 갖추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일관되게 안정적으로 고수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 

 

 새로운 것을 거부하는 것은 좋지 않은 취향이며, 위험을 거부하는 사람은 거부당할 위험이 있다. 그러나 이와 마찬가지로 그릇되고 위험한 태도는 옛 것에 지나치게 충실한 태도다. 새 것이 낡아버리는 것은 이전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과정이었지만, 점점 더 짧아지고 있다. 새로운 것은 앞지름 당하고 추월당하면서 순식간에 낡은 것으로 바뀌곤 한다. 고객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또는 고객의 미래와 아직 예측할 수 없는 기쁨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소비시장은 즉시 소비할 수 있고, 재빨리 버리고, 대체할 수 있는 제품을 제공- 그리하여 오늘 감탄하고 탐내던 물건이 유행에 뒤처지면서 생활공간의 어지럽히지 않도록- 한다. 현재 제공되는 제품이 바로 이것이라고 할 만한 물건, 잘나가는 것, 꼭 가져야 하는 것, 갖고 있음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모든 면에서 아름다움은 지상명령이다. '아름다워지라' 그게 아니라면 최소한 추한 모습은 보이지마라. 추하다는 것은 쓰레기처리장으로 갈 운명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집중적으로 조명을 받던 이미지들이 그러한 주목을 잃어버리고 쓰레기로 취급되는 것은 무작위적이다.

 

가치는 그것이 현장에서 즉시 소비되는데 적합할 때만 가치이다. 가치는 순간적인 경험의 속성이다. 아름다움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인생은 순간적인 경험들의 연속이다. 프로이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 아름다움은 뚜렷한 용도가 없으며, 아름다움에 대한 분명한 문화적 필요도 없다. 그러나 문명은 아름다움 없이 유지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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