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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미래 ( 린다 그래튼 지음, 조성

빈곤과 불평등에 무감각한 사람들(3)

기술이 세상을 하나로 연결하면 인재자원은 전 세계에 고루 분산되지만, 극소 지역서만 실질적인 경제엔진이 가동된다. 창의 클러스터는 클러스터에 참여하는 사람과 핵심 근로자를 지원해줄 사람을 끌어들인다. 클러스터로 인재가 몰려오는 이유는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 이를테면 엔지니어링이나 바이오 기술, 첨단 기술 종사자들과 같이 일하기 위해서이다. 생산발전소는 기존의 창의성이나 혁신을 이용해 재화 및 서비스를 생산하는 지역을 말한다. 생산발전소가 아시아로 옮겨감에 따라, 선진국에서는 제조업에 종사하는 수백만의 준숙련 근로자가 실직했다. 거대도시에는 많은 인구가 집중돼 있지만 그들을 모두 뒷받침할만큼 충분한 경제활동이 제공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상당히 많은 거대도시에 빈민가가 포진해 있다. 판자촌 사람들은 계속 글러벌 경제와 단절된 채 살아가고 있다. 앞으로 수십년 동안 이런 거대도시와 지역에 발생하는 문제는 꾸준히 늘어나고, 이전보다 더 붐비는 동시에 물가도 더욱 오를 것이다. 도시의 미래는 유능한 인재들이 창의 클러스터와 새롭게 떠오르는 생산발전소로 옮겨가는 밝은 모습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이면을 보면 세계거대도시들은 수십년 동안 철강, 자동차 등 글로벌 산업을 형성하던 시절과 똑같은 종류의 경쟁 혹은 병합을 겪게 된다. 특히 선진국의 여러 도시가 대단히 거센 타격을 받게 것이다. 거대도시 주변의 슬럼가에서 거주하는 하층민은 점점 늘어날 것이다. 20세기초 도시 외곽지역은 노동력 공급과 소비자 수요의 주요 원천이었다. 하지만 거대도시가 등장 함에따라 이들 교외지역은 이러한 역할을 하는 대신 빈민가로 변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2025년 지역은 인구가 희박하고 집중된 경제활동도 거의 없으며, 글로벌 경제와도 거의 연결 되지 않는 시골지역과 오지다. 이곳에서도 글러벌 빈민층을 만나볼 수 있다. 시골에 사는 하층민의 운명은 부분적으로 기술접속 여부에 좌우된다. 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소득 불평등 수준이 국가발전을 가로막는 주요 요인이다. 도시내의 불평등은 줄어들고 있을지 몰라도 대다수 시골지역은 여전히 낙후도시 거주민이 많이 있다. 아무리 부유할지라도 불평등사회는 평등사회보다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불평등은 정치제도의 불안정을 낳고 효율성을 가로막는다. 어떤 사람은 75세보다 훨씬 더 오래 건강한 삶을 누릴 수도 있다. 그러면 당연히 즐거움을 위해 혹은 연금만으로 부족한 경제적 필요 때문에 나이 들어서도 일을 하게 된다.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계속 정신적 자극을 받기 위해, 신체적 활동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의미와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일하기를 원한다.

 

2025년이 되면 미국, 유럽 대다수의 국가 그리고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는 은퇴할 나이가 된다. 베이비붐 세대의 영향은 선진세계의 경제 전체에 퍼져있다. 그 이유는 그들의 연금투자와 개인저축이 기업과 정부의 든든한 돈줄이 되어줬기 때문이다. 1950년대에 연금제도가 등장했을 때 연기금을 개발한 보험회계사들은 이런 식으로 계산했다. 한 회사에 들어가 스무 살에서 예순다섯 살까지 일하며, 45년 동안 지속적으로 연금을 납입한다. 그런 다음 예순다섯 살에 퇴직해 5년이나 10년 동안 멋진 노후를 보내다 일흔 살에서 일흔 다섯살 사이에 죽는다. 10년 동안의 은퇴생활을 위해 45년동안 연금을 납입한 셈이다. 게다가 2000년대까지 경제환경이 충분히 안정적 이었기 때문에 연4%의 투자 수익을 제공할 수 있었다. 그런데 베이비붐 세대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에게는 수학등식이 달라졌다. 한 직장에 5년이상 근무하는 직원이 드물었다. 일자리 구조의 유동성은 연금을 꾸준히 납입해 금액을 불릴 기회를 잃는다. 꾸준히 납입한다해도 2000년부터 2050년까지 툭하면 발생할 호황과 불황이 신중한 저축자들의 자산을 크게 감소시킬 수 있다. 이런 사태 때문에 나이든 베이비붐 세대와 퇴직연금에 가입하고 있을 X세대, 그리고 Y세대 사이에 근본적인 갈등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견한다. 문제는 2025년에 직장에서 물러나 있을 예순 다섯 살 이상의 사람들이 실제로 일할 기회를 잡을 수 있느냐이다. 인구통계와 수명 데이타를 고려할 때 2025년에는 예순다섯살 이상의 연령층이 대폭 늘어나고, 그들은 지금보다 더 일하기를 갈망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상기후 패턴은 세계 곳곳에 등장하고 있다. 특히 화석연료의 사용의 증가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이를 우려하는 과학자, 정치가, 환경단체, 시민의 목소리가 늘어나고 있다. 기후변화 협의체(IPCC, Intergove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에 따르면 생태계에 이미 변화가 진행되었다고 한다. 해수면이 상승하고, 바람의 패턴이 변하고, 푹염과 가뭄이 발생하는 지역이 넓어졌다. IPCC를 비롯한 여러 단체는 세계가 석유, 석탄, 가스에 의존하는 성향을 극복하기 위해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앞으로 10년 동안 지난 세기의 0.6도 상승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의 엄청난 재난을 겪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IPCC의 가장 보수적인 추정치는 약 1.8도 상승이지만 가장 비관적인 추정치는 4.0도에 달한다. 0.6도의 기후 변화가 2010년에 미친 영향도 만만치 않은데, 지구 온난화가 그 여덟배나 심각한 영향을 칠수 있다는 말이다. 삶의 질에 대한 기대치가 올라갈수록, 인구가 늘어날수록, 지구온난화로 가뭄이 빈발할수록, 석유 수요와 마찬가지로 물의 수요도 공급을 넘어서기 시작한다. 이와 같은 환경재앙으로 아주 많은 사람이 글로벌 하층민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2025년의 직장생활을 잠깐 엿본 것에 불과하지만, 우리는 미래의 암울한 모습이 어떤 식으로 등장할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아이들과 주위사람들이 일의 미래가 보여주는 암울한 모습을 조금이라도 줄일수 있도록 그들에게 어떤 균형감각으로 어떤 능력을 계발하라고 충고할 것인가? 어두운 미래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변화는 한 개인의 행동을 넘어서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만들어가는 미래라는 더 밝은 이야기에서 드러나듯 상호연결된 사람이 집단으로 뭉쳐, 과거 전혀 불가능하던 방식으로 움직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