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의 미래 ( 린다 그래튼 지음, 조성

빈곤과 불평등에 무감각한 사람들(1)

2025년 미국 오하이오에 사는 스물여덟살의 브리애너는 좁은 집에서 부모와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컴퓨터를 켠다. 온라인 게임의 추종자로 하루 네시간 동안 게임을 한다. 11시 경에 집을 나서서 근처 햄버그 가게에서 일주일에 닷새 파트타임으로 일한다. 6시에 교대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가족과 간단히 식사를 한 후 밤마다 정규직 일자리를 찾는데 몰두한다. 그녀는 한 시간 동안 웹서핑을 하며 알맞은 일자리가 있는지 둘러본다. 중국과 인도에서 교육 받는 더 똑똑하고 의욕 넘치는 수백만명과의 경쟁에서 빈번히 밀린다. 아버지는 제너럴모터스사의 자동차 라인에서 일했지만 공장문을 닫은지 10년이 넘었다. 현재는 철물점에서 일하며 생계를 꾸리고 있지만, 능력을 발휘할 일도 없다. 예순여섯살인 할아버지도 일하기를 원하지만, 일을 찾기가 쉽지 않다. 모아 놓은 돈이 별로 없는 할아버지는 생활이 어려워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다.

 

연금저축은 세계적인 인플레이션과 함께 여러 번의 금융 스캔들 여파로 턱없이 쪼그라 들었다. 정부마저 노년층의 보건비 때문에 재정부담에 시달리고 있다. 노동이동의 장벽이 낮아지면서 자신보다 능력과 경력이 뛰어나면서도 더 낮은 임금을 받으며, 기꺼이 일하려는 사람들과 치열하게 경쟁해야 한다. 소외의 축은 항상 존재한다. 과거에 소외의 축은 주로 태어난 장소에 따라 배열되었다. 인도나 중국시골에서 태어난 사람은 변두리 소외지역에 머문 반면, 유럽이나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은 성공할 기회가 많았다. 그러나 2025년에는 태양열로 작동하는 컴퓨터로 자유롭게 클라우드에 접속해 필요한 자료들을 이용한다. 소외의 축은 태어난 곳에서 타고난 재능과 동기 그리고 개인이 접하는 정보의 내용으로 옮겨갔다. 그들이 결핍한 이유는 타고난 재능도 없고 열정도 없고, 클라우드가 제공하는 기회를 이용하려는 마음도 없기 때문이다. 

 

가상공간에서 서로 연결된 글로벌 세상에서는 과거 인도의 시골이나 사하라사막 이남 아프리카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소외되었던 계층도 두뇌와 야망을 갖춰 글로벌 인재자원에 합류할 수 있다. 그들은 새로운 빈곤층이 아니며, 태어난 장소에 구애 받지도 않는다.  승자와 패자 사이의 격차는 계속 벌어진다. 승자와 패자 격차의 심화는 기업내에서 뿐만 아니라, 같은 나라안에서도 일어난다. 1980년에 미국 CEO의 평균 연봉은 일반 근로자의 42배였다. 2000년에는 531배가 되었다. 이런 추세로 2025년까지 간다면 1000배에 딜힐 수도 있다. 물론 그 격차를 크게 인식하지는 못한다. 자신의 이웃에 사는 다른 근로자들과의 소득 격차를 훨씬 크게 의식한다. 세계화의 힘이 승자독식 사회에서 부의 격차를 더욱 심화할 것이다. 부의 격차심화는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물론 건강과 행복에 미치는 요인은 절대소득이 아니다. 그보다는 같은 회사, 같은 지역내에서의 소득격차가 훨씬 큰 영향을 미친다. 부자나라에서는 부와 소유물이 지닌 상징적 의미가 중요하다. 구매하는 물건은 그 사람의 지위와 정체성을 드러낸다. 구입하는 이류물건은 그 사람이 이류에 속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물질주의 사회에서 재화획득은 성공의 척도이고, 구매하는 상품은 그가 패자임을 강조한다.

 

회사와 나라 안에서 소득격차가 심해질 경우 사회불안이 가중될거라는 점은 어느 정도 예측가능하다. 소득격차 심화는 신뢰에도 영향을 미쳐 같은 사회 안에서 불평등이 커질수록 사람들 사이의 신뢰가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신뢰가 사라지면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며, 최선을 추구하는 협력관계와 능력도 사라진다. 1993년 대학생들이 평균적으로 느낀 불안감은 1952년보다 85%더 높다. 1993년부터 2010년까지의 추이를 2025년으로 연장하면 앞으로도 꾸준히 증가할 것이다.  불안감은 자긍심이나 사회적 지위가 위협당할 때 증가한다. 나아가 사회적 지위의 격차가 벌어질수록 불안감이 더 강하게 촉발된다. 불안감의 중심에는 수치심이 자라는데 이는 자신이 아둔하고, 무능하며 나약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정, 친밀감은 불안감에 시달리지 않게 해주는 엄청난 효과를 발휘해준다. 우리는 대개 자신이 일하고 생활하는 커뮤니티 속에서 정체성을 느낀다. 이러한 정체성은 자신의 가치나 지위에 대한 생각을 초월한다. 하지만 우리는 친밀한 커뮤니티 관계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으며, 끝없이 유입되는 이방인이 친숙한 얼굴을 대신 하는 대중사회의 익명성 속에 살아가야 한다. 세계화와 기술발전으로 인해 계속해서 낯선 사람들 속으로 던져진다.

 

한 개인의 겉모습과 소비유형을 판단하는 잣대이자 또 다른 사회적 영향은 바로 자기애(narcissism)다. 여기서 말하는 자기애는 계속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을 말한다. 즉 자신을 보여주고, 홍보하고, 확신하고, 자신에 대한 피드백을 얻는 것을 말한다. 2025년의 이야기에는 전체적으로 수많은 사람이 겪는 지위에 대한 불안감과 더불어 개인적 겸양보다 자기 홍보를 선호하는 분위기가 깔려 있다. 1959년 캐나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만은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 자신만의 어떤 인상을 만들어 낸다'고 말한다. 인간은 무대의 배우처럼 연극적으로 행동하고, 삶을 영위하는 모든 공간을 커다란 무대로 삼는다는 것이다.  2010년에 청소년대를 보내는 Z세대가 어떤 방법으로 자신을 드러내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고도로 상호연결된 세상에서 우리는 들을 준비가 된 누구에게나, 심지어 듣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매일 자신의 속사정을 이야기한다.

 

차 한잔을 마시며 따뜻한 위로의 말로 실연의 상처를 나누는 시대는 지나갔다. 지금 그 자리에는 인간관계에 대한 불만을 세상에 대고 마음껏 털어놓는 시대에 페이스 북, 트위터가 들어서 있다. 우리 내부에 깃든 노출증의 고삐를 풀어놓은 셈이다. 그들은 모든 순간을 설명하고, 모든 느낌을 나누며, 모든 감정을 분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