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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미래 ( 린다 그래튼 지음, 조성

외로움에 익숙한 사회(1)

뇌 전문 외과 의사인 로한은 자택 사무실에서 온라인에 접속해 하루 업무를 준비한다. 2025년 다른 전문직 종사자와 마찬가지로 하루의 대부분을 자택 사무실에서 보낸다. 클라우드에 접속해 그날 일하는데 필요한 자료를 내려 받고, 사용에 대한 비용을 지불한다. 뇌수술을 중국에서 하고 로한은 그 중국 외과 의사팀을 이끌어야 한다.  텔레프레즌스 장비를 가동시켜 수술팀과 환자를 만난다. 로한은 자국 언어로 말하며, 그 말은 자동적으로 번역된다. 로한은 일주일 내내 바쁘지만 한동안 아파트를 벗어나지 않는다. 카이로에 사는 아몬드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독립 프리랜서다. 그도 역시 아파트를 벗어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가상사무실에서 일하며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메모를 보내고, 동료 프로그램머와 채팅도 한다. 본적도 없는 사람들이 의뢰하는 프로그래밍 작업을 선택하고, 이름도 모르는 팀과 함께 일하거나 지구 반대편에 있는 회사를 위해 일하기도 한다. 로한과 아몬은 즐기는 일을 하면서 능력을 발휘한다. 좋아하는 일을 찾아낸 그들은 취미처럼 즐기고 집중하며 열정적으로 일한다. 하지만 이들은 진짜 사람과 같이 하는 일은 거의 없다. 2025년이 되면, 일상 업무에서 직접 얼굴을 마주하는 관계는 대부분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물론 가상세계의 관계가 실제로 얼굴을 마주하는 관계처럼 인생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지 모른다. 일상에서 얼굴을 마주하는 관계가 사라지면 편안한 동료의식에서 얻는 기쁨도, 인간관계 속에 담긴 모든 것들이 사라진다. 그리고 인생에서 가르침을 주고받을 기회도 사라진다.

 

1990년의 경우 내 하루 업무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사무실에 있는 동안은 동료와 거의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다. 내 방에 있긴 해도 고개만 돌리면 동료들이 보인다. 물론 편안한 동료의식도 있었지만, 모두가 허물없는 친구는 아니었고 개중에는 견디기 힘든 사람들도 있었다. 내가 일하는 곳에는 치사한 술수나 위계질서에 기대는 일이 많았다. 고객과의 만남도 물리적으로 이루어졌고, 우리는 한 두 시간 정도 대화를 나누었다. 동료와 초저녁 술집에 모여 그날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 하거나, 누군가의 흉을 보면서 은근슬쩍 파워게임을 계속했다. 절망스럽고 성가실 때도 있고, 가끔은 머리끝까지 화가 치솟을 때도 있지만 직장에 있는 동안 외롭다고 느낀 적은 없었고, 그것에는 편안한 동료관계가 있었다. 

 

인간은 타인과의 인간관계로부터 큰 영향을 받는다. 우리가 직장생할에서 가장 소중히 여기는 부분은 바로 동료관계다. 가장 행복하게 사는 사람은 부유하거나 많은 것을 성취한 사람이 아니다. 연구결과 행복을 좌우하는 가장 큰 연결고리는 평생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있느냐 없느냐이다. 외로움은 질병과 관련이 있고, 전염병처럼 다른 사람에게 순식간에 퍼져나간다. 이런 것들은 2025년 이라고 해서 달라지지 않는다. 인류역사를 살펴봐도 인간은 대단히 사회적이고 무리 짓기를 좋아한다. 일하는 내내 사이버공간에서 얼굴을 맞대고 있을 2025년 수십억의 인구는 어떤 관계를 누리게 될 것인가? 직장생활에서의 직접적인 접촉은 서서히 사라지고 깊은 외로움과 고립이 그 자리를 대신할 것으로 보인다. 직장내 인간관계는 우리 삶의 전체적인 모자이크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래도 그것은 한 부분일 뿐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가족과의 관계에서 얻는 것은 직장 인간관계에서 얻는 또 다른 감정이다. 가족과 함께 하는 공간은 보통 편안하고 자율적이며 사랑받는 장소다. 우리는 여기서 얻는 긍정적인 느낌과 감정을 원동력으로하루를 시작하며, 일에서 받는 스트레스와 압박감을 효과적으로 해소한다. 일하면서 얻는 긍정적인 감정이 가정생활에 좋은 효과를 미친다. 물론 직장과 가정사이에는 부정적인 효과가 발생하기도 한다. 직장에서 화나는 일이 생기기도 하고, 긴장의 끈을 놓치면 안된다. 이러한 감정은 퇴근할 때도 사라지지 않으며 결국 가정에서 행복을 찾는 과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악순환이 가정에서 시작될 수도 있다.  집이 불안감, 죄의식, 다른 사람들의 과도한 요구에 짓눌리는 장소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좋지 않은 감정과 느낌은 일하러 나갈 때 고스란히 이어진다. 일의 미래를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수십년 뒤 일과 가정이 어떻게 변할지 예측해야 한다.

 

나의 경우는 외할머니와 친할머니 모두 칠남매였다. 조부모 형제 중에는 이혼한 사람도 없었다. 대체로 끝꺼지 부부관계를 유지했다. 우리 가족의 이혼은 내 세대에서 시작되었다. 사남매 가운데 한명만 처음 배우자와 함께 헤어지지 않고 계속 살았다. 대부분의 세상에서 이제 이혼은 흔한 일이 되었으며, 심지어 이혼이라는 말에 눈살부터 찌푸리는 인도에서도 옛날방식의 부부관계는 조금씩 붕괴되고 있다. 둘이 사는 도시는 부모님과도 멀리 떨어져 있다. 나이가 70대, 80대가 되어도 이제 계속 일해야 한다. 그들이 자식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계속 일해야 하기 때문에 자식과 수백킬로 떨어져 산다. 이제 컴퓨터를 꺼는 순간 그들은 혼자가 된다. 그들은 가족. 동료, 친구들과도 단절되어 있다. 인간접촉이 거의 없는 고립된 삶을 살아간다. 2025년에 가상이 아닌 진짜 인간관계가 꾸준히 침식될 때 빚어질 잠재적인 부정적 영향중 하나가 가정에서 직장으로 전달되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중단된다는 것이다. 더불어 직장내 인간관계에서 겪는 스트레스를 견딜 기회도 사라진다. 그들은 불안감에 시달리거나 우울증을 앓고 있을지도 모른다.

 

가족 구성원들은 지난 10년동안 마구잡이로 확장된 도시로 이주했다. 앞으로는 치솟는 에너지 가격 때문에 고객을 직접 만나기도 함들고, 가상현상 기술이 향상 되면서 두 사람은 통근하거나,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비행기를 타는 대신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아질 것이다. 이런 사회에 퍼진 한가지 보편적인 감정은 행복하지 않다는 느낌이다. 불행한 이유중의 하나가 여가를 가만히 앉아 텔레비전을 보는데 쓰기 때문이다. 이런 단편적인 조각들이 고립이라는 어두운 그림자를 만들어 내는데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세계화의 힘과 관련해서는 도시화와 국제이민 증가라는 조각이 탄소 및 천연자원과 관련해서는 에너지비용 폭등이라는 조각이 여행을 억제하고, 가상세계의 작업공간을 선택하게 만든다. 인구통계 요소와 가족의 재구성이라는 조각 역시, 고립을 막는 자연스러운 유대감을 단절시켜 버린다. 마지막으로 신뢰상실과 행복감 감소, 가만히 앉아 텔레비전 보기의 증가 같은 사회적 요소가 2025년 수십억 명을 고립된 업무생활로 몰아 넣을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