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는 자연의 걸작이지만 완벽하지는 않다. 진화에는 한계가 있고, 언제나 기존의 것을 바탕으로 계속 발전한다. 인간의 몸이 여러 가지 약점을 지닌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자연의 기존의 기관, 체제만을 쓸 수 있고, 이것들을 변이와 선택을 통해 발전시킬 수 있다. 사람의 손뿐만 아니라 새의 날개와 말의 발굽도 바다를 떠난 물고기의 지느러미로부터 변형되었다. 척추 동물의 기본 설계도는 바꿀수 없기 때문이다. 직립보행과 큰 뇌는 인간의 진화에 큰 성과다. 하지만 두 특징이 공존하는 데에는 제약이 따른다. 만약 인간의 머리가 더 커졌더라면 안그래도 어렵고 힘든 출산이 불가능해졌을 것이다. 다른 생물들, 특히 병원체들과 군비경쟁을 벌이는데 상대편도 똑같이 적응력을 가졌기 때문에 인간은 결코 완전한 승리를 거둘 수 없다. 인류의 문화발전은 매우급속이 진행되었다. 우리의 환경은 1만년 동안 엄청나게 변했다. 그러나 인간의 진화가 적응하기에는 너무 짧은 기간이었다.
인간에게는 역사적으로 유발된 수 많은 약점들이 있다. 이런 설계 실수들 가운데 가장 명백한 것 중 하나는 목안의 기도와 식도가 교차하는 것이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에게 질식사라는 대가를 치르게 만들었다. 송어로부터 붉은 가슴울새에 이르기까지 많은 동물들이 오늘 날 그런 실책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그들은 음식과 공기의 교통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았기 때문에 아주 잘 살고 있다. 하지만 인간이 치른 대가는 컸다. 말을 하게 되면서 입의 구조를 약간 개조해야 했기 때문이다. 말을 하면서 물을 마시면서 동시에 호흡하는 능력을 상실했고, 그 때문에 사례들리기 시작했다. 또 다른 예는 맹장염이다. 오늘 날의 관점에서 보면 맹장은 염증을 일으키기만 하는 인체 퇴행 부위다. 맹장은 우리 선조들이 영양가가 적은 식물을 소화시켜야 했던 잔재물이다. 말이나 토끼 같은 초식동물은 아직도 맹장이 크다. 그런데 맹장이 언제 어디서나 쓸모가 없을까? 꼭 그렇지는 않다. 개발도상국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득이 될 수도 있다. 설사병을 앓을 때 맹장은 장내 미생물 저장고 역할을 한다. 해로운 병원체들의 접근을 막울 수 있다.
현대에 발생하는 여러 문제들이 아주 먼 옛날에 뿌리를 두고 있기도 하다. 암의 기원은 10억 년 이상, 단세포 생물에서 다세포 생물로의 이행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단세포 생물은 분열에 의해 무제한으로 증식한다. 고등동물의 몸은 수많은 전문화된 세포유형들로 이루어져있고, 세포 증식은 엄격히 통제되어야한다. 예를 들어 인간은 심장과 뇌, 간, 근육, 뼈 등 200종이 넘는 매우 전문화 된 다양한 세포를 가지고 있다. 인체의 일부 세포들이 무분별하게 분열하는 먼 옛날의 행태로 돌아갈 경우 암이 발생한다. 때문에 세포유형을 가진 고등동물은 세포의 이기주의를 통제하기 위한 메카니즘을 개발했다.
우리는 오랫동안 질병과 증세를 혼돈하고 있었다. 흔히 우리는 '기침이 난다. 콧물이 난다. 두통이 있다. 열이 난다. 설사를 한다' 는 식으로 말하는데 이는 모두 병이 아닌 증세다. 질병을 이해하려면 원인과 증세를 구별해야 한다. 이는 무엇보다도 치료에 중요하다. 병의 원인을 퇴치하려고 하는 경우는 드물고 증세만 없애버리고, 그 다음은 면역계에 맡겨버린다. 증세란 무엇인가? 우리는 질병 증세를 반갑지 않게 여겨 이를 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참고 견딘다. 이 두 가지 모두 병의 증세로 지각하는 메카니즘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가 결여되어 있다. 재치기와 콧물을 수반하는 평범한 감기를 예로 들어 보자. 이런 증세는 먼저 방어 메카니즘으로 보인다. 재치기를 하고 콧물을 흘림으로써 바이러스가 몸밖으로 옮겨지는 것이다. 이는 환자에게 유리하다. 하지만 바이러스에게는 더 유리하다. 바이러스가 새로운 숙주에 널리 퍼지기 때문이다.
감염성 질병의 진행에는 숙주와 병원체의 진화적 군비경쟁이 반영된다. 그러니까 병의 어떤 특징이 어떤 편에 도움이 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재치기와 콧물은 몸의 방어무기라고 보기보다는 오히려 바이러스의 확산무기로 분류될 수 있다. 아니면 양쪽 모두에게 이득일지 모른다. 반면에 모기에 물리면 가려운 것은 몸이 피해자에게 유리하게 적응한 것이다. 만약 물린 곳이 가렵지 않다면, 우리는 모기를 조심하지 않을 것이다. 열이나는 것도 환자에게 유리한 면이 많다. 온도 상승은 병원체와의 싸움에서 유리하다. 온도가 올라가면 박테리아가 잘 번식 못하거나 아예 번식이 불가능해진다. 열은 대개 식욕 상실, 피곤, 졸음 같은 다른 증세를 수반하는데 이런 증세들도 의미가 있다. 이 증세들은 몸으로 하여금 모든 여력을 질병 퇴치에 집중하고, 열을 덜 소모하며 박테리아와 진균류가 번식하는데 꼭 필요한 철분을 줄일 수 있도록 한다. 전체적으로 열은 해롭다기보다 도움이 되는 메카니즘이다. 그러나 여러 병원체가 진화를 거치면서 이미 오래 전에 열에 적응했다. 다른 병원체들은 변화하여 우리 몸속에 침입해도 열이 나지않기 때문에 마음껏 머무를 수 있게 되었다.
통증은 불쾌하지만 결국은 우리에게 유리한 반응이다. 통증은 예방에 기여하며 생명을 구할 수도 있다. 아주 드물지만 통증을 느끼지 못하게 만드는 돌연변이를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불에 데이거나, 뼈가 부러져도 깨닫지 못하므로 대부분 젊은 나이에 사망한다. 환자의 방어책인지 아니면 병원체의 의한 조작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증세도 많다. 동물계에는 병원체가자신이 감염시킨 동물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행동하도록 진기한 방법으로 조종하는 예가 많다. 톡소플라스마증은 쥐가 살찌고, 게을러지게 하여 고양이를 겁내지 않게 한다. 이 기생충은 쥐가 중간 숙주이기 때문이다. 이 기생충은 고양이 체내에서만 번식한다. 쥐가 고양이에게 잡아 먹혀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오늘날 노년의 대표적인 문제는 고혈압이다. 젊을 때는 고혈압이 성취능력에 매우 긍정적인 작용을 한다. 고혈압은 멀지 않은 과거까지만 해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고혈압으로 인한 심근경색으로 위험해질 나이까지 사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은 생물학적 존재로서 포유동물이 속한다. 하지만 우리는 문화적 존재이기도 하다. 오늘 날에는 우리의 이런 두번째 본성이 지배적이다. 우리는 우리가 몸 담고 있는 상당 부분을 창조했다. 우리는 지난 수십, 수백년동안 수렵채집인이었던 우리 조상들, 그리고 그보다 더 오래된 선조들의 몸이 적응해 왔던 환경과는 많이 다른 환경을 조성했고, 이로부터 특별한 도전에 직면한다. 우리 몸은 몸에 적합지 않은 생황방식에 내맡겨졌다.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현재의 환경은 구운 닭고기가 입속으로 날아들어오는 일종의 게으름뱅이 천국과도 같다. 적어도 특권층의 경우에는...
식품산업도 농경도 없었던 시절의 식생활은 오늘날의 식생활과는 확연히 달랐다. 주식은 야생동물, 식물 뿌리, 견과류, 씨앗과 열매였다. 난방, 온수, 텔레비전 같은 것은 없었고, 책이나 인공조명, 자동차, 선크림, 담배도 물론 없었다. 이제 그 시절로 돌아갈순 없다. 모든 사람이 모든 병에 똑같이 걸리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어떤 질병에 걸릴지는 각자의 선조가 어디에서 어떻게 살았는가, 그리고 우리가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 자신의 약점을 제대로 알면 예방할 수 있다. 각자가 자신이 지닌 개인적인 약점을 정확히 알고 있고 거기에 자신의 생활방식을 맞출 수 있다면 말이다. 이렇게 해서 많은 병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고전적인 주류 의학에서 그렇듯이 의사가 환자를 진찰할 때 환자의 현상을 판단하고, 환자의 증세와 의사를 찾게 만든 걱정거리를 파악하는 것은 항상 중요할 것이다. 또한 가족력과 개인의 병력, 사회적 개인적 환경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치는 않다. 물론 내적인 진단도 중요하다. 지난 수십 년간 질병발생 메카니즘을 유전자와 단백질 차원에서 분석하고, 이로부터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하는 분자의학이 탄생 했다. 분자의학은 환자의 질병 증세를 외부에서 전체적으로 보는 것말고도 세포 내부, 유전인자. 게놈을 관찰함으로써 새로운 통찰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증명했다. 진화의학도 이런 인식에 바탕을 둔다. 진화의학은 분자 유전적 관찰을 자연사의 역사적 차원만큼 확대시킨다. 우리의 게놈, 우리의 몸은 지구, 생명 자체처럼 역사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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