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충류의 운동기관은 급속히 정교해졌고 인체의 구조에 보다 근접했다. 무엇보다 처음에는 물고기의 가시와 비슷하게 앞에서부터 뒤까지 척추 전체를 뒤덮던 갈비뼈가 나중에 퇴화하기 시작하면서 더욱 민첩하고, 신속하게 움질일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흉곽에만 갈비뼈가 있다. 파충류는 전 중생대에 걸쳐 거의 1억년 동안 척추동물 진화에 영향을 끼쳤다. 가장 유명한 파충류는6500만년전 백악기 말기에 지상을 지배했던 공룡이다. 지구 역사가 계속 흐르면서 대대적인 전환점들이 나타났다. 약 2억 5000만년전 페름기에서 트라이아스기로의 전환기에 대부분의 양서류와 파충류 및 거의 모든 수생동물이 멸종했다. 지상의 모든 대륙들이거대한 초대륙으로 합쳐지는 과정이 장기간 지속된 바람에 화산폭발과 기후변화가 생겨 종의 멸절을 유발했다고 추정한다. 약6500만년전 백악기에서 제3기로의 전환기에 지구의 다양한 생명이 재차 궤도를 이탈했다. 커다란 소행성이 멕시코 유카탄 반도에 떨어졌다. 거대한 먼지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기온이 떨어지고 산성비가 내렸다. 그 결과 해양 동물의 90%, 육지동물 종의 절반이 사라졌다.
포유류는 알이 아니라 새끼를 낳는다. 새끼에게 젖을 먹인다. 어깨와 골반 부분은 현재 인간과 대부분의 다른 동물들이 그렇듯이 척추에 유연하게 연결되어 있었고, 모든 방향으로 회전이 가능했다. 포유동물의 다른 특징은 온혈성이다. 약 1억 4000만년전부터 포유류는 물질대사를 하므로서, 자연적 온도변화를 상쇄하고 체온을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온혈동물은 몸집이 비슷한 냉혈동물보다 하루에 40배나 많은 칼로리를 섭취해야한다. 그렇다면 냉혈동물의 에너지 절약모드가 더 효율적이지 않았을까? 온혈은 초식동물에서 유래했을 것이다. 당시에는 자연이 풍부한 식량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식동물의 먹이인 식물에는 탄소가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는 반면, 질소공급은 부족하다는 결함이 있다. 그래서 동물들은 질소를 더 많이 받아들이기 위해 일일 식물 섭취량을 늘렸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로인해 생긴 과잉 탄소는 내장에서 신속히 연소되었고, 그 과정에서 신체에 열이 발생했다. 그 결과 온혈동물이 탄생했다.
최초의 영쟝류는 약 8000만년 전에 갑자기 등장했다. 나중에 등장한 더 고등한 종들은 눈의 위치가 대부분의 다른 동물들처럼 옆쪽에 있지 않았다. 영장류는 시선을 정면으로 향할 수 있었고, 매우 다양한 움직임을 개발하여 민첩하게 기어오를 수 있었다. 입체적으로도 보게 되었다. 많은 영장동물들이 곤충만 먹던 식생활에서 벗어나 점차 열매를 많이 먹었다. 뇌가 커졌고 집단을 이뤄살면서 서로 의사소통을 하고, 사회적 서열을 세우기 시작했다. 사람과-오랑우탄, 침팬지, 고릴라, 사람이 속한다-는 살아있는 가장 큰 영장류로 발달했다. 초기의 사람과 동물은 앞발로 음식조리와 같은 간단한 수공작업을 하기 위해 일어설 수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매우 두드러진 요추가 그 증거다. 사람과 안에서 다시 사람족 집단이 형성되었다. 사람족의 최초의 대표자들은 500만에서 700만년 전에 등장했다. 최근 연구들에서는 심지어 이미 1000만년 내지는 1100만 년 전에 사람으로 이어지는 계통이 다른 유인원 종들로부터 분리되었다고 지적한다. 사람족의 결정적 진화성과로는 직립보행 그리고 이와 결부된 앞다리에서 발달한 팔과 손이 있다. 그밖에도 뇌가 대단히 커지고 세분화되었다.
인류의 결정적 혁신중 하나는 뇌가 대단히 커지고 분화된 것이다. 약 300만 년전에 살았고, 우리의 가장 오래된 공통 조상으로 여겨지는 오스트랄로 피테쿠스 아파렌시스 종의 키가 90센티밖에 안되는 ‘루시’의 뇌 용량이 현대인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뇌는 200만년 전에 커지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뇌의 성장과 더불어 인식능력이 발달했기 때문에 생존에 득이 되었다. 이 시기에 원인들의 사고력과 의사소통 능력은 뇌의 용량 증대와 함께 지속적으로 개선되었다. 두발로 걷는 생활에 필요한 두뇌 균형감각의 분화는 새로운 운동능력 발달과 직접적으로 결부되어 있다. 직립보행을 하면서 자유로워진 팔과 손은 물건을 집는 중요한 도구가 되었다.
두뇌가 점점 커지면서 출산과정은 힘들어졌고, 이로 인해 호모하빌리스의 아이들은 비교적 이른 단계에 세상 빛을 보게 되었으며, 이는 현대 인류까지 이어졌다. 빠른 출생은 단점이었지만 어쩌면 장점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미성숙하게 태어난 탓에 뇌의 형성과정에서 적잖은 부분이 환경과 직접 상호작용하면서 발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언어능력 발달은 빨라야 호모하빌리스나 180만년 전에 등장한 호모에렉투스 때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호모 에렉투스로부터 나중에 유럽에서는 네안데르탈인이 탄생했고 그와 무관하게 아프리카에서는 현생인류가 등장했다. 두뇌 성장에 중요한 것은 주식의 변화였다. 단백질이 풍부한 생선과 고기요리는 점점 복합적인 성향을 띠는 유기체에 필요한 필수 영양소를 공급했다. 호모에렉투스는 지상에서 처음으로 불을 사용했다. 불을 사용함으로써 자신을 보호하고, 음식을 조리하고 음식의 독소를 제거하고, 몸을 따뜻하게 할 수 있었다. 호모에렉투스가 빙하기에 살았기 때문에 이는 그 만큼 더 중요했다.
약 180만년전에 호모에렉투스는 처음으로 아프리카대륙을 떠났다. 아프리카 사하라사막 이남지역에서는 호모에렉투스의 후손이 18만년전에 현생인류로의 도약에 성공했고, 약 7만 년전에 해안선을 따라 다른 대륙을 정복하기 시작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새로 등장한 호모사피엔스-지혜로운 사람- 는 결국 사람속에서 유일하게 살아 남았다. 약 3만 년 전 유럽에서는 도구, 무기, 장신구, 예술적 완성도를 지닌 조각품과 인상적인 암벽화들이 대거 등장했는데 일부 암벽화는 원근기법이 쓰이기도 했다. 약 1만년 전에 최후의 빙하기가 끝나면서 중부유럽의 기후는 다시 눈에 띄게 쾌적해졌다. 사람을 빠르고 강하게 만드는 것 이상으로 문화적 능력을 제공하기 위한 요건을 제공하는 유전자변이들도 중요하다. 문화적 진화는 자손들에게 유전자 정보를 생물학적으로 전달하는 것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다. 지식과 기술이 후세와 다른 집단으로 전해진다. 상징과 언어를 이용한 의사소통와 예술이 발전한다. 그로 인한 인류의 문화적 진화는 유전적 진화보다 훨씬 빠르다. 인류문화는 사람들간의 끊임없는 상호작용과 스스로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한다.
약 1만년전에 농경과 목축이 시작되었고, 꾸준한 지식획득으로 수차례 변혁을 거쳤다. 수메르인들은 쐐기문자를 이집트인들은 상형문자를 만들고, 바빌로니아 인들은 주판 아바쿠스를 발명한다. 12세기부터 대학이 설립되고 볼로냐, 파리, 옥스퍼드, 페루자, 케임브리지, 프라하...가 중요한 연구 교육의 장소가된다. 약 40억년간 생물적 진화가 이루어진 평온한 시절을 보내고, 3만년의 문화적 진화를 거친 후에 우리는 오늘날 의회민주주의와 현대 과학사회에 도달했다. 우리의 행동과 생활방식은 철저하게 변했지만, 우리 몸은 아직도 2만년전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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