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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의 시대 (장 지글러 지음, 양영

에티오피아

전세계적으로 볼 때 커피 생산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대략 2500만명 정도된다. 이들 대부분은 가족 단위로 1에서 5헥타르 정도의 소규모 농장을 경영하는 농부들이다. 세계에서 경작되는 커피의 70%가 경작면적 10헥타르 미만의 농장에서 생산된다. 94%의 커피는 생산국가에서 녹색콩, 아직 볶지 않은 상태로 수출된다. 세계의 커피시장은 거대다국적 기업에 의해 좌우된다.  이 기업들은 브라질, 온두라스, 에티오피아 등 70개국에서 커피를 생산하는 수천만 명의 농부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 이 거대한 기업중의 하나가 식품업체 네슬레다. 커피시장을 쥐락펴락하는 신흥봉건제후들의 수는 날로 줄어든다. 이들 봉건제후들 사이에 인정사정 볼것 없는 처절한 전쟁이 벌어지면서 강자가 약자를 잡아먹음으로써, 어느 정도 정리 되었기 때문이다. 2004년의 경우 거대 5대 기업은 네슬레와 사라 리, 프록터 앤 갬블, 치보, 그리고 크래프트였다. 이들 5대 기업은 종류 불문하고, 생산된 커피 원두의 45% 이상을 사들인다. 더구나 이들 기업은 원두를 볶아서 가공하고 상품화시키는 과정까지 거의 전 과정에 걸쳐서 막강한 지배력을 행사한다. 유럽 대형식품매장에 들어서면 소비자들은 수 없이 많은 상표의 인스턴트 커피나 가루로 빻은 커피, 원두 상태의 커피 등을 접할 수 있다. 이 모든 상표 중에서 대표적인 상표들은 5대 거대 다국적 기업의 상표들이다. 기아와 영영결핍, 결핵 등이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사이에, 이들 5대 기업의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푹발적으로 증가했다. 사라 리의 이익은 2000년 한해동안 17% 상승했고, 네슬레는 26% 상승했다. 치보는 2000년 한해 47% 상승했다.

 

30년 넘게 세계 커피시장은 국제커피 협약에 의해 조정되어 왔다. 국제커피 협약은 생산국가 별로 매우 엄격하게 수출물량을 제한했다. 수출물량 제한 덕분에 가격 변동폭을 커피원두 1파운드 당 1.2 달러에서 1.4달러 정도로 제한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1989년 국제커피 협약은 거대 다국적기업에 의해 해체되고 말았다. 그 전에는 다국적 기업들은 콜롬비아, 엘살바도르 등이 소련의 영향 아래 들어갈까봐 걱정했다. 그래서 커피협약을 만들어 생산자들에게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해줌으로써 이와 같은 위험을 차단했다. 하지만 1989년 소련이 해체되자 국제커피협약은 더 이상 존재의 이유가 없어졌다. 이렇게 하여 현재 커피시장은 오로지 강자, 5대 거대 다국적기업들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새로운 법칙이 생겼다. 커피 한포대의 값은 670비르에서 2004년에는 150비르까지 떨어졌다. 오늘날은 커피를 팔아서 얻는 소득은 생산원가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소득이 없는 농부들은 집을 팔고 도시로 떠난다. 하지만 도시를 가도 일자리다운 일자리, 일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 주는 정규직 일자리를 얻지 못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성매매와 구걸이, 이들 파산한 농가의 유일한 수입원이 되어버린다. 이처럼 불안하게 유지된던 가정은 결국 가난의 나락 속으로 떨어져 와해되고 만다. 에티오피아에는 자기 땅을소유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 전통적으로 토지사용권을 소유할 뿐이다. 산꼭대기 요새 속에서 은둔하는 승려들이나 속세에서 생활하는 사제들이나 예외없다. 이들도 교구민들과 마찬가지로 뙤약볕 아래에서 혹은 끝없이 몰아치는 바람속에서 자신들에게 할당된 땅뙈기 경작한다. 어떤 주 정부에서는 세계은행의 압력으로 경작권을 등록하는 정책을 체계화 하고 있다. 에티오피아의 83%는 절대 빈곤층으로 살아간다. 에티오피아의 섭취 열량은 평균 1750 칼로리다. 200만명의 에티오피아인들은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도처에서 수도로 모여든다. 이들에게 아디스아바바는 기적이 일어나는 궁전이며, 전국의 부를 비추는 거울이다. 밤이나 낮이나 거지들의 행렬이 거리를 따라 흘러다닌다. 수도 인구가 몇인지 대략으로라도 아는 사람이 없다.

 

오늘날 아디스아바바는 죽어가는 사람의 마지막 거처로 변해버렸다. 바다처럼 펼쳐진 녹슨 양철 지붕과 끝없이 이어지는 판잣집들의 행렬이 분화구를 뒤덮고 있다. 어떤 사회복지 혜택도 받지 못하고, 구걸로 연명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 반쯤은 탈수 상태에 빠진 아이들을 안고 다니는 뼈만 앙상한 여인들 퀭한 얼굴을 한 채 누더기를 걸친 남자들이 수도의 거리 곳곳을 방황한다. 이들은 빨간 불에 막혀 멈춘 외국자동차 앞으로 그대로 돌진하기도 한다. 시도 연방도 돈이 없어서 아무 대책을 내놓지 못한다. 이 나라의 가뭄을 비롯한 각종 천재지변으로 인한 토양의 부식이나 황폐는 자연현상이 아니다. 어째서 기아가 발생하는가? 에티오피아는 전 세계에서 농업생산성이 가장 낮은 나라중의 하나다. 에티오피에는 각종 협회들이 공존한다. 이웃들의 모임, 같은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모임, 종교모임 등이 형성되어 있다. 이디르, 이쿠브, 그리고 데바라고 하는 세가지 유형의 모임이 특별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쿠브소액대출을 담당하는 네트워크인데, 이 제도는 완벽하게 운영되고 있다. 대출금을 상환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점이 바로 에티오피아 문화의 장점이다. 에티오피아인들은 자신들이 한 약속을 충실하게 이행한다. 이쿠브는 이디르와 마찬가지로 아주 오랜전부터 에티오피아 인들의 생활의 일부였다. 이와 같은 소액대출 체제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문제없이 에티오피아를 지탱해왔다. 데바는 노동조합이나 동업자 조합과 유사한 기능한다.

 

제3세계 어느 곳에서나 오랜 전통을 지닌 문화가 존재하며, 오늘날 비록 상업주의적 합리성에 의해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의미있는 지지대 역할을 하고 있다. 집단이 공유하는 기억, 확대된 친인척 관계, 독특한 우주관, 복잡한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연대 의무감 등은 남반구 지역국가들에게 일관성과 자부심을 더해준다. 하지만 이런 활력, 저항력, 용기에도 불구하고 에티오피는 기력을 다해가고 있다. 부채가 서서히 에티오피아의 숨통을 조여오고 있기 때문이다. 부채에 대한 이자와 원금상환을 위해 에티오피아 정부는 2006년 한 해 동안 1억6700만 달러를 썼다. 국민 총생산의 12%가 채무상환을 위해 빠져나간다. 국민 총생산의 6%만이 비료구매, 농토관계사업 등에 쓰였다. 부채가 있는 한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