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내의 모습을 떠올리는 일에 내 자신을 바쳐서, 그녀와 정신적인 대화를 나누는 내면의 세계를 극대화시킴으로써 수감자들은 멀리 과거로 도피해 자기 존재의 공허함과 고독감 그리고 영적인 빈곤으로 부터의 피난처를 찾을수 있었다.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치면서 과거의 일을 회상했다. 나는 상상 속에서 뻐스를 탔고, 열쇠로 내가 살고 있던 아파트 문을 열었다. 걸려오는 전화를 받고 전등을 켰다. 우리 생각은 대개 이런 자질구레한 일들에 집중되어 있었고, 이런 기억들이 때로 우리 마음을 감동시켜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다. 내적인 사랑에 심화되어 있으면 그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을 체험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영향으로 때로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끔찍한 상황을 잊어버리기도 한다.
우리는 서쪽에 빛나고 있는 구름과 짙은 청색에서 핏빛으로 끊임없이 색과 모양이 변하는 구름으로 살아 숨쉬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진흙 바닥에 패인 웅덩이에 비친 하늘의 빛나는 풍경이 잿빛으로 지어진 우리의 초라한 임시 막사와 날카로운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감동으로 인해 잠시 침묵이 흐른뒤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니!”
2.
유머와 같은 아주 사소한 일이 큰 즐거움을 거져다 준다. 큰 즐거움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유머는 그 흔적이 아주 희미하고 몇 초, 몇 분 동안 지속되지만 자기 보존을 위한 또 다른 무기다. 유머는 어떤 상황에서도 그것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능력과 초연함을 가져다 준다. 유머 감각을 키우고 사물을 유머러스하게 보이기 위한 시도는,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기술을 배우면서 터득한 하나의 요령이다. 고통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수용소에서도 이런 삶의 기술을 실행하는 것이 가능하다.
인간의 고통은 기체의 이동과 비슷한 면이 있다. 일정한 양의 기체를 빈 방에 들여보내면, 그 방이 아무리 큰 방이라도 기체가 아주 고르게 방 전체를 완전히 채울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고통도 그 고통이 크든 작든 상관없이 인간의 영혼과 의식을 완전하게 채운다. 수용소생활에서 느끼는 작은 행복은 일종의 소극적인 행복이었고, 다른 것과의 비교를 통해서만 느낄수 있는 상대적인 행복이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진정한 의미의 행복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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