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족의 심리학( 토니 험프리스지음, 윤영삼 옮김)

난 사랑을 줄게, 넌 무얼 줄래?

불행으로 뒤틀린 가족상의 전형은 바로 가족이라는 관계를 인정해주는 대가로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들의 사랑은 조건적이다. 가족이라는 울타리안에서 자리를 인정받고 가족으로서 사랑 받으려면 일정한 조건에 부합해야 한다.  물론 그 조건을 설정하는 사람은 대개 부모다. 언제든 조건이 맞지 않으면 사랑을 거둬들일 것은 물론 가족의 일원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위협이 늘 존재하기 때문에, 그런 가족은 상대방의 비위를 맞추고 눈 밖에 벗어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이러한 가족은 보이지 않는 불안감이 감돈다. 

 

'착한 아이가 되어라'고 말하는 부모가 많은데 그것은 바로 가족이 내세우는 사랑의 조건이다. 그런 가족의 아이들은 사소한 잘못이라도 저지를까봐 늘 초조해 하고 정서적으로 불안하다. 그런 가족의 구성원은 성숙한 인간으로 자라나지 못한다. 대가를 요구하는가족관계에서는 모든 것을 계산해야 한다. 진정한 마음에서 우러나와 베푸는 것이 아니라, 그만한 대가를 받기 위해 베푼다. 가족은 서로 경계하고 자신의 진실한 모습을 감추고 지낸다. 공격적으로 남을 지배하며 관계를 맺으려하는 사람은 가족은 물론 학교나 직장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그런 관계를 맺으려는 사람이 요구하는 기본적인 조건은 이렇다. “ 넌 나를 위해존재한다. 내 욕구를 채워주고, 내 방식 대로 따르고, 내가 시키는 대로 행동하고, 내 생각에 토를 달지 않는다면 널 가족으로 인정해 주고 사랑해 줄 것이다."  그런 관계 속에서 평온한 가족을 유지하려면 나머지 가족들이 고유성, 개인성, 독립성, 자유를 희생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배 우자나 자녀들이 묵묵히 받아들이고 따른다고 해도 강압적인 부모에 대한 분노나 원망을 느낀다. 사랑이나 인정, 긍정의 표현이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는 것 또한 당연하다.

 

자기 자신이 있는 그대로 사랑받고, 인정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는 점을 깨우쳐 주어야 한다. 누구나 자신만의 고유하고 독자적인 방식으로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점을 깨우쳐줘야 한다. 아이들에게도 이제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어떤 대가를 치르지 않아도 되고 아무 조건없이 가족이 될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구원이 된다. 남을 무시하고 짓밟는 부모가 '날 위해 언제나 곁에 있어다오' 라고 말한다면 , 지나치게 헌신하는 부모는 '널 위해 언제나 곁에 있을 줄게' 라고 말한다. 아내가 가족의 모든 일에 일일이 뒤치다꺼리를 하기 시작하면, 남편은 자신이 책임지기에 불안한 일은 모조리 아내에게 떠넘겨버린다. 그런 아내는 또 아이들의 응석을 모두 받아준다. 그 밑에서 자란 남자 아이들은 버릇없고 무례하며, 어른이 되어서도 자신의 어리광을 모두 받아줄 수동적인 방어 행동을 하는 여자를 찾는다. 지나치게 헌신하는 것은 가족 모두 자기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하려는 목적에서이다. 결국 가족이 정서적으로, 가정적으로, 사회적으로 자신을 스스로 돌보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모두 박탈해 무능하게 만들어 버린다. 아이들에게 지나치게 헌신하며 뒤치다꺼리를 하는 부모들은 무의식적으로 이렇게 요구한다. “ 널 돌봐주고, 밥해주고, 청소해 주고, 옷 사주고, 빨래해 주고, 장 봐 주고,  곁에 있어 주면 ... 널 사랑해 줄게”

 

지나친 헌신은 상대방을 지배하려는 욕망의 또 다른 얼굴이다. 상대방에게 인정받고, 사랑 받고, 자신의 가치와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그런 행위를 하는 것이다. 존재 자체로 자신이 사랑 받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대신 살아줄 수 있도록 자기 삶을 내주어야 사랑받는다는 사실을 무의식적으로 깨닫기 때문이다. 부모가 자신의 삶을 침범하는 상황을 아이들은 자신이 무능하다고 인식 한다. 그 결과 자신감은 사라진다. 지나친 헌신을 통해 자신을 방어하는 부모는 아이들이 갖고 싶어하면 무엇이든 허락한다. 하지만 반드시 자신의 허락을 받거나 자신을 거쳐 이루어지도록 한다. 그런 상황에서 아이들은 절대 자기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 분리된 독립적인 정체성을 가질 수도 없고 혼자서 살지도 못한다.  낯선 상황을 견디지도 못한다.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어도 지나치게요구하거나 희생한다. 자신감이 심각할 정도로 부족하다.

 

너무 밀접하게 얽히고 설킨 가족에서 자란 아이들은 독립할 때가 되어도 떠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가 자신을 위해 그토록 많은 희생을 했다는 생각에 죄의식마저 든다. 지배하고 강압적인 가족이든, 지나치게 헌신적인 가족이든 아이들은 주체적으로  자유롭게 독립하지 못한다.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부모의 마음속에는 남이 알아주고, 인정해 주길 바라는 간절한 바람과 남들로 부터 거부당하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다. 이들이 모든 걸 베풀면서도 불평하고 한탄하는 이유는 남들로부터 인정받기 위해서이다. 헌신적으로 매달리고, 자꾸 남의 의도를 확인하고, 남의 눈치를 보고, 비위를 맞추려 애쓰고, 힘들어도 자기 한 몸 희생하는 행동 역시 남의 주목을 끌기 위한 노력이다.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의 잠재의식 속에는 늘 남에게 버림받고 거부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다. 그렇게 드러나지 않는 공포로 인해 정작 자신의 육체적, 정서적, 사회적, 직업적 욕구는 소홀히 한다.

 

지나치게 헌신하는 부모는 아이에게 너무 관대하다. 아이에게 책임을 물으면 부모를 떠나버릴지 모르기 때문에 절대 아이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  결국 무책임한 행동이 아이 몸에 배고 부모는 계속해서 아이의 요구를 들어준다.  물론 아이들은 언제나 사랑 받을 자격이 있다.  하지만 가족의 일원이 되기 위한 가정 본질적인 요소가 '책임'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아이가 무책임하게 행동하는 것은 가족내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신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