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차나 한잔 들고가게!

국가란 이름의 괴물 1

 
김두식 교수는 2004년에 ‘헌법의 풍경’이라는 책을 썼다. 지금 시기에 꼭 읽어 보야 할 책으로 나는 추천하고 싶다. 그 중에서 국가에 대한 부분을 정리하여 2회로 나누어 올린다. 우리나라가 지금 왜 이렇게 되었는지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지금 이런 상황이 일어난 것은 그럴만한 환경이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이 땅에 이상한 대통령이 나타난 것도 그럴만하기 때문이다. 환경이 변하지 않으면 또다시 얼마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우리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이 상황이 왜 일어났는지?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체제가 얼마나 허약한지, 이 나라 자체가 얼마나 허약한 존재인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책이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국가는 절대적인 선善이라는 교육을 받고 자라났다. 절대적인 선에 대한 경의 표시와 충성 서약은 그래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 나, 너, 우리, 우리나라, 대한민국”으로 시작되던 초등학교 교과서에서부터 우리는 쉬지 않고 ‘국가는 우리를 지켜주는 고마운 존재’임을 배우고 익힌다. 우리 세대는 고등학교 때까지 국가는 절대적 선이라는 바로 그 진리에 사로잡혀 있다가 대학에 입학하면서 그 진리가 한 방에 무너지는 것을 발견하고 새로운 세계관에 눈뜬 세대이다. 그 진리를 한 방에 무너뜨린 것은 다름 아닌 광주의 기억이었다.
 
의외로 우리가 국가에 대해 가지고 있는 지식은 너무나 부족하다. 국가가 국민, 영토, 주권이라고 하는 형식적 요소로 구성되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 기원이 어떻게 되고 우리가 어떻게 해서 국가라는 조직을 가지게 되었으며, 그 정당성의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 도대체 뭘 위해서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 못한다. 정확히 국가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왜 우리가 거기에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무조건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만큼 황당한 논리도 없다.
 
국가에 대한 충성 서약이 정당하려면 그 국가가 절대적으로 선한 존재이며, 그 선함이 변할 수 없는 것임이 전제되어야 한다. 신神에 대한 충성 서약은 신의 존재 자체가 절대적인 정의임을 인정한 사람들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국가는 그런 절대적인 존재가 될 수 없다. 국가를 사랑의 대상이 아닌 통제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은 법학의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 국가가 사랑해야 할 대상일 뿐이라면, 사실 법은 할 일이 없다. 그저 절대선인 국가가 명하는 대로 우리가 따라가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별히 법에 의한 지배를 생각할 필요가 없다.
 
하나의 이념 속으로 몸을 던진 사람들은 국가에 대해 이야기할 때 자신의 이념과 배치되는 국가들의 범죄만을 주로 예를 든다. 좌파는 줄기차게 나치 독일과 제3세계 극우 독재자들의 범죄만을 이야기하고, 우파는 반대로 북한과 소련, 중국, 캄보디아 등의 범죄만을 이야기한다. 한 쪽의 진실만을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국가 폭력과 범죄는 단순한 이데올로기의 문제로 오해받기도 한다. 그러나 좌우 어느 쪽에 의해서 주도되든지 간에 국가는 늘 괴물이 될 위험을 지니고 있다.
 
1933년 1월 불과 43세 나이로 총통직을 쟁취한 히틀러의 주된 목표는 독일 제국, 더 나아가 유럽전역에서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유대인들을 박멸하는데 있었다. 보호구금이 필요한 사람들은 언제든지 재판 없이 투옥되어 강제수용소에 보내졌다. 처음 공산주의자들이 붙잡혀 어딘가로 사라지기 시작했을 때, 많은 국민들은 ‘히틀러가 빨갱이들을 강력하게 잘 처단 한다’며 박수를 쳤다. 이때 박수친 사람들 중에는 사회주의자, 평화주의자들도 있었다. 뒤이어 사회주의자, 평화주의자들이 붙잡혀 들어가기 시작했을 때 의식 있는 사람들은 조금씩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했지만, 이미 히틀러의 권력은 굳건하게 자리를 잡은 뒤였다. 히틀러가 집권 첫해에 이루어낸 일들은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가 공산당, 노동조합, 사회민주당 등 반대세력을 완전히 격퇴하는데 소요된 기간은 불과 3개월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나치 독일이 벌인 이 끔찍한 학살극을, 그저 히틀러라는 미치광이와 그를 둘러싼 몇 명의 극렬한 동조자들에 의해 벌어진 일회적이고 지극히 예외적인 사건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홀로코스트는 소수에 의한 광란의 잔치였기보다 근본적으로 완벽한 시스템의 승리라 할 수 있다. 유대인은 혈통과 신앙이 섞인 개념이고, 이주와 개종을 거듭했기 때문에 유럽인들 가운데서 유대인들을 구별해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군은 새로운 지역을 점령할 때 마다 마치 전 유럽의 유대인 명단이라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귀신같이 찾아내서 그 집을 수색하고 사람들을 잡아갔다.
 
2001년 미국의 저널리스트 에드윈 블랙은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책 ‘IBM과 홀로코스트’를 출간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나치가 유대인을 색출하여 분류하고 강제 추방하고 수용소에서 학살하는 것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IBM의 최신기술이 자리 잡고 있었다고 한다. 독일 내에서만 약 2000대가, 독일에게 점령당한 유럽전역에서 역시 수천대가 활용된 이 기계의 역할은 엄청났다. 유대인들을 수용한 주요 강제수용소마다 빠짐없이 설치되어 히틀러 이전의 수많은 군주들이 계획했었지만 결국 실패했던, 유대인 청소의 과업을 실현하는 데 최고 공신 노릇을 한 것이다. 에드윈 블랙은 IBM이 단순한 기계를 만들어 판매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나치 요구에 따라 기계를 특별히 제작해주고 유지보수 해주었으며, 기계를 사용할 나치장교들을 훈련시켰다고 폭로했다.
 
홀러코스트는 IBM뿐만 아니라 독일이라고 하는 국가 전체가 컴퓨터처럼 착착 손발을 맞춰 작동했기 때문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법률가는 법률가대로, 의사는 의사대로, 공무원은 공무원대로, 군인은 군인대로, 철도원은 철도원대로 모두가 자기 자리에서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컴퓨터처럼 잘 조직되어 운영된 나치 독일의 이야기는 국가가 우리에게 얼마만큼 위험할 수 있는 존재인지를 잘 보여준다. 어떤 개인의 범죄도, 어떤 깡패 조직의 범죄도, 국가가 괴물로 돌변하는 순간 만들어내는 참극과는 비교할 수 없다.
 
다른 한편, 나치 독일의 이야기는 법法에 의한 지배가 그저 외형상 법처럼 보이는 것들에 의한 지배가 아니라, 정의에 합치되는 법에 의한 지배가 되어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 법이라고 다 법이 아니다. 나치 독일의 법률가들이 충실히 따르려고 했던 법은, 법의 탈을 쓴 불법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가 국가의 괴물화를 막기 위해 지켜내야 할 법은 반드시 ‘정의에 합치되는 법’이어야 한다. 법의 탈을 쓴 불법은 이미 괴물로 변해버린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악의 도구일 뿐이며 더는 법일 수 없다.
 
 

'차나 한잔 들고가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국가란 이름의 괴물 2  (0) 2025.02.24
나는 아무래도 산으로 가야겠다.  (0) 2025.02.24
설날에  (0) 2025.01.31
不失其所者久  (3) 2025.01.04
功遂身退 天之道也  (2) 2024.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