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의 직관 (존L. 캐스티 지음, 이현주 옮김)
우리는 통념적으로 사회적 사건 때문에 사람들이 미래에 대해 일정한 방향으로 생각하게 된다. 이 책에서는 정 반대로 주장한다. 즉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향이 사건을 만든다는 것이다. 어느 인구집단의 미래에 대한 신념이 앞으로 일어날 사회적 사건의 유형을 결정한다. 이러한 연구를 사회적경제학이라 부른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그이 저서 '고용, 이자, 화폐의 일반이론'에서 사람들을 연역적이고 이성적 사고영역 밖에서 행동하게 하는, 다시 말하면 계산이 아니라 느낌과 신념을 쫓아 행동하도록 내모는 동물적 감각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실제로 발생하는 사건의 특징과 발생 가능성을 결정짓는 것은 하나의 집단이나 사회적 분위기, 즉 그 집단의 미래에 대한 생각이다.
* 실제로 발생하는 사건은 사회적 분위기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사건은 중요치 않다.
* 인간의 사회조직 외부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사건은 없다.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외부사건이라는 개념은 허구다.
우리는 이 책에서 사건이 대중 심리를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의 사회적 분위기가 사건을 조종한다고 주장한다. 뉴턴에 따르면 행성이든 당구공이든 원자든 물체는 외부의 힘이 가해지지 않으면 기존의 상태를 계속 유지한다. 뉴턴의 이러한 우주론에서는 외부사건으로 인해 하나의 체계가 운동방식을 바꾸게 된다는 생각이 자리를 잡았다. 입자가 배열을 바꾸는 방법에 관한 뉴턴의 견해에서 한발만 더 나아가면, 사회속의 인간을 외부사건에 시달리는 단순한 입자로 생각할 수 있다. 여기서 외부사건은 인간의 행동을 끊임없이 변화시킨다. 나는 외부의 힘을 인정하지 않는다. 하나의 사회집단은 자기 충족적이며 실제로 사회체계 내에 외부의 힘 따위가 존재할 여지는 없다.
모든 집단에는 사회적 분위기가 존재하고 낙관적이든 비관적이든 미래에 대한 집단의 신념이 존재한다. 그리고 집단의 외부가 아닌 집단의 내부에서 생겨난 분위기는 나중에 겪을 집단적인 사건의 방향을 한쪽으로 몰아간다. 바로 이점이 이 책에서 탐구할 주제다. 애널리스트 로버트 프렉터는 사회경제학적 가설을 제안했는데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사회분위기는 사람들의 상호작용의 자연스런 결과다. 사회분위기의 동향과 범위는 경제적, 정치적, 문학적 행동을 포함한 사회적 행동의 특징을 결정짓는다. 달리 말하면 분위기가 사건을 지배한다.
(그래서 지배자들은 언론을 통해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려 한다. 언론이 중요한 이유다. 민주주의를 수호하기위해서는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
사회적 분위기는 집단으로 무리를 지으려는 인간의 성향으로 생겨나며, 우리가 실제로 목격할 것으로 예상되는 사건의 특징과 발생시점에 영향을 미친다. 규모, 색체, 형태를 막론한 온갖 종류의 무자비한 약탈자와 날마다 싸워야 하는 오늘날, 무리를 따를 경우 얻게 되는 책임회피는 엄청나게 편리하다. 현대 세계의 가장 편한 생존 원칙은 바로 책임회피다.
여러 가지로 작은 분위기들이 존재한다. 각각의 분위기는 인구집단 내 하부집단의 미래에 대한 신념을 반영한다. 나는 도시든 국가든 세계 전체든 우리가 다루는 집단이 특정 시기에 단 하나의 분위기만을 갖고 있다는 듯이 말할 것이다. 우리는 금융시장이 사회적 분위기를 측정하는 훌륭한 측도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사회적 분위기 또한 거시경제현상의 대표적 지표가 된다. 사회적 분위기가 거시경제현상 뿐만 아니라 모든 집단적인 사회현상의 대표적인 지표라고 주장할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 다섯 개 중 세 개가 중동지역에 있고 지난 10년 안에 지어졌다. 이러한 고층건물은 자신들의 미래가 꼭 오늘과 같을 것이고 더 나아질 것이라는 사회의 믿음을 담은 기념물이다. 역사를 보면 마천루 건설사업과 금융위기는 기이한 상관관계가 있다. 인간의 오만을 기념하는 건축물에 대한 욕구는 금융위기에 나타난 지표만큼이나 확실한 듯 보인다. 이러한 관점에서 주가지수가 미래에 대한 사람들의 느낌을 반영한다고 추정해 볼 수 있다. 세계적인 고층빌딩의 공사가 시작될 무렵 사람들은 대책 없을 정도로 미래를 낙관했고, 사회적 분위기를 가늠할 각국의 주가지수는 우주 밖으로까지 치솟을 기세였다. 공사가 끝났을 때 주가지수는 예외 없이 떨어져있었다. 이는 각국 국민들이 미래를 심히 비관하고 있음을 의미했다.
주식시장에 강력하고도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동향은 현직 대통령이나 여당이 압도적으로 승리하거나 패배할 가능성에 극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주식시장이 대단히 침체했는데도 현직 대통령이 재선되거나 강력한 상승장인데도 압도적인 표차로 패한 적은 한번도 없다. 현직 지도자나 도전자의 실제 정책들은 이러한 역학관계와 아무런 관계도 없다. 중요한 것은 특정한 형태의 변화가 아니라 변화에 대한 욕구다. 분위기가 더 비관적인 방향으로 바뀌면 유권자들은 정치인의 결점을 확대하는 동시에 장점을 축소한다. 이전의 정치가 실패했다고 생각함에 따라 결국 다음 선거에 혹은 선거 이전에 현직 정치인을 내쫓고 만다.
인류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자본과 노동, 물자와 사상의 흐름을 가로막는 제약을 없애버리고 세계를 하나의 거대한 시장으로 보려는 세계화는, 지금 그리 유행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진행 중인 집단적 사회현상이다. 현대 새로이 구현된 세계화라는 개념은 1971년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탄생했다. 나는 무역에 관련된 모든 것, 즉 인력, 자금, 정보, 지식, 물자의 자유로운 흐름을 막는 장벽이 없어지는 세계화가 인간의 집단적인 사회적 활동임이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러한 활동이 세계인들의 전반적인 사회분위기에 영향을 받는다고 가정하면 세계화라는 현상도 마찬가지다.
마천루, 선거, 세계화 같은 사례에서 공유되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 개인들의 집단: 집단을 구성하는 개인들은 모두 미래에 대한 신념이나 느낌을 어느 정도 갖고 있다.
* 무리 짓는 행동: 어떤 집단이든 그 구성원들은 무리를 지어 사회적 집단을 형성하는 성향을 갖고 있다.
* 사회적 분위기: 한 집단이 미래에 대해 느끼는 방식을 사회적 분위기라면, 사회적 분위기는 집단을 구성하는 개개인들이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포함하여 그들 개개인의 분위기에서 생겨난다. 하지만 여기서는 미래에 대한 해당 집단의 특정한 신념을 설명하는 용어로 사회적 분위기라는 말을 사용할 것이다.
* 사건과 행동: 사회적 분위기는 특정기간에 발생할 수 있는 사건의 유형에 영향을 미친다. 어떤 집단이 미래를 아주 낙관할 때,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을 짓는 식으로 낙관론을 반영하는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어떤 사회가 미래를 두려워한다면 정치지도자 교체 같은 일을 모색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무리 짓는 본능이 사회적 분위기를 매개로 집단적인 사회적 행동과 사건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금융 분야의 대가이자 사회이론가인 프렉터의 여러 가지 저서의 핵심내용이었다. 프렉터가 처음 사용한 사회경제학은 사회학과 경제학을 혼합한 학문인 사회-경제학과 구조적으로 다르다.
오스트리아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삶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그 문제가 사라질 때 보인다.’ 우리가 사라졌기를 바라는 주요한 문제들은 크게 네 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다. 기간과 시간 차, 사회적 분위기의 형성과정과 측정방법, 사건에서 분위기로의 역영향, 어떤 지배적인 분위기 속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높거나 낮은 행동과 사건에 대한 예측이다. 서로 다른 유형의 사회적 사건들은 사건이 전개되는데 필요한 기간이 다르다. 사회적 행동의 기간은 기본적으로 세 가지 경우로 분류될 수 있다.
* 단기 사건은 대부분 대중문화 영역에서 볼 수 있다.
* 중기사건은 정치적 이념의 변화나 거시적 경제동향 변화, 세계화와 같은 과정의 발생 등의 사건이 포함된다.
* 장기사건은 지정학적 변동이나 열강의 흥망성쇠 등이 여기에 해당하는 사건이다.
어떤 사회의 분위기가 어떻게 형성되는지 생각해 보는 방법으로 독감이 퍼져나가는 과정을 상상하면 된다. 한 집단에서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될 때도 동일한 메커니즘이 작용할 것이다. 유일한 차이라면 박테리아와 바이러스가 몸에서 몸으로 옮겨가는 것과는 달리 미래에 대한 생각과 신념은 뇌에서 뇌로 전달된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말과 몸짓을 관찰함으로써 그들의 느낌에 대한 여러 단서를 확보한다. 따라서 이러한 상호작용은 사람들이 자신의 견해를 형성하는 원료가 된다. 우리는 분위기 형성이 아니라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회적 분위기는 늘 존재한다. 그것이 생겨나게 만들 필요는 없다. 따라서 우리는 그 분위기가 어떻게 생기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변하느냐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일반적으로 어떤 사건 특히 대통령 암살이나 테러공격, 금융기관 파산 같은 극적인 사건이 일어나면 미래에 대한 사람들의 느낌이 달라진다. 사람들의 분위기와 사회전체의 분위기가 사건발생으로 영향을 받는 것이다. 여하튼 사회통념은 그러하다. 사건을 예상하는 것과 예측하는 것의 차이는 미묘하지만 중요하다. 구체적인 사회적 사건을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이나 방법은 과거에도 없었고 미래에도 없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사건이 생겨날 환경, 사회적 분위기를 예상할 수 있으며, 이 환경이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사건의 유형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사회적 사건은 우연과 필연의 산물이다.
22명의 선수가 규칙에 따라 경기를 한다고 생각해보자. 이들의 동작은 경기의 규칙에 의해 제한을 받는다. 그리고 비가 와서 경기장이 진흙투성이가 되면 패스를 못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선수들의 동작자체가 바람이나 비, 햇빛을 만들어내지는 않는다. 하지만 경기장에 비유된 사회적 분위기는 실제로 구성원에 의해 형성된다. 인간의 세계에서는 사회적 분위기, 즉 시대정신이 경기장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 경기장에서 개인, 기관, 정부는 확실히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이들 선수들의 행동과 상호적용은 상황의 우연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사회 환경은 필연에 해당한다. 그런데 사건을 특정한 방향으로 밀고나가는 것은 이 환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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