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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차이(김선)

핀란드: 아이의 속도를 기다릴 수 있겠는가?

불과 20세기 초반만 해도 식민지국가에다 2차 세계대전 패전국에서 반세기만에 괄목할만한 경제적, 사회적 성장을 이뤄낸 핀란드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국가경쟁력 1위의 국가이자 다른 선진국들의 교육가와 정치가들이 교육제도를 벤치마킹하러오는 강국이다. 핀란드교육에서 놀라운 점은 학교교육에서 공동체와 평등을 강조하는 철학을 가지고 있고,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 하고 있다. 무엇이 핀란드교육에서 경쟁과 협동, 개인과 공동체라는 두 가지 가치를 동시에 추구할 수 있도록 만들었을까?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 달리 핀란드의 산업발달 역사는 상대적으로 짧다. 일찍이 산업혁명이 이루어진 영국이나 프랑스와는 달리 핀란드는 20세기 중반까지도 농경사회였고, 불과 반세기만에 지식경제산업 중심의 복지국가로 변모했다. 핀란드는 12세기 이후부터 스웨덴과 러시아의 식민 지배를 받았고 오랜 기간 외세의 침략과 영향 속에 있었던 아픈 역사를 지닌 나라로 한국과 유사한 면도 많다. 1920년 러시아에서 독립하였으나 복잡한 국제관계와 정치적 문제 때문에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2차세계대전 중 독일편에 설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패전하여 러시아에게 막대한 전쟁보상금을 지불해야 했다. 약소국임에도 러시아를 상대로 싸운 전쟁경험은 핀란드인으로 하여금 하나로 단결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이런 핀란드의 전쟁과 지배역사는 국민들이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결속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으며, 국가가 위험에 빠지면 국민은 공동운명을 가질 수밖에 없으니 힘을 합쳐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었다.

 

핀란드의 문화는 공통의 목표를 위한 결속력을 다지고 다양한 배경과 신념의 사람들이 합의를 도출해낼 수 있도록 하는, 의사소통 메커니즘이 사회시스템 곳곳에 존재한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정부와 고용주와 노동자 사이의 긴밀하고 끈끈한 의견조율과 의사소통을 특징으로 하는 3자대화 원칙이다. 이는 교육분야에도 적용된다. 1960년대 이후 교육정책을 결정하고 개혁을 실행하고, 학교와 교실의 변화를 지지하는 것까지 노사정勞使政 3자는 모든 시민들을 위한 의미 있는 교육을 위해 긴밀한 협조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부러워하며 지속적으로 인용하는 핀란드식 복지국가는 이런 사회문화적 환경 및 역사 속에서 생겨났다. 전 세계인이 부러워하는 핀란드의 교육제도는 이런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만들어진 산물이다.

 

교육부와 국가교육청, 학교장과 교사, 학부모 그리고 공동체가 아이들에게 최상의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상호신뢰하고 소통해서 탄생한 것이다. 교육학자 이윤미는 핀란드 교육혁명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그들의 전략 속에는 당리당략에 의해 이기고지는 제로섬게임보다는 적극적인 사회통합전략이 눈에 띈다. 사회통합적 전략에 기반을 두어 정당 간 정당과 정부, 정부-기업-노조 간의 노사정 협의체제가 구축 되어온 점은 교육을 포함한 핀란드 사회발전의 핵심적인 동력으로 보인다. 40년에 걸쳐 진행해온 개혁이 일관성 있게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이념, 지도, 전략이 상호보완적으로 작동했기 때문이다

 

인적자본이론은 사람의 역량도 자본으로 볼 수 있다는 것으로 교육이나 훈련을 통해 생산력을 높일 수 있다는 이론이다. 그래서 한 사람에게 교육적 투자를 했을 때 그에 대한 이익을 그 사람의 고용생산성을 측정함으로써 계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적자본이론은 교육적 효과를 경제적 비용과 이익률이라는 산술적인 방법으로 표준화하여 만들었다. 핀란드에서도 영향을 받아 사람에 대한 투자를 최고의 투자로 여겼다. 핀란드는 인문계와 실업계로 나뉜 이원화된 교육제도를 택하고 있었는데 기존이원화 된 체계를 전기 중등학교 레벨까지 하나로 통합했다. 모든 학생에게 동일한 기초교육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종합학교 개혁이 이루어졌다. 종합학교 개혁은 교사들이 개혁의 주체였다. 1970년대는 교원의 질을 높이기 위해 새로운 제도적 기준들이 마련되었다. 중등학교 이상의 교원들에게 석사학위를 요구한다. 핀란드 교육개혁은 교육행정체제 면에서 지역 및 학교단위의 자율성을 강화하는 방법으로 나아갔다.

 

초등 및 전기 중등학교 단계인 9년제 종합학교에서는 사회 속에서 책임질 수 있는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해 기초를 배우는 교육을 목표로 한다. 이에 따라 핀란드 학생들은 수학과 언어 같은 핵심과목들은 여타 국가들과 비슷한 교육과정을 밟아가지만, 다른 과목은 주제별로 통합한 과목 위주 및 그룹학습형태를 취한다. 종합학교에서 기초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인문계 고등학교나 실업계고등학교를 선택하여 진학할 수 있다. 고등학교학생들은 학교에서 개설한 코스에 따라 공부를 하지만, 자율적으로 자신의 학습계획과 속도를 정할 수 있다. 학교교육에서 교과목마다 반드시 가르쳐야 할 주제별 항목을 나열한 교수요목에 따라 모듈화 되어 있는 코스를 학생의 학습능력과 속도에 맞춰 선택해서 한 해 동안 대여셧 학기에 걸쳐 배우게 한다. 학생들의 지식과 기술은 각각의 학습모듈을 완수했는지 여부에 따라 평가되고, 학생 스스로 세운 학습계획에 따라 모든 학습을 다 완수하면 그에 대한 자격증을 부여하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또한 핀란드 학생들은 대학으로 곧바로 진학하기보다 2-3년 정도 사회경험을 쌓거나 여행을 다니면서 자신의 진로를 생각해볼 시간을 가진 후에 대학에 진학한다. 핀란드대학은 일반계대학과 폴리테크닉으로 불리는 종합기술전문학교 두 종류로 나누어진다. 대학입학은 대학입학 자격시험성적과 대학별로 실시되는 입학시험의 성적으로 결정된다.

 

핀란드 교육의 가장 큰 특징은 그룹학습형태의 프로젝트 수업에 있다. 이런 학습에 학생들은 저마다 적극적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관심 없어 보이는 학생은 한명도 없다. 이런 수업은 각기 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고 다른 가정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자기가 맡은 일을 함으로써 프로젝트를 실현하도록 힘을 모으는 훈련이다. ‘두뇌만 키우는 것이 아니다. 좋은 어른이 될 수 있도록 마음의 무게를 중시한다. 나는 뛰어나도 남은 열등하다고 말하는 사회를 만들고 싶으냐고 물으면 대부분 핀란드 사람은 아니라고 말한다는 핀란드교사의 이 말처럼 핀란드 교육자들은 통계수치로 나오는 성과만을 추구하거나, 그 수치를 절대적으로 신뢰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지식이 양은 시험으로 측정할 수 있겠지만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나 공동체 의식 혹은 인격적 성장 같은 것들은 확정할 수 없고, 오히려 시험이 아닌 활동으로 충분한 시간과 기회를 주었을 때만 발현되기 때문이다.

 

핀란드교육제도를 살펴보면서 느낀 점은 정책차원에서 학생들에게 지속적으로 기회를 주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학습능력이 더딘 학생에게는 자신의 페이스에 맞춰 천천히 진학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자신이 인문계에 적합한지 실업계에 적합한지 탐색해 볼 수 있는 시간을 주며 한 번 선택한 후에도 다시 바꿀 수 있도록 하는 등 학생수준에 맞춰 최고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정책을 펴고 있다. 이런 교육제도를 통해 천천히 배워도 괜찮아, 실패하면 어때라는 메시지를 받는다. 이런 제도적 환경과 사회적분위기 속에서 학생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충분히 성찰할 수 있는 기회와 남과 다른 나만의 특성을 찾기 위한 여유를 갖게 된다. 핀란드학교도 영국이나 미국학교 못지않게 학생들을 평가하고 좋은 학군과 좋은 학교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차이점은 평가를 공개하지 않고 내부정보로만 사용하며, 학군과 학교 차이를 제도적으로 장려하지 않는다. 그것은 겸손을 미덕으로 삼고 공동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적 이유가 크다.

 

핀란드에서는 1948년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으로 전쟁배상금을 갚아나가던 어려운 시절에 무상급식을 세계최초로 실시하여 가장 오래된 무상급식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핀란드에서 무상급식을 하는 것은 단순히 학생들에게 밥을 준다는 개념이 아니라, 학생이 건강한 인격으로 성장하는데 필요한 모든 교육적 심리적, 보건적 영양학적 자원을 학교에서 제공해 준다는 합의가 핀란드 사회에 전반적으로 받아들여져 이루어진 것이다. 핀란드 교육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바로 교사의 역량이다. 핀란드에서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석사과정이상을 수료해야 하고 교사가 된 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교육학 석사, 박사과정을 공부하는 등 교사들의 자기개발역량은 세계 최고수준이다.

 

핀란드에서 교사의 사회적 위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핀란드 사회에서 교사는 언제나 대중의 존경과 인정을 한 몸에 받아왔다. 전통적으로 부모들은 교사를 자신의 아이들에게 무엇이 최선인지 잘 아는 전문가로 신뢰하고 있다. 그래서 교사들은 교실에 알맞은 교수법을 선택하는 측면에서 상당한 자율성을 가지고 있다.’ 현장교사들의 전문적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해주는 핀란드 사회에서 교사는 교육전문가로 대우 받는다. 또한 재직 중 의무적인 연수는 폐지되었고, 학교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마련한 전문성개발 프로그램이 이를 대신하고 있다. 정부차원에서 자신들이 맡은 학생 개개인의 적성과 능력에 맞게 수업을 제공할 수 있도록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역량개발을 지원할 뿐 아니라, 필요한 보조교사를 배치하는 등 학교환경을 개선하는데도 앞장서고 있다. 교사들은 지속적인 자기개발을 위한 연수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