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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차이(김선)

독일: 공부를 잘해야 성공하는가?*

우리나라 교육에서 입시위주 교육을 가장 큰 병폐로 여기고 이를 개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공교교육을 몰락시키고 학교를 서열화 하는 주범으로 자사고, 특목고를 지목하고 있다. 이런 병폐들을 없앤다고 우리가 원하는 교육이 이 땅에서 실현될 수 있을까? 제도 혹은 정책 문제일까? 교육제도는 정치, 경제, 문화, 복지 분야를 포괄하는 전체적인 환경에서 만들어지고 진화되기 때문에 제도 자체에 대한 개선이전에 전체 맥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서울대를 없앤다고, 자사고나 특목고를 없앤다고 교육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먼저 학교 가정 그리고 사회에서 자라는 우리 아이들이 우리 사회의 어떤 인재로 자라는 것이 좋을지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과 토론이 선행 되어야 한다. 이런 공론화 작업을 통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교육과 철학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최고라고 이야기하는 학교 혹은 프로그램을 수동적으로 쫓아가는 것이 아닌 우리 아이, 가정, 사회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 가운데 알맞은 교육을 주도적으로 찾아가야 한다.

 

우리나라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로 지적되는 것이 교육을 입신양명立身揚名을 위한 도구로 여기는 풍토이다. 과도한 사교육, 일류대학 위주의 입시 및 교육제도 모두 이러한 사회적 문화적 풍토로 인해 교육제도가 왜곡된 것이다. 독일학교는 성적을 최고점인 1점에서 최하점인 6점으로 구분하는 절대평가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 과목마다 평가를 하고 총합계 성적표가 없기 때문에 성적순으로 줄을 세워 비교할 수가 없다. 독일에서 학생들이 교우관계나 여가 시간을 포기하면서 얻은 최고성적은 삶의 균형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상대평가로 줄 세우는 시스템이 없으니 아이들은 친구들과 경쟁 없이 내면의 동기로 공부한다. 독일에서 최고의 점수는 1점이 아닌 2점이 가장 이상적인 점수라고 생각한다. 학교수업만 착실히 따라가면 얻을 수 있는 점수로 학생들과 기업에서 선호하는 점수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뛰어난 엘리트보다 사회구성원으로 원만하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사람을 길러내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나는 독일교육을 사회적 합의에 의해 걸러지고 만들어진 구조에서 나의 위치를 찾을 수 있도록 설계된 효율적인 제도라고 정의하고 싶다. ‘이 사회에서 내가 맡을 분야가 어디인가?’라는 질문을 학생과 부모에게 하고, 학생이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아감으로써 책임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도록 유도하는 효율적인 시스템이다.

 

요즘 한국 사회는 흙수저 금수저로 대표되는 사회의 양극화와 부의 편중문제, 그 중에서도 부모의 사회경제적 격차에 따라 나타나는 아이들의 교육격차 문제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한국교육의 교육적 이슈를 둘러싼 논쟁의 근간에는 공부를 잘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하는 가정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사회는 공부가 좋은 직업을 얻고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위한 유일한 사다리라는 생각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독일사회에서는 아이들이 공부를 잘해야만 성공한다는 사고 자체가 없다. 성공을 위한 공부 대신 공동체를 위한 공부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독일교육을 평균 지향적이고 공동체 지향적인 독일교육을 비판하기도 한다.

 

대학서열이 분명하게 나뉘는 엘리트대학이 존재하는 한국이나 미국, 영국과 달리 독일대학은 모두 평등하다. 평등하다는 것은 시험성적을 가지고 어떤 대학을 갈 수 있느냐가 정해지지 않고,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로 학생의 능력을 평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해외로 유학을 가는 학생들도 대부분 엘리트의식보다 자신의 전문분야에 대한 관심에서 유학을 간다.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대학진학률을 자랑하는 한국의 고등교육의 현실 뒤에는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빚을 내고, 공부하기도 모자라는 시간에 생활비, 학비를 벌기위해 허덕인다. 자녀교육을 위해 희생하는 가정경제, 그리고 고용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무리를 해서라도 가져야 하는 대학졸업장이 자리 잡고 있다. 독일에서는 경제적 보상도 높고 사회적으로 존경받을 수 있는 좋은 직업을 대학 졸업장 없이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 이런 기회를 제공해주는 직업교육을 국민들이 선호하고 그에 대한 국가적 투자도 활발하다.

 

독일사회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인 가치가 선명하다. 독일에서는 한 개인이 직업교육과정을 선택하더라도 지속가능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지속가능한 삶이란 직업학교를 졸업하고 직업훈련소를 거쳐 중소기업에 취직하더라도 자신의 직장에서 받은 월급으로 평생 동안 생활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독일에서는 기본적으로 연금과 건강보험, 교육 같은 사회보장 제도가 튼튼하기 때문에 평생 동안 목돈을 마련하지 않더라도 안정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환경이 보장된다. 한국에서는 불안한 고용환경과 저임금문제, 안전과 관련된 사고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중소기업의 작업환경 자체가 좋지 않다.

 

비교교육학에서 학문적으로 전 세계의 교육제도 및 시스템을 비교하면서 내린 결론은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 나라의 문화, 역사, 사회적 전통과 토양에 대한 이해 없이 경제적, 정치적 필요에 의해 다른 나라에 이식하거나 모방한 교육제도나 정책, 프로그램은 원래 본 나라에서 의도한 바와 같이 실행될 수 없다. 독일의 교육제도는 어떤 철학적 기반으로 만들어졌을까? 이 나라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부모와 자녀들이 합의하고 받아들인 생각은 무엇일까? 많은 서양국가들이 그렇듯 부모들이 자녀양육에 있어서 가장 큰 가치를 부여하는 부분이 자녀의 독립심을 키워주는 것이다. 독일에선 18세가 되면 법적독립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대부분 부모들이 자녀가 18세가 될 때까지 자녀들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주고, 그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여긴다. 양육의 핵심은 18세 전에 학문적 교육이든 직업교육이든 일찍 자녀의 적성과 재능을 발견하여 직업과 연결시켜주는 것이다.

 

독일교육의 핵심은 빌둥 Bildung이라고 한다.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 빌둥이다. 독일 교육철학을 정의하는 빌둥은 교양이라고 번역할 수 있지만 이보다는 더 광범위한 개념이다. 자신이 처한 상황 속에서 한 사람이 겪는 사회적, 정서적인 성장을 의미한다. 개인이 태어나서 한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은 끊임없이 라는 존재와 나를 둘러싼 세계가 요구하는 문화적인 맥락과 신념 사이에서 타협해 나가는 과정이다. 헤겔도 빌둥을 개인이 지금까지 가졌던 신념이나 관점이 어떠한 사건이나 타인에 의해 도전 받으며, 크게 고민하고 번뇌하는 시간을 통해서 자신과 사회에 대한 재통합과 발전을 이루는 과정, 그 자체라 했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의 빌헬럼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라는 소설에서 청년이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를 통해 빌둥 개념을 이야기하고 있다. 넓은 세상에 던져져서 갖가지 인간관계에 휩쓸리게 되고 많은 실패를 경험하면서 인생의 여러 모습을 경험하게 된다. 자신이 느끼는 열정을 따라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지만 그곳에서 생각하지도 못한 어려움과 추악한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고 자신 및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해 실망하기도 하지만, 절망하지 않고 계속 나아가면서 자신의 존재를 발견하게 된다.완성하는 것은 배우는 사람의 일이 아니다. 배우는 사람은 연습하는 것을 충분하다. 노력하는 만큼 방황한다.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통해 인격의 성장이 이루어지고 자신이 살아야 하는 사회 속에서 나의 가치를 발견하고, 사회와 타협하는 과정 속에서 사회적인 성숙과 개인의 변화가 성취된다.

 

독일학생들은 좋은 직업을 얻기 위해 학교와 공부에 목을 매지 않는다. 만약 교수나 변호사처럼 학술적 능력이 중요한 직업을 희망하는 학생은 상급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지만, 대다수 독일국민은 자신의 적성에 맞는 목공이나 엔지니어로 혹은 교사로 사는 것에 만족하고, 사회는 다양한 직업으로서의 삶을 인정하고 존중한다. 왜냐하면 어떤 직업을 가지든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가치와 신념과 타협하고 대화하는 과정 속에서 개인적으로 성장하고 성숙해가는 그 과정은 모두 비슷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는 교육을 학습이 아니라 되어가는 과정 bildung으로 보는 독일인들의 교육철학이기도 하다빌둥의 또 하나의 특성은 자연스러움이다. 빌둥은 되어가는 과정에 촛점을 맞추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혹은 억지로 원하는 결과를 뽑아내려고 하는 경향을 배제한다. 대신 개인이 사회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스스로 그것을 발견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과정이 중요하다. 그 나이에 경험해야 할 것을 경험하고 고민해야 할 것을 고민하며, 사회와 이웃들과 관계를 맺는 모습이 자연과 인간관계까지 뻗어나간 것을 독일사회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은 스스로 자신이 삶을 결정하는 법에 익숙하고 현실적인 안목을 가지고 있다. 현실적이라는 말은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으며, 사회적으로 직업적으로 요구되는 기술 및 지식에 대해 정확한 안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독일 가정에서는 자립심을 키워주는 것이 부모의 핵심양육지침이고 학교에서는 수업내용과 방식, 그리고 교사와 친구들과의 관계를 통해 학생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협동하는 법을 배운다. 대학의 졸업장 유무에 상관없이 부모들은 자식들이 행복하고 풍요롭게 자립할 수 있도록 키웠고, 자녀가 학업을 선택 한 것은 자신이 적성에 맞거나 흥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독일인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괴테의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에서 찾을 수 있다. 수업의 목표는 행복한 가운데에서의 질서, 불행 속에서의 용기, 아주 사소한 것에 대한 배려, 그리고 가장 위대한 것을 잡을 수 있으나 경우에 따라서는 그것을 다시 놓아 보낼 수도 있는 아름다운 영혼을 소유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