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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차이(김선)

영국: 교양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주입식 교육의 가장 큰 폐해는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다른 사람과 교류하는 방법대신, 다른 데서 만들어진 지식을 단순히 습득하는 수준에서 교육이 그친다는 것이다. 영국교육은 초등학교부터 지속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말과 글로 표현하고 다른 사람과 교류할 수 있는 교양교육을 지향한다. 영국에서는 얼마나 읽었나 보다 얼마나 생각했나에 중점을 두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책을 읽어도 라고 자문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다. 학생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본격적으로 에세이를 쓰기 시작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에세이란 자신의주장을 논리적으로 풀어나가는 산문을 뜻한다. 이러한 글을 쓰기 위해 학생들은 글을 배울 때부터 스스로 생각하고 표현하는 훈련을 받게 된다. 수업시간에 교사는 열 문장 정도를 제시하며 질문을 한다. 학생들의 대답에서 중요한 것은 철자법이나 문법의 정확성보다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여 논리적으로 대답하는 능력이다.

 

어릴 때부터 책읽기 교육을 강조한다. 학생들은 항상 책가방에 책과 독서카드를 가지고 다닌다. 독서카드는 읽기 훈련을 통해 책이 재미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하려는 목적이다. 영국의 독서교육은 다음과 같이 행한다. ‘먼저 교실에서 교사가 동화책을 읽어준 다음, 그 내용을 각자가 기억해 그 이야기를 옮겨 써보게 한다. 이 방법을 통해 듣기와 집중력 기르기, 줄거리 이해하기, 기억하기 그리고 스스로 이야기를 옮기는 중 문장 만들기와 철자를 익힐 수 있게 한다영국 학생들이 논리력과 창의력을 향상 시키는 데 중점을 두기 때문에 보기에 맞는 답을 찾는 객관식이 아닌 자신이 생각을 말하는 논술형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논리력과 창의력 그리고 표현력을 키우는데 에세이 교육이 가장 훌륭한 방식이라고 믿고 있다. 에세이를 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많은 양의 정보 중에서 무엇을 취사선택해 설득력 있는 주장이 들어있는 에세이를 쓰느냐 하는 것이다. 에세이 쓰기를 통해 학생들은 주제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고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리하게 된다. 그 정리된 지식과 논리를 바탕으로 교사와 수업시간에 토론을 한다.

 

영국의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대학은 우수 엘리트들의 정통교육방식인 토론과 논문위주의 교육방식을 고수한다. 교수가 어려운 철학적 질문을 던질 경우 한국학생은 우선 노트를 살피거나 읽었던 내용을 기억해내려 힘쓰며 말할 거리를 찾지만, 영국 학생들은 먼저 말을 꺼냄으로써 분위기의 기선을 잡아 자신에게 집중하게 한 다음 다른 사람의 반응을 보며 자기 생각을 발전시켜 나간다. 한국학생들은 모든 것을 완벽히 정리하여 생각한 다음 말을 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대답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자신이 없다. 영국학생들은 일단 그냥 아는 것에서 시작한다. 한국학생들이 어려워하는 것 중 하나가 비판하는 것이다. 질문을 받으면 그렇게 유명한 사람이 연구한 결과를 내가 어떻게 반박해라며 당황한다. 영국교육에서는 비판하려는 시도가 중요하다. 무조건 남의 의견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시각에서 때져보는 것이다. 내 생각, 내 논리를 가지고 바판해 보면 그 다음 내용에 대한 지식은 자연스럽게 따라 온다.

 

이렇게 어렸을 때부터 논술형 교육을 받으면서 토론문화를 익혀 간다. 실제로 영국의 TV, 라디오, 신문 등의 언론매체에서는 여러 가지 사안에 대한 폭넓은 토론이 이루어진다. 한국에서는 감정싸움으로 번질만한 내용인데도 끄떡하지 않고, 자기 차례를 기다려서 자신의 주장과 대비해 상대방 주장이 왜 틀렸는지 지적한다. 이렇게 상대방을 반박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해 나가다 보면 반대의 의견에서도 배울 수 있고, 자신의 주장에 모순된 부분이 없는지에 대해서도 스스로 생각하고 깨닫게 된다. 내가 영국 토론문화를 보면서 감탄한 것은 자신의 발언권을 얻을 때까지 상대방 주장을 유심히 들으면서 기다릴 줄 아는 태도였다. 이런 기다림의 문화는 자녀교육에서 시작된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으면서 자신의 생각을 가다듬고, 자신의 순서가 왔을 때 논리정연하게 자신의 주장을 피력하는 것이 영국인들이 말하는 젠틀맨의 모습이다.

 

영국에서 만난 친구들은 가정환경 영향 때문인지 자기관리가 철저하다. 특별히 옥스퍼드대학에서는 강조하는 정신은 자립이다. ‘옥스퍼드 튜토리얼이란 교수나 강사 혹은 대학원 박사 수료생 등의 튜터와 학생이 1:1 혹은 1:2,3으로 만나 일주일에 한두 번씩 직접 대면하고 학습하는 과정이다. 옥스퍼드대학의 튜토리얼시스템 자체가 학생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장려하는 것이다. 튜토리얼에서 쓰는 에세이라든지 토론은 성적에 반영되지 않는다. 숙제를 안한다고 해서 내신 성적에 반영되는 것도 아니다. 숙제를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다. 성적에 반영되지 않아도 학생들 대부분은 에세이에 심혈을 기울인다. 교수와 다른 학생들에게 자기 생각을 피력하고 상대 주장을 비판하기 위해 철저히 준비한다. 살아남으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 많은 학생들이 이렇게 자신을 철저히 관리하면서 자신을 준비해 나간다. 학생들은 강의를 듣거나 튜토리얼을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조용히 각자의 방식대로 과제를 한다. 공부로 쌓였던 스트레스를 저녁식사 시간이후 또는 주말에 친구를 만나거나 과외활동을 하면서 푼다. 이런 생활방식이 몸에 베인 학생들이 공부에 집중하는 모습은 무서울 정도이다. 학생들의 철저한 자기관리는 학교와 가정교육을 통해서 익힌 철저한 육체적 정신적 훈련의 결과이다.

 

영국에서 사립학교와 공립학교의 차이는 큰 사회적 문제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영국사회는 아직도 계층사회이며 공립학교와 사립학교의 격차는 영국사회가 계층분리의 깊은 골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하는 고질문제중 하나이다. 인구비율의 7%에 해당하는 부유한 가정의 자녀들만 입학할 수 있는 학생들은 서민 혹은 노동자계층 자녀들과 분리되어 교육을 받으며,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대학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또한 영국의 정계, 재계고위직의 80-90%가 모두 사립학교출신이다. 세익스피어가 탄생한 나라답게 영국에서는 연극수업이 사립, 공립학교 할 것 없이 정식과목으로 채택되어 있다. 그 외에도 체육, 음악, 미술 등의 활동을 통해 전인교육을 중요시 한다.

 

영국학생들은 대학입시에 관련되니 않는 과목이라도 자기가 좋아하거나 관심 있는 영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부모나 교사들도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많은 기회를 누릴 수 있게 한다. 학업성과 외 학생들이 얼마나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지, 얼마나 유익한 현장체험 학습을 하는지, 예체능을 활동을 통해 행복한 학교생활을 하고 있는지가 학교를 평가하는 중요요소이다. 영국학생들은 입시를 위한 경쟁보다는 공부와 더불어 다양한 학과 및 활동을 꾸준히 경험함으로써,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고 원하는 진로에 대해 미리 생각하고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영국 사립학교는 교육의 주안점을 정신과 육체의 단련에 둔다. 중고등학교 생활을 좋은 철을 단련시키기 위해서 반드시 거치지 않으면 안 될 용광로로 여긴다. 이러한 고난을 극복하지 못하면 그 후에는 다가올 더욱 가혹한 인생의 시련을 견뎌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교육을 통해서 영국에서는 국가적 어려움에 자신을 희생하는 책임을 다하는 엘리트들이 만들어진다. 자신이 물려받은 부와 권력 그리고 명예를 책임감 있게 사용하는 교양을 쌓기 위해, 엄격한 규율과 다소 과도한 학업과 활동을 통해 교육하는 곳이 바로 영국 사립학교이다. 사립학교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이 인생에서 발육이 가장 왕성한 12세에서 18세 사이 아이들인데 그들은 소식小食을 한다. 소식이야 말로 절제와 인내심을 배우는 좋은 교육방법 중 하나로 여겨 식사조차도 철저하게 계산하는 것이 영국인의 교육철학이다.

 

개인의 자유와 사생활을 중요하게 여기는 영국인들이 자유를 침해하는 것 같은 사립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려 애쓰는 것은 왜일까? 이들이 말하는 자유란 어떤 모습일까? 영국사립학교를 졸업한 일본인 이케다 기요시는 영국의 자유개념을 이렇게 설명한다. “이러한 것들 모두가 자유의 전제인 규율이다. 자유와 방종의 구별은 많은 사람들이 언급하는 바이지만, 결국 이것을 구별하는 것은 이를 뒷받침하는 규율이 있는가하는 점이다. 사회에 나가 편안한 자유를 향유하기 이전에 그들은 우선 규율을 몸에 익히는 훈련을 해야 한다. ”

 

사립학교의 단점에도 불구하고 영국에서 사립학교들을 아직까지 용인하고, 사립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에 대해 사회적으로 인정하고 존경하는 이유는, 규율 속에서 자유를 구사하여 공동체와 사회를 위해 헌신하고 바른 방향으로 리드하는 지도자들이 있었고, 그들이 자신들은 사립학교에서의 그런 훈련을 통해서 공동체에 헌신하는 것을 배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영국학교교육에서 중요하게 여기지만 실제로 영국의 정치인들을 위시한 엘리트계층 사람들은 가족만의 시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아무리 바쁘더라도 가족을 위해 시간을 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가족 간의 시간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자녀의 이야기를 듣고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런 시간을 통해 부모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고 계획하는 현실감각을 배우게 된다.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부모가 아이를 키우는데 있어 어떤 가치를 최우선으로 삼는가? 그리고 그 가치를 자키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하는가?’ 이다. 영국 엘리트계층이 자녀들을 젠틀맨으로 성장시키기 위해서 원칙으로 삼는 가치는 함께 사는 세상에서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며, 기다릴 줄 아는 인격이며, 이런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지금의 영국을 이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