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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차이(김선)

싱가포르 : 효율적인 교육제도란 무엇인가?

우리나라 교육제도는 정권이 바뀔 때 마다 수많은 개혁과 노선 전환을 겪어왔다. 교육은 장치에 종속되어 있고 정권에 따라 조변석개朝變夕改한다. 싱가포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싱가포르 국부 리콴유의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한다. 그의 사상과 철학을 이해하는 것이 이 나라를 이해하고 교육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 “모든 사회는 공정하고 평등하게 그리고 가급적 많은 사람들에게 최고의 을 줄 지도자를 원한다. 비록 싱가포르에 사는 말레인들이 중국인들보다 더 부지런하다거나 경쟁력이 높은 것은 아니더라도 그들에게까지 사회적 부를 공평하게 분배해줄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절대 사회적 통합을 일구어낼 수 없을 것이다. ..”

 

리콴유가 총리로써 싱가포르를 이끌기 시작했을 때 이 나라의 모습은 지금의 싱가포르와는 완전히 달랐다. 싱가포르는 영국 식민통치에서 벗어난 후 원래 말레이시아연방이었던 도시국가에서 독립을 쟁취한 나라이다. 1965년 독립한 후 싱가포르는 많은 과제를 해결해야 했다. 천연자원과 수자원 공급을 전적으로 의지했던 말레이시아의 영향력을 극복하고, 외침에 대항할 충분한 국방력을 갖추어야 했다. 그뿐만 아니라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말레이계와 주변 국가들로부터 흡수된 다민족 다문화 사회를 통합시킬만한 싱가포르만의 문화가 필요했다. 독립초기 부패한 관료들을 척결해야 하는 것도 시급한 문제였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중점을 두었던 부분이 유능하고 깨끗한 엘리트들을 만들어 이들이 정치 분야를 비롯하여 사회각계각층의 주요 위치에서 나라를 이끌어 가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었다.

 

싱가포르는 플라톤의 철인정치가 표방하듯 뛰어난 재능을 지닌 소수의 우수한 인재를 체계적으로 교육시키고, 이들 중에서 지도자가 될 만한 인재를 뽑아 교육시키는 독재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인 시스템을 추구해왔다. 리콴유는 서양민주주의 가치를 충분히 공감하고 그 자신도 영국 유학시절 동안 민주주의 제도에 매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과감히 냉정한 현실 지도자로 권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그는 유능한 엘리트가 권력을 쥐고 합리적인 정책을 마련하여 시행할 때만이 지속가능한 발전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래서 리콴유는 성과중심주의를 기반으로 한 시스템을 엘리트집단이 리드하게 하는 정치체제를 구축했다.

 

뛰어난 엘리트가 국가를 운영해야 한다는 싱가포르의 정치절학에 맞추어 싱가포르의 교육제도도 철저한 엘리트주의와 성과주의에 기반하고 있다. 실제로 초등학교에서부터 상급학교로 진학하는 학생과 직업교육을 받는 학생들을 구분하는 일종의 솎아내기가 이루어진다. 싱가포르 정부도 어린 나이부터 학생을 인문계와 실업계로 나누는 폐단에 대해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근래에 와서는 학생들을 나누는 것을 보완하기 위해 새로운 제도를 만들고 있다. 하위 15%에 속한 학생이라도 2년간 유급하면서 좋은 성적을 내면 중고등학교를 갈 수 있는 시험기회를 준다. 학생들로 하여금 과목별, 수준별 수업을 듣게 한다. 잘하는 과목은 패스해주고 어려운 과목을 충분히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을 준 후 나중에 패스할 수 있는 제도도 실행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싱가포르 교육제도는 솎아내기를 유지하고 있다. 싱가포르 교육부는 선별적 교육제도의 기원을 국가건설 시기 싱가포르의 사회적 상황에 의거한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싱가포르에서 이러한 선별적 교육제도가 만들어지고 본격적으로 실행된 것은 1970년대 초반이다. 그때만 해도 학생들은 공부보다 집안생계를 도와야 했다. 가난한 싱가포르정부는 얼마 되지 않는 재원을 효율적으로 분배하는 방법을 고민했다. 집안사정 때문에 학교에 다니다가 중도에 그만두는 학생들을 정부가 제도적으로 걸러냄으로써 전략적으로 부족한 자원을 필요한 인재를 키우는데 투자하기로 했다. 리콴유 아들 리센룽 수상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민주주의와 획일적 평등주의 환상에 사로잡혀 엘리트교육을 포기하고 교육 평준화를 고집한다면, 사회의 하향평준화를 초래해 결국은 망국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싱가포르는 물까지 수입해야 하는 천연자원 부족국가이다. 늘 강대한 국가사이에 끼여 생존해야 하는 도시국가가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훌륭한 인재다. 선별적 교육제도가 인재풀을 만들어낸 요인 중 하나이다.

 

싱가포르에서는 국가에서 시행하는 시험성적에 의해 학생들을 솎어내기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학교교육 평가의 객관성이 확보되어 있다. 또한 풍요로운 장학금과 학자금제도가 존재하기 때문에 부모의 경제력에 따른 학습의 격차가 덜하다. 당연히 집이 가난하면 공부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싱가포르 국민이라면 먹고 사는 문제는 해결되기 때문에 가난해서 공부를 못할 정도는 아니다. 물론 교육수준이 높고 시간적, 금전적 여유가 있는 부모를 가졌다면 같은 공부를 하더라도 더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학생이나 부모가 가난하다면 그 부분은 복지정책에서 다루어야 하고, 학생의 보조금이 필요하다면 그 부분은 재정정책으로 다루면 되는 것이다. 교육은 학생의 학습능력을 어떻게 향상시킬 수 있는가에 대해 우선적으로 신경 써야 한다. 싱가포르 정부는 국가경제가 아무리 어렵고 정치상황이 아무리 혼란스러워도 인력개발문제는 정부의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다루어져야 한다고 천명하고, 우수한 인재를 갖추기 위해 노력해 왔다.

 

영국과 싱가포르 두 국가 모두에서 살았던 경험을 담은 이순미 작가의유리벽 안에서 행복한 나라라는 책에서 싱가포르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국민 대다수의 공익을 최고선으로 여기는 공공의 선과 유교적인 질서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나라로서 개인의 자유보다 공공의 자유를 우선하는 사회주의라는 점에서 영국과 비슷하지만, 싱가포르는 영국보다 더 구속이 크다‘ 하지만 리콴유는 이렇게 반문한다. ‘정말로 국민들이 원하고 있는 게 무엇일까요? 그들이 원하는 것은 주택과 의료, 일자리와 학교이다. 바로 국민들이 이념이 아니라 현실을 원한다는 사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