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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길

화학

화학: 김희준 서울대 화학과 교수

 

수학은 자연의 기본언어로 자연전체에 적용된다. 수학은 자연이라는 대상을 떠나서도 성립할 수 있는 추상적 논리체계라고 말할 수 있다. 물리학은 물질세계의 기본원리를 다룬다. 물질세계의 기본원리를 다루는 특성상 물리학은 깊이파고 드는 속성을 가진다. 화학자는 물질세계를 원자, 분자 차원에서의 변화라는 눈으로 바라본다. 똑같은 양성자 두 개와 전자 두 개를 놓고 수소원자 두 개가 공유결합을 통해 수소분자를 만드는 화학결합이라는 시각에서 파악한다. 이 변화의 기본원리는 물리적 원리다. 화학은 물리학과 수학을 기본언어로 사용한다. 생물학은 물리학, 화학과는 전혀 다른 원리로 생각되어 왔다. 생명현상은 물리적, 화학적 원리로 설명될 수 없으므로 생명력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이제 대사, 항상성 유지, 유전, 신경이나 두뇌작용까지 물리화학적 법칙으로 설명 가능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물리학, 화학이 생물학에 기반 언어를 제공한다.

 

노자가 말하는 천지 始原은 과학적으로 빅뱅이다. 우주의 기본 원리, 에 따라 쿼크가 만들어지고 또 쿼크로부터 양성자와 중성자 그리고 양성자와 중성자로부터 헬륨이 만들어지고, 그 다음 수소와 헬륨의 원자핵이 전자와 결합해서 우리 주위 물질을 구성할 원소들을 만드는 처음 30만년, 여기까지 화학의 기반이 되는 원자의 구성 성분과 원자의 구조에 관한 이야기다. 생명체를 만들려면 처음 3분간 만들어 놓은 수소, 헬륨을 융합시켜 탄소, 산소 같은 무거운 원소를 만들어야 하는데 급팽창하는 초기 우주에서 수소, 헬륨은 멀어지고 온도가 급강하했다. 미약한 중력의 힘으로 수소, 헬륨이 충돌하고 온도가 올라가면서 별과 은하가 탄생된 것이다. 별의 내부에서는 무거운 원소합성이 실현된다.

 

100억년 후 무거운 원소들은 빅뱅 우주의 가벼운 원소들과 함께 태양계의 재료가 되는 원소 주기율이라는 화학의 핵심 개념을 제공한다. 이렇게 우주의 기. . 起承轉을 통해 46억 년 전에 지구를 만들어낸 생명창조로 이어진다. 빅뱅에서 만들어진 수소와 별 내부에서 만들어진 탄소, 질소, 산소가 화학결합을 통해 생명의 알파벳 字母가 만들어지고, 유전정보를 바탕으로 생명체 기본 단위인 세포가 탄생한 것이 40억 년 전이다. 세포는 거대한 화학구조다. 단세포에서 생물학적 진화는 화학변화를 통해 일어난 것이다. 137억년 우주역사의 2/3는 원소를 만드는 생명의 준비기간 이었고, 1/3은 화학원리에 의해 생명이 탄생한 기간이다.

 

인상파 그림을 너무 가까이서 보면 붓 자국만 보이고 전체적 구도와 색상을 제대로 감상하기 어렵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그림의 세세한 면을 놓이기 쉽다. 적당한 거리 유지가 필요하다. “인생은 정말이지 현자들 말처럼 그렇게 어두운 꿈은 아니랍니다. 가끔 아침에 조금 내리는 비는 화창한 날을 예고하지요. 때로는 우울한 먹구름이 끼지만 머지않아 지나가 버립니다. 소나기가 내려서 장마를 피운다면 아, 소나기 내리는 것을 왜 슬퍼하죠?” (샬롯 브론테 인생’)

 

우주적 드라마로 원소가 만들어지고 그들이 피운 장미와 장미에 맺힌 빗방울을 만들어내는 원리를 이해하고 나면, 소나기가 지나간 후 어느 담장 너무 보이는 장미가 새롭게 보인다. 어른도 자연을 깊이 이해한다면 아이같이 순수한 심성을 가질 수 있다. 와 과학은 인간의 본성에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 학문의 길은 하나로 통한다. 생물이나 무생물이나 모두 원자, 분자의 세계다. 원자들이 분자를 만든다. 분자의 집단인 인간이 필요로 하는 의식주 및 우리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필요한 다양한 물질들이 분자로 구성되어 있는 한, 화학의 역할과 중요성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화학은 본질적으로 변화를 추구한다. 화학적 변화가 생명의 밑바탕에 자리 잡고 있다.

 

원자들이 여러 개 뭉쳐 분자를 이루면 크기가 나노미터 단위가 된다. 물리, 전자, 재료 등 여러 분야에서 각광 받고 있는 나노 과학에서 큰 힘을 발휘하며 중심적 역할을 하는 분야가 화학이다. 나노(nm;10억분의 1미터) 과학은 실리콘칩을 대신할 나노 소재뿐 아니라 동영상을 구현하는 발광디스플레이 재료를 개발할 가능성이 많은 방대한 시장을 가지고 있다. 또 나노과학은 생명, 과학, 의학과 접목되어 세포 내의 다른 화합물이나 부위들을 볼 수 있게 한다. 세포의 분열, 분화, 노화 등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화학물질들의 위치, 변화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면 질병예방과 치료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세포는 원자, 분자에 비해 얼마나 클까? 사람의 몸은 약 100조개의 세포로 이루어졌고 세포는 평균적으로 또 약 100조개의 원자로 이루어졌다. 사람의 크기는 1미터 단위이고 원자의 크기는 1옹스트롬 단위이다. 1미터에는 1옹스트롬이 100억 개 들어있다. 세포크기는 1마이크로미터 정도이다. 사람이 1킬로미터라면 세포는 콩알만 하고 세포를 1킬로미터라면 원자는 콩알만큼 확대된다. 원자를 1킬로미터로 확대하면 원자핵은 콩알만 하고, 원자핵에 양성자와 중성자가 있어 양성자 수에 따라 수소가 되고 탄소가 되고 산소가 되기도 한다. 세포 하나에 들어있는 분자종류만 해도 DNA, RNA, 각종 단백질, 아미노산 당류, 지방질 기타 여러 가지 대사의 산물을 포함하여 수천가지가 넘는다. 대부분 분자 크기가 나노미터 단위다. DNA 이중 나선폭도 2나노미터이고 대부분이 단백질 단위도 나노미터 단위다. 이처럼 화학은 생명현상의 언어다.

 

언어에는 음소, 음절, 단어, 문자, 문법, 수사 등이 있다면 화학언어에는 양성자, 중성자, 전자, 원자, 화합물, 고분자, 화학결합 원리, 분자 간 상호작용에 의해 나타나는 다양한 특성의 출현 등 인간의 언어와 대응하는 흥미로운 요소들이 있다. 모든 생명현상을 배우는 화학원리가 있다. 인간의 몸은 1010제곱에 걸쳐 전개 되는 세계를 화학언어로 설명되는 원자, 분자의 세계다. 우리 몸에서 출발하여 거시세계를 보면 우리 동네, 우리나라, 지구를 거쳐 태양계, 태양주위의 별들을 거쳐 약 100억 개의 별이 있는 은하가 있다. 우주에는 그런 은하가 100억개나 있다. 현대과학은 우주기원과 원소생성과정에 대한 단서까지 알게 되었다. 자연을 통합적으로 바라보고자 한다면 화학을 공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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