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외교학 (강정인,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플라톤은 정의로운 인간은 정의로운 국가에서 나올 수 있다고 가정하고 정의로운 국가가 어떤국가인지 주로 논의한다. 플라톤의 논리 전개방식은 정치철학의 고전적인 가정, 개인의 삶은 그가 속한 공동체의 삶과 분리할 수 없으며, 개인의 선한 삶의 탐구는 선한 공동체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가 친구에게 쓴 서한에서 ‘저녁에 집에 들어와 서재에 들어간다. 들어가기 전에 하루 종일 입었던 진흙과 먼지 묻은 옷을 벗고 궁정에서 입는 정장으로 갈아입는다. 궁정에 들어가면 옛 선조들이 나를 반긴다. 나는 그들과 얘기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으며 그들에게 묻는다. 그러면 그들은 정중한 답변을 한다. ’
오늘날은 모든 시민이 정치에 참여하는 민주주의 시대다. 한 나라의 정치지도자의 수준에 대해서는 그 나라의 시민이 책임져야 한다. 정치학적 지식은 인간관계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갈등과 분쟁을 조정하고 해결할 때 요구되는 리더쉽이 필요한 모든 분야에 활용된다. 자연과학의 연구대상인 자연은 비교적 영속적이고 항구적인 법칙에 지배되는데 반해, 정치학 연구대상인 정치세계는 변화무쌍하고 시대와 장소에 따라 상이한 법칙에 규율되고 있다.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가 중세봉건제 유교적 군주정, 이슬람왕조, 일본막부, 인디언 부족사회는 각기 다른 정치원리에 의해 운영된다. 오늘날 정치란 대체로 변화와 상대적 희소성의 상황에서 집단, 개인, 사회가 경쟁적으로 이득을 추구하는데 집중된 활동으로서 그 이득 추구가 권력을 매개로 하여 해결되는 활동으로 정의된다. 정치개념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변화를 겪어 왔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정치학은 정치를 어떻게 연구할 것인가라는 기본적 물음에 관삼을 갖는 정치방법론이 있고, 정치에 대한 체계적 사실과 성찰의 성과를 동서양의 고전을 중심으로 연구하는 정치사상 분야가 있다. 국가와 국가사이에서 일어나는 정치 및 이와 관련된 분야를 연구하는 국제정치가 있고, 국가나 지역에서 일어나는 정치현상을 상호비교하면서 연구하는 비교정치분야가 있다.
현대 한국 정치의 주요제도와 이념이 사양의 제도와 이념에 의해 주도 되었지만 그 한국정치제도와 이념이 남의 것이라 말할 수 없고, 그 바탕을 이루고 있는 서양 정치사상 역시 우리 사상이다. 한국학계에 서양정치사상에 대한 탁월한 이론가를 갈구하고 있는바 서양정치사상의 한국화를 통해 시대적 소명에 부응해야 한다. 주자가 불교와 도교가 대결하면서 양자의 장점을 종합하여 신유학을 만들어 냈듯이, 오늘날 전통정치사상 역시 현대 사양정치사상과의 창조적 대결 과정을 통해 현대화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한국정치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미래에 대한 대담하고 원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통일을 어떻게 이루어야 할까? 한국에 적합한 민주주의는 어떤 모습을 취해야 하는가? 지역주의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등등..
사회학( 임현진, 서울대 기초교육원장 사회학과 교수 )
사회학을 배우면 마치 하늘에서 모든 것을 내려다보면서 먹이를 채가는 독수리눈을 가질 수 있다. 사회학은 미시와 거시를 연결하고 시공을 오가면서 과거를 찾아갈 수 있고, 미래를 밝힐 수도 있는 사회학적 상상력이다. 사회학은 사색을 많이 필요로 하는 학문이다. 사회학은 어느 방향의 일반화이든 경험적 사실을 바탕으로 지식체계를 세우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구체具體에서 추상을 통해 구체로 다시 돌아가는 논리다. 문학이 인간의 존재에 대한 상상의 탐구라면, 사실 기록이 교차하는 곳에 사회학이 위치한다. 사회학은 인문과 연대가 동시적으로 나열될 뿐 아니라 통시적으로 성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학은 문학과 역사 그리고 거기에 무엇을 더한 것이다. 그 무엇은 휴머니즘일 수도 있고 컴퓨터일 수도 있다. 사회과학중에 사회학은 정치학, 경제학 등 다른 분과보다 인간사회를 탐구할 수 있는 종합적 시야와 안목을 지닌다. 사회학은 인간사회를 미분하고 적분하는데 필요한 다양한 질적 양적 방법론을 지니고 있다. 사회학은 인간사회의 구조와 변동을 다루는 학문이다, 인간은 사회의 주인이면서 동시에 사회로부터 구속 받는다. 인간과 사회의 관계는 지위와 역할에 의해 맺어지면서 사회화 과정을 통해 매개되고, 그리고 문화라는 삶의 양식에 영향을 받는다. 사회구조는 생태적, 집단적, 지역적, 계층적, 제도적 차원으로 나눌 수 있다. 인간사회 변화에 관련된 일탈 행동이나 사회운동도 사회학의 주된 관심사 중 하나이다.
우리 자신이 사회학이란 지식체계를 만들기 전에 서양에서 탄생한 사회학이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사회학은 외래이론의 모방에서 비판적 재구성을 거쳐 고유이론 형성이란 흐름에서 보면 한국학은 두 번째 단계인 비판적 재구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회학은 한편으로는 체제 유지에 대해 다른 한편으로는 체제 변화에 대한 관심이 동시에 나타난다. 사회학자는 자기가 연구하고자 하는 주제를 선택하고 결과를 발표하는 과정에서 항상 이데올로기와 마주하게 된다. 현실 사회조건에 따라 이념과 가치의 의미가 상대적이라는 점에서 이데올로기 선택은 매우 지난한 문제다. 한국의 경우 진보와 보수는 특이한 상황이다. 남한사회 진보가 북한에서는 보수다. 체제를 지키려는 것이 보수, 개혁하려는 것이 진보라며 꼴통은 자기관념에 빠져있다. 사회학은 이해보다 오해가 많은 학문이다.
오늘날 사회과학은 칸막이가 쳐져 정치학자, 경제학자, 사회학자가 서로 연구하는 것에 대해 알지 못한다. 일반 사회학 관점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변수를 고려함으로써 각 학문의 장벽을 넘어 종합적 연구영역을 제시하는 데 있다. 한국사회의 주요쟁점이라 할 수 있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동물복제와 생명윤리, 사회운동과 진보정치, 경제성장과 소득분배, 생태환경과 환경보존 등이 최근 사회학에서 다루는 通학문적 주제들이다. 사회학은 사색을 많이 필요로 하는 학문이다. 쓰기보다 읽기가 중요하고, 읽기보다 사색이 중요하다. 특히 현장 경험이 중요하다.
어떤 형태로든 사회개입을 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사회학은 어느 방향의 일반화이든 경험적 사실을 바탕으로 지식체계를 세우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사회학은 사랑의 학문이다. 인간사회에 편재하는 대립과 반목을 조화와 화합으로 끌어갈 수 있는 지적인 힘을 사회학은 지니고 있다. 한국사회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도 개인이나 집단들 사이에 나타나는 여러 유형의 차이를 이해함으로써 불신과 갈등을 신뢰와 소통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사회학이다.
법학( 양건 한양대 법대 교수)
우리가 통상 법학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법해석학을 가리킨다. 법 해석학은 실정법을 해석하는 학문, 곧 실정법의 해석학이다. 법 해석학이 대상으로 하는 것은 실정법 규정, 즉 정치권력에 의한 강제력 발동에 의해 그 효력이 보장된 법규범이다. 법규범은 언어표현, 즉 문장 형태로 되어 있는 점에서 법규범 명제라고 부를 수 있다. 법규범 명제는 사실이 아니라 당위의 명제라는 점에서 일종의 교조敎條 즉 도그마dogma라 할 수 있다. 법해석학은 교조적 성격을 갖는 법규범 명제를 대상으로 그 의미 내용을 명확히 설명하고, 법규범 명제 사이의 상호관계를 논리적으로 체계화하며 불명확하게 흠결이 있는 부분에 관하여 해결방안을 제시함을 그 목적으로 한다.
법을 해석한다는 것은, 즉 법조문의 의미를 명확히 한다는 것은 선택과정을 포함한다. 법해석에는 거의 언제나 둘 이상의 여러 해석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 선택을 좌우하는 것이 가치판단이다. 오랫동안 과거의 법해석학은 법해석이 순수한 형식논리만으로 완결될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법해석학은 개념법학이라 부른다. 19세기 이러한 개념법학적 태도는 성문법규의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해석을 통하여 권력행사의 법적준칙을 제시함으로써 권력행사의 자의적 성격을 통제한다는 시대적 사명이 있었다. 개념법학은 법적안전성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것인데, 그 사회적 기반이 흔들리면서 개념법학도 함께 흔들려 사회통합에 기여하는데 긍정적 기능을 수행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각 당사자의 구체적인 이익성격에 대한 인식과 이에 대한 가치판단이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고, 법적판단과 정책적 판단구별이 어렵게 되어 버린다. 이런 움직임을 사회적 법학이라 부르기도 한다. 법에 관한 현상을 객관적인 사회현상으로 파악하여 사회 속에서 법이 어떻게 형성되고, 법이 사회에 대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경험적으로 인식하고 체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이 법사회학이다.
법은 세 가지 측면이 있다. 첫째 규범적 측면, 둘째 이념적 측면, 셋째 현실적 측면이다. 이 구분에 따라 법학 범주를 크게 셋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법규범의 의미를 해석하는 것이 법해석학, 법이념을 탐구하는 것이 법철학, 법 현실을 연구하는 것이 법사회학이다. 실정법에 한정하지 않고 법 전반에 관한 법 일반이론도 법철학영역이다.
법 교육은 법적사고를 길러주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한다. 법적사고의 핵심은 논리적 사고다. 법적문제에 대한 쟁점을 추출해내고, 각각의 쟁점에 대해 자기주장을 논리적으로 명확하고 설득력 있게 전개하는 능력이다. 미국연방대법원 대법관이던 전설적 법률가 홈스 Oliver Wendell Holmes Jr는 이렇게 말했다. ‘법 생명은 논리가 아니라 경험이다.’ 역시 연방대법관 브랜다이스는 ‘경제학과 사회학을 공부하지 않은 법률가는 공공의 적이 되기 쉽다’ 우리나라 법률가 가운데 인문학적, 사회과학적 소양을 쌓은 이가 얼마나 될까? 아울러 좋은 법률가가 되기 위한 조건이 ‘정의감’이다. 법의 궁극적 이념이 정의正義이기 때문이다. 법학을 빵을 위한 학문이고도 한다. 법학은 진리를 탐구한다는 뜻보다 빵을 얻기 위한 학문이라는 뜻이다.
한국 법학의 뿌리는 일제강점기의 일본 법학이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후 서양문물을 수입하면서 독일법을 도입했다. 당시 독일법은 개념법학이라 할 수 있다. 당시 개념법학은 권력행사를 정당화하기 위한 근거제시의 역할에 중점을 두었다. 관료법학이란 법을 관료지배도구로 파악하고 그 지배 정당성에 대한 근거로 법해석기술을 제공하는 법학을 말한다. 한국에서 식민지법 형태로 왜곡된 법 체제는 미군정과 독재정권을 가치면서 법학과 법률가 풍토 역시 그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오늘날 세상이 엄청난 속도로 변하면서 법에 대한 수요도 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법의 영역도 지속적으로 확대 심화되고 있다. 법학의 세분화, 전문화 속도가 점차 빨라지고 있다. 사회관계속에서 다양하게 대립하는 이익들을 조정하는 장치가 법이라는 의미에서 법을 사회공학이라고 한다. 오랫동안 낡은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한국 법학과 법률가도 새로운 모습으로 변해야 한다. 부당한 특권에 기대지 않는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정신을 가지고 법학을 공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