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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의 기술( 딕 티비츠:Dick Tibbits, 한

용서는....

자기 마음속에 품었던 복수의 시나리오를 제대로 실천에 옮기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다른 많은 이들처럼 당신도 복수의 계획을 짜느라 많은 에너지를 쓰고 시간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어떻든 당신은 결국 삶에서 움츠러 들기 시작한다. 압도적인 무기력감이 당신의 마음을 휘쓸고 지나간다. 그리고 한때 즐겁게 어울렸던 사람들, 즐겼던 행동들을 멀리하기 시작한다. 이런 식으로 당신은 움츠려든다. 왜냐하면 또다시 같은 방식으로 상처받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움츠려들면 들수록 당신은 더욱 고립되고 외로움을 느끼며 위축된다.

 

당신에게 아픔을 준 사람을 괴롭게 만들어 잠깐이나마 즐거움을 느낄수 있겠지만, 마침내 씁쓸함만 남기고 당신의 영혼에 깊은 상처를 남길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바로 용서다. 비난 받아 마땅한 사람에게 왜 당신이 면죄부를 주어야 하나? 그것은 공평하지 않다. 용서란 우리가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무언가를 받아들이도록 촉구하는 행위다. 인생은 공평한 것이 아니라는 바로 그 사실 말이다. 용서는 삶이 공평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할 뿐아니라, 그것을 세상에 공표하는 행위다. 당신은 삶이 아직도 공평하다고 믿는가? 그렇게 믿고 싶은 것 자체가 잘못 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되도록이면 일을 공정하게 처리하려고 정의를 추구하는 것은, 전혀 잘못된 일이 아니다. 하지만 결론을 말하자면, 당신도 나도 타인의 행동을 통제할 수 없다. 살면서 겪는 모든 불행을 예측하고 예방할 수는 없다. 그 사실은 부정할 여지가 없으므로, 우리가 모든 상황에서 삶을 공평하게 만든다는 것은 분명 불가능하다. 이것을 받아들인다면 당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은 용서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나는 10년 남짓 깊이 신뢰했던 단체에서 열심히 일했다. 그런데 회사에 침체기가 닫치자 외부회사가 개입하여 구조조정이라는 거창한 명분을 내세워 비용감축 정책을 실행했다. 그 회사의 업종은 서비스였는데 서비스 산업에서 가장 큰 비용을 차지하는 것은 인건비다. 그리하여 회사 임원진은 직원들 이름에 동그라미를 치며 불명예스런 해고장을 통지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해고장은 회사와의 고용관계가 더는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나 역시 해고장을 받는 사람이 되었다. 그때 나는 농락당한 기분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지. ' 나는 업무능력이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내 상사들은 나를 훌륭한 직원이라고 불렀고 동료들은 나를 모두 좋아했다. 내가 업무보고를 한 사람들은 사적으로 친구가 되어 친목모임을 갖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날 출근해 보니 통지서 하나가 날아왔어는 '오늘 자네가 일하는 마지막 날이네. 짐을 싸서 나가게' 하고 무심히 통고하는게 아닌가. 10년 동안 그곳에 몸담은 결과가 그것이었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실직에 따른 고통을 여러 단계로 겪었다. 그 첫 번째는 바로 충격이었다. 나를 내치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그 다음 부정의 순간이었다. '나는 아닌데, 나 보다 먼저 잘려나갈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내가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데. 난 일을 잘했다고. 사람들도 날 좋아했어.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 그러나 다음 날이면 일터로 나갈 수 없다는 현실이 버티고 있었다.

 

현실을 받아들일 즈음, 나는 화가 나고 점점 더 상처 받았다. 하지만 모든 감정들을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어떻게 하면 직장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지만 그런 방법은 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생각했다. 뭔가 해야만 해! 이건 공평하지 않아! 어쩌면 위원회 있는 사람과 연락이 닿을지 몰라. 그 사람 집으로 찾아가서 이런 결정이 얼마나 부당한지 설명해야 해. 직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공정함을 찾기 위해, 상황을 공평하게 하기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나는 망상했다. 내가 망상한 것 중에 실행에 옮긴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그 생각들을 떨치지 못했다. 어쨌든 나는 직장을 가져야 했고 그래서 다른 회사에 취직했다. 그런데 얼마되지 않아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한가지는 내가 일에 너무 많은 것을 쏟아 붓느라 힘든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다. '이제 다시는 어떤 회사에도 내 전부를 내가 가진 것보다 넘치는 노력을 바치지 않을거야'. 이런 생각이 들었다. ' 왜 나여야 해? 자기들이 원하기만 하면, 내일이라도 당장 나를 해고할 수 있는 회사에 내 땀과 피를 쏟지 않을거야' 그리고 내가 예전처럼 일에 에너지와 열정을 갖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모든 것이 소진되어 지치고 녹초가 된 기분이었다. 일을 하기는해도 그 일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나는 크게 낙담한 상태였고, 어떤 것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외적으로는 아무 일도 없는 척했지만, 몸 컨디선은 엉망이었다.

 

나는 내 생활을 곰곰히 되돌아 보았고, 옛 직장에서 겪은 일에 큰 분노를 품고 있음을 깨달았다. 내가 겪은 부당한 일을 되새김질하고, 나에게 상처를 준 그 사람에게 앙갚음을 할 생각을 하느라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는 것은 아주 당연하다고 여겨왔다. 하지만 이런 생각 때문에 내가 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음을 마침내 깨달았다. 마음속으로는 그 사람들에게 대가를 치르게 해 삶을 다시 공평하게  만들고 싶었지만, 해고 당하고 2년이 흐른 뒤 그 대가를 치른 것은 정작 나 자신이었던 것이었다. 사는 것에 대한 의미를 찾지 못하고, 삶이 도대체 어떤 의미를, 목적을 지녔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잠에서 깨어나 일하고, 먹고, 자고 다음날 정확히 똑같은 방식으로 일을 되풀이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이런 생활이 앞으로 남은 삶 동안 날마다 반복되겠지?  심리적으로 삶에서 안정을 찾을 수 없었고. 점점 우울증에 빠지고 있었다.

 

나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타인이 내게 한 행동에 대응하느라 어떤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지 깨닫자 내가 겪은 것들을 이해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관련된 책과 글을 읽기 시작했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런 분노를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불공평한 상황을 해소하는 방법은 '용서'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저 나에게 일어난 속상한 일들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내 무능함을 마음속으로 되뇌고 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더 나은 상황으로 바꾸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스스로를 고통받게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용서하기 위한 여러 가지 절차와 방법을 배웠다. 나는 삶의 열정을 되찾았고 집에서 침울하게 있는 시간도 훨씬 줄었다. 그리고 분노에서 벗어나는 법을 배우면서 삶을 다시 헤쳐나갈 힘을 얻었고 일에서도 활기를 찾았다. 분노를 극복하고 자신을 옭아맨 불쾌한 사건을 넘어서 삶을 되돌릴 건전한 해결책을 찾는 방법 을 찾은 것이다."

 

 용서는 당신을 과거로부터 풀어주며, 전에는 상상치 못했던 가능성을 지닌 밝은 세상으로 문을 열어줄 수 있다. 용서는 그저 학습해야할 어떤 개념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데 쓰는 실질적인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