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학교를 다닌 이후부터 아들에 대해 칭찬을 해 본적이 거의 없었다. 항상 부족해 보였고 나이 삼십을 넘어도 아쉬웠고 불안해 보였다. 그러던 아들이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 살아가는 동안 어느새 이제 듬직한 남편이 되고, 아버지가 되고, 어른이 되어 있었다. 사진은 손자가 태어났을 때 손자가 엄마 손가락을 쥐는 모습이다. 우리 가족 모두가 행복한 순간이었고 나에게는 감동적이었다. 모든 게 미숙해 보이던 아들이 비로소 달라 보였던 순간이었다.
남녀가 만나 결혼한다는 것은 서로가 각자의 삶을 잘 살기 위한 생존의 수단이다. 한 세월, 한 세상 어떤 일이 있어도 함께 할 인생동반자를 구하는 것이다. 누가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 목을 매고 살 것도 아니다. 서로 한 몸이 되어 일심동체로 살아가자는 것은 함깨 죽자는 것이다. 각자가 하나의 개체로 자신의 삶을 잘 살아가도록 서로 도와주어야 한다. 서로를 존경해주고 인정해주어야 한다. 때로는 서로에게 보호자도 되어주기도 하고, 서로의 성장을 위해서 도움을 주어야 한다. 서로에게 선생도 되기도 하고 학생도 되기도 하고, 함께 공부하는 도반이 되어야한다.
인간에게 가장 좋은 수련의 장소이고 깨달음의 공간이 가정이다. 평생동안 心身을 수련하며 살아가는 스님들도 이 과정이 힘들어 결혼을 하지 않으며, 인연을 끊는다. 남자와 여자가 함께 사는 것을 배우고, 어른이 되는 것을 배우고, 아내가 되고 남편이 되는 것을 배우고, 부모가 되는 것을 배운다. 여기서 사랑을 배우고, 타인과 함께 사는 것을 배우고, 인내를 배우고, 희생을 배우고, 도덕을 배우고,.,인생이 무엇이고 세상이 어떤지 어렴풋하게 보게 된다. 서로에게 가장 많은 가르침을 주는 사람도 배우자이고, 내 삶에 가장 많이 영향을 주는 자도 배우자이고, 내 삶을 파멸의 길로 이끄는 자 또한 배우자다.
남녀가 만나 서로 사랑을 하고, 하늘의 별도 따다 주고, 모든 것을 다 주고 싶은 마음으로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다 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결혼을 한다. 한 마음 한 뜻으로 일심동체가 되어 평생 잘 살아보자며 서로에게 너무 큰 기대로 서로에게 사랑을 기대하며 결혼을 한다. 하지만 결국 남자와 여자라는 사로 다른 性的 정체성과 서로 요구하는 것이 다르고, 30년 동안 형성되어 온 정체성이 다르고, 서로의 가치관이 다르고, 한 지붕 한 이불아래에서 살아도 서로 생각이 다르고, 서로 다른 세상에서 같이 살지만, 함께 살지 않는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그렇게 서로에게 실망하고, 미워하고 때로는 분노하며 원수같이 죽일 듯이 치고받고 싸우며, 세상이 흘러가는데 대로 사회의 관습 따라 남 따라 관성으로 살아간다. 그러다 갈라서서 돌아서서 신세를 한탄하며 후회하기도 하지만, 세월이 한 참 흐른 후에야 비로소 다시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게 된다. 그렇게 되기까지 수많은 시련을 거쳐 그때 깨닫게 된다. 이것이 남녀가 함께 사는 일반적인 삶의 과정이다. 내가 존경하는 박경리 작가의 ‘토지’에서 이러한 것을 비유적으로 잘 표현한 부분이 있어 소개한다. (내가 이해한 대로 조금 보완)
“... 이 벌판을 지나 남쪽으로 가면 江이 하나 있소. 그 강은 외롭게 건너는 이승과 저승을 나누는 황천길의 삼도천(三途川)과 달라서 남녀 한쌍이 건너야 하는 江이요. 건너기만 하면 그 남녀는 이별이 없어진다고 해요. 하지만 아무도 그 강을 건너는 일이 없었소. 어째서 못 건너갔을까? 이 동네 이름이 귀마동歸馬洞이요. 말馬이 돌아온다는 뜻이지요. 강을 못 건너고 말이 다시 돌아온다는 말이지요. 이 강을 건너려는 남녀는 하나 같이 예쁘고 젊고 건강하지요. 여인의 눈은 샛별 같이 맑게 빛나고 피부는 윤이 나고 아름다우며, 사내는 참나무같이 단단하고 씩씩하고 기상氣像이 넘치지요.
사내와 여인이 오면 나는 말 두필을 내어주지요. 그네들이 나란히 떠날 때 이르는 것은 ‘말고삐를 놓으면 죽는다’는 말을 세 번 되풀이 하지요. 해가 떨어질 무렵 아름다운 석양 속을 그들은 강을 향해 떠나는 게요. 명경明鏡 같은 달이 떠오르고, 말을 타고 나란히 가는 그들 모습을 비추면 정말 아름답지요. 나는 바라보면서 빌어요. ‘제발 돌아오지 말라’고. 그러나 그들은 어김없이 돌아왔소. 그런데 말 한 필은 서쪽에서 돌아오고, 다른 한 필은 동쪽에서 돌아오는 거요. 실은 그들이 돌아오는 게 아니라 말에 실려 말이 돌아오는 거지요.
그들도 옛날의 그들이 아니지요. 머리칼은 햇빛에 하얗게 타버렸고, 다 타버려서 머리카락이 사라져버렸기도 하고, 얼굴은 가뭄에 갈라진 논바닥같이 굵은 주름, 거미줄 같은 잔주름, 이빨은 빠져서 양 볼은 꺼지고.. 파파할멈 할아범 모습들이오. 그보다 슬픈 것은 사내와 여인이 서로 알아보지 못하며 기억조차 하지 못하기도 해요.. 그들은 타인이 되어 먹구름 몰려오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제가끔 자기 길을 탄식하지요. 어째서 백발이 되도록 강을 건너지 못하고 돌아왔을까요. 서로 헤어져 동쪽과 서쪽에서 돌아왔을까요.
끝도 없는 벌판을 가다보면 지치고 정신은 멀어지고, 그리고 피곤한 몸은 심한 졸음이 오는 거요. 그들을 태운 말이 혼자 저절로 가는 게지. 그네들은 말고삐를 잡은 채 졸고 있고 말이 혼자 저절로 가는 게지. 나란히 가던 말이 東과 西로 갈라지고 차츰차츰 멀어지면서 그리고 되돌아오는 것을 모르거든. 또 가끔은 사내와 여인 중 한 명만 돌아오기도 하지. 여인이나 사내 어느 한 쪽이 죽은 거지. 말고삐를 놓아 떨어져 죽어버렸거든. 서로가 모르게 각각 東으로 西로 가다가 한쪽은 죽고 한 쪽은 뒤늦게 깨달고는 찾아 헤매겠지. 아마 아직도 벌판을 헤매며 방황하는 이들도 있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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