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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유시민)

남자의 마흔살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의 삶을 자기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는 것이다.  어른이 되면 무슨 일을 하면서 살까? 인생은 의전의 연속이다. 누구나 의전을 받고 의전을 베푼다. 백일과 돌잔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입학식과 졸업식도 기본의전이다. 학교동창, 고향친구, 직장동료들끼리 서로의 결혼식 하객이 된다. 의전을 게을리하면 사회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다.  더 시간이 흐르면 선배들이 세상을 떠나기 시작하고 그 다음은 동년배 친구의 사망 소식이 들릴 것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라는 광고 카피가 유행한 적이 있다. 죽음은 피할 수도 즐길 수도 없다. 오래 산 사람에게도 죽음은 겁이 나는 일이다.  인생을 스스로 설계하고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살아가려면 훌륭한 삶, 품격있는 인생이 어떤 것인지 나름의 견해를 세워야 한다.

 

삶과 함께 죽음도 알아야 한다.  죽음을 모르거나 오해하면 삶을 망칠 수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본능적으로 공포감 때문이다. 나는 요즈음 죽음에 대해서 예전보다 자주 생각한다. 열정적으로 일하고, 즐겁게 놀고, 깊게 사랑하고, 뜨겁게 연대하는 모든 순간마다 조금씩 죽는다. 내일 죽는 다면 오늘 무엇을 할까?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 남은 삶이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죽음은 삶의 완성이다. 소설도, 영화도, 연극도 모두 마지막이 있다. 마지막 장면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스토리가 크게 달라진다. 어떤 죽음을 준비하느냐에 따라 삶의 내용과 의미, 품격이 달라진다.

 

마흔살이 되든 새해 첫날 아침이었다.  질풍노도 같았던 내 청춘의 열정이 바닥이 드러났다.  '사람은 누구나 늙고 병들고 죽는다' 일반 명제에 불과했던 이 말이 그날 아침 문득 존재의 자각으로 바뀌었다. 젊은 사람들이 공감하기는 어렵지만, 나이가 들면 젊은 그들에게도 인생의 마지막 페이지를 예감하는 각성의 시간이 반드시 찾아들 것이다.  그동안 나는 대학을 갔고 서클활동과 학생운동에 몰두했다.  국회위원 보좌관과 지구당 교육부장을 했다. 결혼을 했고 딸을 낳고 책도 몇권 썼다. 독일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다시 25년이흐르면 예순다섯 살이 되면 국민연금도 받을 것이다.  특별 보호와 배려를 받아야하는 고령자임을 공인받을 것이다. 아무리 건강해도 노화를 막지 못한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뇌조직의 쇠락이다.  뇌의 정보 처리 능력이 떨어지면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받아들이는데 둔감해진다. 익숙한 것에 집착한다. 고집을 부리거나 화를 잘 내게 된다. 환경이 빠르게 변하고 새로운 문제가 등장하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기가 어려워진다.

 

나이가 많이 들어서도 사회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는 사람이 젊은 시절의 정체성과 이미지를 그대로 유지하기 매우 어렵다.  진보든 보수든 사상적 성향이 어떠하든 사람은 누구나 생물학적 성장과 퇴행을 겪는다. 손익계산을 내포한 의도적 선택이 있고 생각이 달라져 말과 행동이 달라진다. '변절'이 아니고 '변화'라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면 나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 나이가 너무 많이 들면 남의 삶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일과 자리는 피하는게 현명하다.  좋은 일을 하자고 나섰다가 외려 큰 민폐를 끼칠지 모른다. 잘못하면 나라가 흔들리고 국민의 생활이 꼬이고 노동자들이 거리에 나앉고 사람이 죽고 강과 바다의 뭇 생명의 숨이 막히게 된다.  나이가 들어도 철학적, 문학적 정체성을 유자 발전시킨 예외적 인물들은 공통점이 있다.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젊은 사람들과 수평적으로 대화한다. 개방적으로 생각하며 유연하게 행동한다. 나도 그렇게 품위있게 나이를 먹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나이가 많이 들면 한 걸음뒤로 물러나 있으면서 후배들이 지혜를 구하러 오면  조심스레 조언을 하는 선에 머무르는 게 바람직할 것 같다. 조언을 할 때도 내가 하는 생각이 꼭 옳은 것은 아닐지 모른다는 단서를 붙이면 더 좋을 것이다.

 

마흔세살 새 아침에 찾아든 자각 때문에 독일 유학을 중단했다.  아직 어디에도 삶의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했기 때문에 크게 어려운 결정은 아니었다. 공부보다 넓은 세상을 보고 싶어서 서른 살에 떠난 유학이었다. 석사학위를 받고나자 금방 마흔이 되어버렸다. 나름 의미는 있겠다 싶었지만 가슴이 두근거리지는 않았다. 설램이 없으니 열정이 솟을 리 없었다.  설렘 없는 일에 인생을 쓰고 싶지 않았다.  나도 남들처럼 훌륭한 인생을 살고 싶었다. 어떻게 사는 인생이 훌륭할까?  하고 싶어서 마음 설레는 일을 하자.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었다. 글쓰기는 유익한 지식, 감동을 주는 정보를 남들과 나누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