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차나 한잔 들고가게!

이제 인생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왜 공부해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나는 누구인가? ... 이러한 수많은 물음을 쫓아가다 보면 그 물음 각각이

별개가 아니라 모두 서로 연결되어 있다. 나는 기업에서 한창 전성기를 누려야 할 시기, 이른 나이에 대기업에서 퇴출

되면서 갑작스럽게 변해버린 나의 사회적 지위에 힘들어 했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별일 아닐 수도 있지만그때는 그것이 그렇게 큰 시련으로 느껴졌다.  ‘나는 누구

인가?’물었고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물었다? 그 화두를 지금까지 붙들고 있다. 불교에서 공부의 시작은 화두

한다. 화두란 내가 모르는 것에 대한 물음이라고 나는 이해한다. 이러한 물음들을 내가 어떤 행동을 하든 항상 생각

했다. 러한 물음들은 인간이 무엇이 동물과 다른가? 내 삶의 의미가 무엇인가? 생명은 어디에서 왔는가?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 이러 물음들을 다시 만들어낸다.

 

이러한 물음들의 답을 찾기 위해 인문, 사회, 자연과학에 관심을 가졌다. 그렇게 따라 가다보니 이제 종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불교 공부를 하면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나는 성불하려고 하는 것도 아니요죽어서 극락정토에

가려는 것도 아니고, 복을 받기 위해서도 아니다. 오로지 내가 갖는 물음, 화두를 따라 갈 뿐이다.

 

지금 내가 하는 행동, 말들은 무엇을 목적으로 한다. 무엇을 행할 때 불교에서 이렇게 이야기 한다.  ‘손으로 달을

가리키면 손을 보지 말고 손이 가리키는 것이 무엇인지 보라고 한다. 우리가 보아야 할 곳은 손이 가리키는 것이지,

손이 아니다. 손은 방편으로 사용될 뿐이다. 손 또한 달을 보기 위한 방편, 수단이기 이전에 어떤 것의 목적이 된다.

우리의 일상은 수많은 목적과 목적이 연결되어 있고, 우리가 하는 행위 또한 상위목적과 하위목적이 연결되어 있다.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이 되는 방편이 필요하다. 그때 그 방편을 갖는 것이 목적이 되어 그 방편을 갖기

위해 또 어떤 수단을 필요로 한다.

 

이것을 아리스토텔레스는 목적론적 세계관으로 설명하고 있다.

인간의 모든 행위는 어떤 목적을 추구하는 행위다이러한 목적들은 또 상호연결되어 있다우리가 어떤 행위를

통해 추구하는 몇몇 목적들은 그 이상의 다른 목적들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 인간이 추구하는 여러

목적 중에서 가장 궁극적인 것이 행복이다.”

 

내가 공부를 하든, 어떤 일을 하든, 의식하지 못해도 그 다음으로 지향하는 목적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대체적으로

그 목적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그냥 본능적 욕구를 따라 눈앞의 것을 쫓아갈 뿐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우리 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행복이라고 모두들 이야기 한다행복은 각 개인마다 다르고,, 처해 있는 상황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보편적이지 않다. 하지만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궁극적 목적인 행복은 돈이다.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젊으나 늙으나, 이곳에 있으나 저곳에 있으나, 오로지 돈이다.

 

현재 자본주의의 이치에 따라 살아가는 우리는 돈을 많이 버는 것이 궁극적 목적이 되었다. 그 이상의 것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거기서 멈춰있다.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한다그리고 삶이 괴롭다 한다환갑을 넘어서도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그렇다. 그리고 하나 더 추가 되는 절실한 목적은 오래 사는 것이다. 돈 많고 오래 살면 그 다음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하든 궁극적인 목적을 의식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공부다. 그래서 깨어 있으라는 것이다.


거기까지 가기 위해서는 수많은 목적의 다리를 건너야 한다우리는 돈이라는 수단에 집착하여 그곳에 머물러 있다.

재물과 권력은 그 다음으로 가기 위한 방편이다수많은 책을 읽고 공부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다음을 향해 나아가기

위한 방편일 뿐이다. 지금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은 돈을 향하고 있다.


 

단테의 표현을 빌리면  내 인생 한창 때 문득 뒤돌아보니 어두운 숲 속에서 길을 잃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단테 신곡길을 잃게 한 원인이 재물과 권력에 대한 집착이라고 단테는 말한다. 삶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두운 숲속을 벗어나려면 인생의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고 단테는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