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사람의 개인이 어떻게 지식을 얻게 되는지를 묻기로 하자. 그 답은 간단하다.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지식을 전해준다. 물론 아이들의 복잡한 질문에 대답하려고 애쓰는 부모들이 첫 번째로 여기에 속한다. 하지만 부모라고해서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고, 또 아이들에게 지식을 전해줄 충분한 시간도 없기 때문에 부모들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다. 학교에는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하는 것이 직업이기 때문에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어른들이 있다. 아이들은 부모를 믿었던 것처럼 처음에는 선생님의 말씀을 모두 믿어버린다. 아이들은 선생님도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이 아니라 제한된 지식만을 가졌으며, 그 지식도 애매한 경우에는 책에서 확인한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우리는 지식이 어떻게 전달되는가를 설명할 뿐 지식이 어떻게 생기는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했다. 우리는 무언가를 잡아쥐는 행동을 파악이라 하였고, 어떤 대상을 우리의 손으로 충분히 조사하고 나서 즉, 파악하고 난 후 어떤 사실이나 대상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을 바로 개념이라고 하였다. 어떤 사물이 무엇인지 안다는 것은 곧 사물의 개념을 가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하나의 대상을 보고 머릿속에 그것에 대한 표상을 가진다. 대상의 겉모양에 대한 표상이 일면적인 것이 되지 않도록 우리는 가능한 한 모든 측면에서 대상을 관찰한다. 우리가 눈으로 인지하는 것은 항상 특정한 관점에서 본 사물의 모양일뿐이며, 사물 그자체는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능한한 완전하게 인지하도록 해야 하고, 때로는 시각적인 인상을 느낌으로 보충해야 한다. 맹인들은 바로 감각의 한계로 인하여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하지만 맹인들이 결코 바보는 아닐 것이다. 그들이 같이 또 따로 나누어서 코끼리를 더듬어 본후에 서로의 생각을 나누게 되면 그들은 마침내 코끼리를 올바르게 설명할 수 있다. 그때 각자는 자신이 전체의 일부분을 붙잡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각 개인이 옳다고 주장하는 진실은 일면적이며 일부분을 말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참된 진실은 전체다.
헤겔이라는 철학자는 이러한 인식을 그의 변증법적사유방식을 통해 유용하게 만들었다. 변증법에는 근본적으로 대화가 들어있다. 둘 이상의 사람들 사이에서 진행되어 그 출발과 다른 결과에 이르는 것이 대화이다. 세계를 인식하는데 있어서 우리들이 감각적으로 받아들이는 인상이 결정적인 것은 아니며, 어떤 감각을 사용했는가도 역시 중요하지 않다. 이 세상 사물들에 대한 나의 지식은 이렇게 사물들과 교류하는 경험에서 비롯된다. 다시 말해서 내가 사물에 대해 모든 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 찾아낸 것만을 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때 경험에는 내가 개인적으로 직접 겪은 것과 아울러 다른사람들의 경험이 많은 부분 포함된다. 이러한 간접경험은 말이나 글로 이를테면 교과서같은 책들을 통해서 나에게 전달된다. 다시말해서 세계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지금까지 완전하지 못햇고 현재에도 여전히 불완전하다는 뜻이다. 어째서 우리 지식은 완벽하지 못할까?
내 머릿속에 쓸데없는 것만 들어있고, 내가 어리석고 그릇된 생각만 한다고 인정해야 할 때 조차도 확고하고 자신 있게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이런 그릇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바로 나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우리가 착각할 수 있다는 사실은 분명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착각을 막을 수 있는 수단을 찾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무언가를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함으로써 나는 또 한 가지, 내가 생각하고 있는 바로 그것을 알게된다. 나는 존재하며 나의 생각으로서 생각도 역시 존재하는 것이다. 나는 구피와 미키마우스를 구분할 수 있다. 구피는 구피고 미키마우스가 아니다. 이것을 나는 다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a는 a이고 b가 아니다. 이 말을 의심할 이는 없을 것이다. a는 a이다. 내가 a라고 말할 때 나는 a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만일 a를 말하면서 a가 아닌 b를 생각한다면, 다른 사람은 나를 이해할 수 없다. 사람들 사이의 의사 소통을 위해 필요한 전제 조건을철학에서는 '동일성의 공리'라고 부른다. 공리란 말에는 요구의 뜻이 들어있다. 그러므로 동일성에 대한 요구를 지키지 않는 사람의 말은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없다.
공리axiom, 즉 요구를 세가지로 들 수 있다.
첫째는 동일성의 공리이다. (동일률) : a는 a이다. 내가 a를 말할 때 나는 역시 a를 생각한다.
둘째는 모순이 없어야 한다는 공리이다. (모순율) : a는 a가 아닌 것이 아니다. 내가 'a는 a인 동시에 a가 아니다'라고 상반된 주장을 하면, 대화 상대방은 내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a를 생각하는지 a가 아닌 것을 생각하는지 의문을 갖게 된다. 이 둘은 함께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모순이다.
셋째는 3자 배제의 공리이다. (배중률) : 나는 'a가 있다거나 또는 a가 아닌 것이 있다'고는 말할 수 있지만, a와 a가 아닌 것 사이에 있는 제 3의 것을 주장할 수는 없다. a가 아닌 모든 것은 a가 아닌 것이어야 하는데, 그것은 b일 수도 있고 c나 d 그 밖의 것일 수도 있지만, 그 모든 것은 통틀어서 a가 아닌 것이다.
이들은 사물에 대해 말할 때 지켜야 할 조건이기 때문에 공리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 내가 말을 할 때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나는 규칙을 지켜야 한다.
* 내가 어떤 사물을 생각할 때, 그것이 동화속의 존재처럼 비현실적인 것이든 실제의 생물처럼 현실적이든 또 그 어떤 임의의 대상들이든 간에 나는 그 모든 것을 오직 이 법칙에 따라서만 생각할 수 있다.
이 공리는 실제 사물에 대해서 만이 아니라, 상상의 사물에 대해서도 적용된다. 이것은 중요한 인식이다. 사물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우리가 사물과 교류함으로써 생겨난다. 우리는 이 세계를 공간적으로 경험하는데, 이 말은 곧 우리 자신이 공간적인 세계 안에 일정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생명체라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는 여기저기 다른 장소에 동시에 있을 수 없다. 물론 우리는 우리가 실제로 존재하는 곳과 다른 곳에 있다고 상상할 수 있지만 그건 다른 의미다. 한정된 몸을 가진 우리가 동시에 다른 두 장소에 있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이제 결론을 내리면, 우리는 어떤 대상을 생각하든지 그 대상을 공간적으로 생각해야 하고 또 시간에 의해 정해진 것으로서 생각해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생각하고 있는 바로 이 시점에 일정한 장소에 있는 어떤 대상을 생각하는 것이다. 이 시점이 바로 현재이며 우리는 이 시점을 지금이라 일컫기도 한다. 지금 A라는 지점에 있는 대상은 시간이 경과 하면서 B라는 점으로 움직여 간다. 그리하여 대상이 B점에 도달하면 이제 그것은 더 이상 A점에 있지 않다.
우리가 현존하는 모든 것을 공간적, 시간적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우리들 자신이 공간과 시간속에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의 몸에 대한 인식, 그것이 모든 인식의 출발점이다. 우리는 또한 우리 몸의 바깥에 존재하는 물체들을 조사하는데 이때 우리는 촉각과 감각기관들을 이용하여 외부세계를 파악한다. 세계에 대한 우리의 표상은 그렇게 향성된다. 우리는 이 세계를 돌아다니며 경험할 수 있는 만큼 이 세게에 대해 배울 수 있다. 실제로 아주 옛날에는 지리에 대한 인간의 지식이 매우 제한되어 있었다. 그들은 땅을 평평한판으로 생각했고, 그 위로 천궁이, 하늘이 둥글게 솟아있다고 믿었다. 그것은 우리가 실제로 보는 것 그대로이다. 그러면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었을까? 매일 아침 동쪽에서 뜨고 매일 저녁 서쪽으로 지는 태양이 항상 똑같은 것임을 확신하게 되자, 이제는 자연스럽게 어떻게 태양이 밤사이에 반대편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는지 의문을 품게 되었다. 태양이 하늘을 가로질러 되돌아간다면, 틀림없이 보였을테니까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태양이 땅밑을 지나가는 수밖에 없다. 어째서 사람들은 그렇게 잘못된 설명을 하였을까? 옛날 사람들이 어리석기 때문일까? 세계에 대해 그릇된 표상을 갖는 것은 절데로 어리석음의 표시가 아니다. 세계에 대해 그릇된 표샹을 갖는 것은 절대로 어리석음의 표시가 아니다. 그것은 다만 무지의 표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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