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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리( 강헌)

명리학命理學이란? (1)

운명이란 늘 우연을 가장해서 온다. ( 기 드 모파상)

 

명리학命理學이란 천문天文을 인문人文으로 전환한 것으로 하늘의 이치를 인간의 운명의 이치로 해석한 분야에 해당한다. 천문이 시간이라면 풍수는 지리, 곧 공간의 문제를 다룬다. 한의학은 우리가 인간의 몸과 정신 그 자체를 연구한 분야이다. 이 세 분야는 모두 음양오행陰陽五行이라는 하나의 뿌리에서 비롯된 세 자식들이다. 인간은 모두 자신의 운명에 대해 궁금해 한다. 과학적 이성이 모든 것을 해명하는 현대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과학기술이 발전하면 할수록 인간의 삶의 불확정성 역시 높아지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부터 삶의 판도가 많이 달라졌다. 물질적인 성패가 삶의 질을 극단으로 끌고 간다. 양극단을 오가는 불확실성이 높아지게 되었다. 사회적 불확실성이 높아질수록 개인의 불안지수도 높아졌다. 불안을 느끼는 연령층도 점점 아래로 내려 간다. 이제는 초등학생들까지도 수많은 억압의 틀속에서 살고 있다. 과학적 이성에 기반을 둔 합리주의가 우리의 삶을 지배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더 많은 심리적인 위로나 위안을 필요로 한다.

 

왜 사람들은 자신의 운명을 남에게 구할까?  그것은 답 그자체를 찾기보다는 자신의 상황을 타인과 공유하고,  자신의 어려움에 대해 위안을 얻으려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자신 앞에 놓인 문제가 자신이 해결하기에 너무 벅차다는 인식 때문에 그 문제를 회피하려는 본능이 첫번째 원인이다. 우리사회는 외형적으로 압축적인 경제성장을 이루었으나, 정신적으로는 그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그에 따른 부작용이 구성원 전체에게 영향을 미쳤고 내면적인 억압이 피로로 쌓이게 되었다.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될 수 없으리라는 것이라는 사실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다.  이들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불안에 대한 정확한 답이 아니다.  그보다는 자기 자신에 대한 확인, 자신의 생각에 대한 확신, 그리고 혼자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는 믿음을 갖는 것이 우선이다. 불행하게도 우리가 가진 대부분의 문제는 개인만의 문제가 아닌 경우가 많다.  트라우마가 있다면 부모 또는 가족, 친구, 선생님 등 가까운 친구관계에서 온 것일 수도 있고  스스로 상처를 받았다고 생각하지만 똑같은 상처를 남에게 주고 있는중일 수도 있다.  대부분의 많은 문제는 관계에서 비롯되고, 이렇게 복잡한 관계에서 비롯된 문제는 시간과 함께 세포 증식을 하며 자신을 더욱 구렁텅이로 빠뜨리기 시작한다.

‘ 인간의 운명은 결정되어 있는가?’

‘ 주어진 운명은 피할 수 없는 것인가?’

 

운명에 대한 질문은 결국 이것으로 귀결된다.  동서고금이 똑같다.  왕의 사주를 타고난 자는 왕이 될 수밖에 없고 거지 운명을 타고난 사람은 거지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는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식의 숙명적인 인생관 혹은 세계관은 태어나면서부터 신분이 정해지는 봉건사대에는 어울린다. 신분질서가 무너지고 신분이 무너지면 세상이 멸망한다고 생각했던 것이 그때 그 시대의 정서였다. 지금은 세상이 달라졌다. ‘분수를 알고 분수껏 살아라’  자주 들어본 말이다. 매우 폭력적인 말이기도 하다. 이 말은 봉건적 질서가 무너진지 오래인 현대 사회와는 도저히 어울리자 않는 말임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운명이 정말 결정되어 있는 것인가?  정말로 결정되어 있다면 어떤 학문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운명은 결정되어 있지 않다. 우리는 조언할 뿐이다. ’운명은 운명의 주체인 자기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니 이제 우리는 그저 조언을 해줄 뿐이다.  행복할 수 있는 방법과 길을 알려주는 일종의 카운슬링 역할이 명리학과 같은 운명과 관련된 학문의 역할이다. 명리학은 지난 지난 1000년간 동아시아에서 발전해 온 현세의 철학이다.

 

이것은 전생의 업業이나 내세의 구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중국 특유의 현실주의적 세계관에서 비롯 되었다. 좁혀서 말하면, 명리학은 죽음도 관심의 대상이 아니며 태어나서 살아있는 동안만 유효한, 그것도 개체적 단위의 인간에 대한 판단의 체계이다. 수천년 동안 인문학은 우주 원리론의 뿌리가 된 음양과 오행 사상에 기반하고 있지만, 명리학은 철저하게 인간의 구체적인 성격의 파악과 행동 결정에 개입한다. 명리학이 음양오행에서 빌려온 가장 중요한 관점은 '변화'이다. 고정되고 결정된 것이 아니라, 끝없이 운동하고 바뀌는 힘이다. 그것은 바로 우주의 원리이면서 인간과 인간의 삶의 본질이다. 움직이지 않으면 인간의 삶은 끝난 것이고, 명리학도 그 순간에 끝난다. 명리학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문명이 고정되어 있거나 결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 그리고 천변만화千變萬化하는 우주적 속성의 한 부분으로 인간의 근원을 먼저 파악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학문이다.

 

20세기 한국 명리학의 태두 중 한사람인 도계 박재완은 인간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은 환혼동각幻魂動覺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말했다. 환幻은 사람으로 태어났는가의 여부를 말하고, 혼魂은 조상의 환경이며, 동動은 태어난 나라와 시대이고, 각覺은 바로 그 사람의 자유의지의 깨달음이다. 인간과 인간의 삶, 인간의 운명이라는 것은 크게 보아 우주적 요소이다. 그럼에 우주에 좋고 나쁜 것이 존재한다는 말이 성립할까? 그런 것이 있을 리 없다. 다만 성질이 다른 것이 존재할 뿐이다. 그저 서로 다른 가치, 다양한 가치를 지닌 요소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 가운데 '나'라는 존재와 '나'라는 존재의 삶이 어떤 성격을 가졌고,  그 성격에 따라 잘 맞는 것과 안맞는 것이 있을 뿐이다. 운명이라는 말에 이미 많은 것들이 들어있다.  이 말 자체가 이미 운명은 결정되어 있지 않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운運은 운용한다, 운전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명命은 주어진 요소들을 가리킨다. 명과 운을 합친 말이 바로 운명이고, 이것에 대한 답을 구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명리학이다. 우리는 태어날 때 각자 자기만의 소명召命을 갖고 태어난다. 이것이 명命이다.  그 명을 키우고 발현시켜 자신의 삶 속에서 실현 하는 것은 오로지 그 주체의 몫이다.

 

우리는 각자의 삶에 주어진 명命의 가치는 동일하다는 것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모두가 다 소중하고 존엄하다. 이제 우리가 해야할 일은 주어진 命명을 바탕으로 그것으로 어떻게 잘 운용할 것인지를 고민 하고, 그 해법을 찾아가는 것이다. 자신의 운명運命은 자신의 책임 아래 있고 그 운명을 결정짓는 삶의 판단과 선택 또한 자신의 몫이어야 한다. 그런 소중한 자신의 하나뿐인 운명을 몇푼의 돈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명리학의 개념의 틀 자체가 음양과 오행,  계절과 시간이라는 자연의 섭리속에서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고, 우주의 섭리를 통해서 자기 자신의 존재 요소들을 깨닫게 해주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훨씬 수월하다. 명리학은 인간의 삶에 대한 의문을 풀어내려는 다양한 인문학적 체계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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