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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에세이

걷기예찬 (다비드 르 브르통, 김화영 옮김)

걷는다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이다.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

 

숲이나 길 혹은 오솔길에 몸을 맡기고 걷는다고 해서 무질서한 세상이 지워주는,  늘어만 가는 의무를 면제

받는 것은 아니지만, 그 덕분에 숨을 가다듬고 전신의 감각들을 예리하게 갈고, 호기심을 새로이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인간은 전신으로 세상과 싸우면서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될 재화를 하루하루 생산하는 데 최선을 다한다.

인간 고유의 에너지가 일상생활 속에서 노동, 장소이동 등과의 관계 속에서 요구되는 일은 이제는

극히 드물어졌다. 일터에 가기 위해 혹은 일상의 볼일을 보기 위해 두발로 걷는 사람들은 날로 드물어진다.

 

도시의 혼잡과 그 혼잡으로 생기는 일상의 무수한 비극에도 불구하고, 이제 자동차가 일상 생활의

왕으로 군림하게 되면서,  우리 시대의 수많은 사람에게 있어서 육체는 거의 남아도는 군더더기

장식이 되고 말았다.  인간의 조건은 움직이지 않는 앉은뱅이 조건으로 변하여, 그 나머지 일들에는 온갖

인공 보조기구들의 도움을 받는다.

 

육체의 중요성이 점차 줄어들면서 인간은 세계관에 상처를 입고, 현실에 작용하는 범위가 제한

되며, 자아의 존재감이 감소하고, 사물에 대한 인식이 약화된다. 걷는다는 것은 가장 인간적인 몸짓

이다. 하지만 육체를 동원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은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면 된다. 이제 컴퓨터로

마음대로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다고 좋아하며, 엄청난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걷는 사람들은 자동차를 버리고 여러 시간 혹은 여러 날 동안 신체적 차원에서 세상 속으로 직접 뛰어드는

모험을 감행하기로 작정한 특이한 개인들이다. 걷기는 별것 아닌 작은 일들에 대한 기본적 존재철학의

발전에 알맞은 것이다.

 

걷는 동안 여행자는 자신에 대하여, 자신과 자연의 관계에 대하여 질문하게 되고, 뜻하지 않은 많은

질문들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보게 된다. 바쁜 사람들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한가로이 걷는다는 것은 시대

착오적이라고 여겨질지 모른다. 시간과 장소의 향유인 보행은 현대성으로 부터의 도피요 비웃음이다.

 

만남과 대화를 가져오는 걸음, 시간을 음미하고 마음 내키는 대로 멈추거나 가던 길을 계속하는

그런 걸음은 가슴 뿌듯한 기쁨이다.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걷기도 하는 그 고저늑한 즐거움.

 

무슨 대단한 그런 것은 없다. 그냥 한번 걸어보자는 것뿐이다. 그리하여 저녁이 되면 길가의 여인숙의

식탁에 둘러 앉아 피곤과 한잔 술로 입이 열리면, 마음 속의 인상을 서로 나누자는 것뿐이다.  그저 좋은

동반자들과 같이 걷는 단순한 산책을 하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훗날 스쳐지나가는 추억들, 중요하면서도

사소한 인상, 만남, 대화, 한마디로 말해서 세상사의 흥치興致 같은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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