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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에세이

무소유無所有

이 세상 처음 태어날 때 나는 아무것도 갖고 오지 않았다. 살 만큼 살다가 이 지상의 적籍에서 사라져 갈

에도 빈손으로 갈 것이다. 그런데 살다보니 이것저것 내 몫이 생기게 된 것이다.  물론 일상에 소용되는

물건들이라 할 수 있겠지만, 살펴볼수록 없어도 좋을 만한 것들이 적지 않다.

 

우리들은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게 되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적잖이 마음이 쓰이게 된다. 필요에

따라 가졌던 것이 도리어 우리를 부자유하게 얽어맨다고 할 때 주객이 전도되어 우리는 가짐을

당하게된다는 말이다많이 갖는다는 것은 흔히 자랑거리로 되어있지만, 그만큼 많이 얽히어 있다

측면도 동시에 지니고 있는 것이다.

 

나는 지난해 여름까지 난초 두 분盆을 정성스레, 정말 정성을 다해 길렀었다.  관계 서적을 구하다 읽고,

바다건너에서 비료를 구하기도 하고,  여름이면 서늘한 그늘에 옮겨주고, 겨울에는 필요 이상으로 실내

온도를 높이곤 했다. 이렇듯 애지중지 가꾼 보람으로 이른 봄이면 은은한 향기와 함께 연두빛 꽃을 피워

나를 설레게 했고, 잎은 초승달처럼 항시 청청했었다.

 

지난 여름 장마가 갠 어느날 운허노사를 뵈러가면서 난초를 뜰에 내어놓은 채 간 것이다. 뜨거운 햇빛에

늘어져 있을 난초잎이 눈에 아른거려 허둥지둥 돌아와서 샘물을 주고 해서 겨우 살렸다. 나는 이때 온몸

으로, 그리고 마음속으로 절절히 느끼게 되었다. 집착이 괴로움인 것을.

 

며칠 후 난초처럼 말이 없는 친구가 찾아왔기에 선뜻 그의 품에 안겨주었다. 비로소 나는 얽매임에서

벗어난 것이다. 함께 지낸 有情을 떠나보냈는데도 서운함, 허전함보다도 홀가분한 마음이 앞섰다. 이때

부터 나는 하루 한 가지씩 버려야겠다고 다짐했다. 난을 통해 무소유無所有의 의미 같은 것을 터득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인간의 역사는 어떻게 보면 소유사所有史처럼 느껴진다보다 많은 자기네 몫을 위해 끊임없이

싸우고 있는 것 같다. 소유욕에는 한정도 없고 휴일도 없다. 물건만으로는 성에 차질 않아 사람

까지 소유하려 든다.

소유욕은 이해利害와 정비례한다. 그것은 개인뿐 아니라 국가간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어제의 맹방

들이 오늘에는 맞서게 되는가 하며, 서로 으르렁대던 나라끼리도 친선사절을 교환하는 사례를 우리는

얼마든지 보고 있다. 그것은 오로지 소유에 바탕을 둔 이해관계 때문인 것이다.

 

간디는 이런 말을 하고 있다. “ 내게는 소유가 범죄처럼 생각된다....”  그가 무언가를 갖는다면 같은

물건을 갖고자 하는 사람들이 똑같이 가질 수 있을 때 한한다는 것.  그러나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

이므로 자기 소유에 대해서 범죄처럼 자책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소유관념이 때로는 우리들의 눈을 멀게 한다.  그래서 자기의 분수까지도 돌볼 새 없이

들뜨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언젠가 한 번은 빈손으로 돌아갈 것이다. 내 이 육신마저 버리고

홀홀히 떠나갈 것이다.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물건으로 인해 마음을 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한 번쯤 생각해 볼 말씀이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역리逆理이니까.  (법정 '무소유' 現代文學 197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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