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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어떻게 배우는가? ( 존 홀

무작정 놀기

콜로라도 대학의 철학교수이자 초등과학연구회의 회장이었던 데이비드 호킨스는 ‘과학안에서 무작정 놀기’ 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러한 주제를 다루었다.  "초등교육의 다른 분야에서도 그렇지만, 특히 과학분야에서는 흔히 허락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자유롭고, 유도되지 않은 탐구작업(놀이)에 주어져야 한다. 아이들은 교재와 장비를 받되 거기에 딸린 질문이나 지시없이 그저 그 물건들을 가지고 구조물을 만들고 검사해 보고 탐구해 보고, 실험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게 허용되어야 한다....미심쩍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상황을 단지 카오스적이라고 치부하는데 사실은 절대로 그렇지 않다. 비체계적이라는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수업이라는 명목 속에는 어떠한 경우든 항상 어떤 체계가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건 뭘 하기로 되어있는 거죠?’  학교라는 환경에서 세월을 보낸 아이들이 그런 질문을 한다고해서 새삼 놀라울 것도 없다.  " '뭘 하게 되어 있는'게 아니야.  우리가 이것 보고 뭘 하라고 시켜 볼까?" 그 물건이 뭘 하게 되어 있는지 모르는 한, 그 물건을 건드려 뭔가를 하게 만드는 건 위험한 짓이니까. 더욱이 그게 잘못되기라도 하면 비난을 받을 수도 있으니까.  학교 아이들이 갖는 흔한 감정 중의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자연과 우주는 일관성이 없고 예측이 불가능 할뿐 아니라, 적의로 가득 있으며 믿을 수 없다고 느끼는 것. 세계에 대한 아이들의 내적 모델 속에 어떤 물체가 충분히 새겨진후에야 그 물체에 대한 이야기가 아이들 에게 어떤 의미를 갖게 된다. 물론 나는 이게 과학뿐 아니라 읽기나 숫자, 수학, 역사, 지리, 언어에도 적용된다는데 동의한다. 아이들은 읽기를 배우기 전에, 글자와 소리 사이에 어떤 관계를 설정하기 전에 우선 읽기를 두고 무작정 노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특정한 언어를 기억하기 전에 아이들은 재촉이나 압박감을 받지 않고, 단어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충분한 이미지를 머릿속에 쌓을 시간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아이들은 재촉이나 압박감을 받지 않고, 단어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충분한 이미지를 머릿속에 쌓을 시간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아이들은 덧셈의 성질이나 구구단을 외우기 전에 우선 수와 숫자를 가지고 무작정 노는 시간을 가지면서, 76이 얼마나 큰지, 134가 얼마나 큰지, 35000이 얼마나 큰지, 1000000이 얼마나 큰지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이런 시간을 많이 주지 않는다. 교사들은 설명이라는 방법을 통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내적 모델을 아이들의 머릿속에 옮겨 심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호킨스 교수는 이야기 한다.  ‘ 아이들이 무작정 놀도록 놔둔 이유는, 아이들로부터 새로운 종류의 피드백을 얻고,  아이들의 관심사가 어떤 경로를 통해 어느 방향으로 전개되어 나갈 것인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역할은 단지 이리저리 기웃거리면서 도움이 되어주는 것이지, 의식적인 자극을 주거나 지도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의 정신이 추상개념들을 발전시키고 있을 때는 그것을 진정으로 이해하게 되기까지 무지와 통찰의 경계를 몇 번씩이나 가로질러야만 한다.’ 

 

우리는 어떤 단어가 이러이러한 소리가 난다고 생각한다. 그게 통하는 듯이 보인다.  그리고 그 단어를 다시 만났을 때 이번에는 새로운 감을 시도해 본다.  우리는 실수를 바로잡고 계속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실수를 바로잡고 계속한다.  이렇게 여러번 반복하고 나서야 우리는 비로소 그 단어를 알게 된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는 그걸 외우는 게 아니다. 그저 알고 있는 것이다. 그 단어가 내적 모델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호킨스 교수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 우리 모두가 진정으로 이해하기 되기까지 무지와 통찰의경계를 몇 번씩이나 가로질러야만 한다.’ 그 자신말고는 그 경계를 대신 넘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그러므로 우리는 직접 그 경계를 넘어야만 한다. 떠밀리거나 이끌려서 경계를 넘기는 것은 좋지 않다.

 

호킨스 교수는 무작정 놀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것은 아이들이 학교에 가기전에 이룩한 거의 모든 배움의 원천을 즉 아이들의 도덕적, 지적, 심미적 발달의 근원을 학교에까지 확장시키기 때문이다.  만약 교육이 아이들이 태어난 이후 배워온 모든 것, 자연과 인간세계에서 살아오면서 획득한 모든 것을 포함하는 의미로 정의된다면, 어떤 엄밀한 척도로 쟤더라도 대여섯 살전에  배운 것의 가치는 그 후에 배운 모든 것의 가치를 능가한다고 할 수 있다. ...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무적정 놀기는 학습의 다른 요소들과 적절한 조화를 이루면서 아이의 성장을 발달시키는 방향으로 그 질이 바뀐다. ... 이와 같은 자발적인 탐사와 탐구야말로 창조성의 본질이다... 아이들의 무작정 놀기가 외부에서 이끌어 주고 훈련하는 단계로 이어지거나, 발전하는 시점에는 반드시 내가  ‘다차원적으로 프로그램화 한 교재’라고 부르는 것이 손닿는 곳에 있도록 해야 한다. 이들 교재는 학생을 이끌어 줄만한 특정한 종류의 글이나 그림이 최대한 다양한 주제와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어 아이가 어떤 주제를 어떤 방식으로 탐구해 나가더라도 그 길을 따라 더멀리 갈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특징이다... 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