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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삶 (앙토냉 질베르 세르티

넓은 시야를 가지자.

우리가 먼저 우리 자신을 비우고 진리가 우리를 채울 것이라고 다짐하지 않는 한, 진리는 우리에게 자신을 내주지 않을 것이다. 발견은 공감의 결과이다. 그리고 공감은 자기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다. 우리는 사유 으로써 대상을 발견하는 것이지, 대상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다풍부한 교양을 지닌 정신은 새로운 관념을 획득하면서 수용력을 키워나간다.  그러나 겸손하지 않다면,  바깥 세상을 끌어당기는 힘은 거짓의 새로운 원천이 될 것이다. 이해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되어 자신에게 쏟아지는 진리를 행복하게 수용하는 것이다. 연설할 콧속이 아니라 공간을 향해 목소리를 내는 것처럼,  사유를 자신 안에 간직하지 말고 앎의 대상에 투영하라. 영감을 경험한 이들은 내 말을 이해할 것이다. 정신을 통해 대상쪽을 바라봐야지 곧잘 대상을 잊곤 하는 정신을 들여다보아서는 안된다. 정신 안에 있는 것은 시각의 수단이지 시각의 대상이 아니다수단 때문에 목표를 놓쳐서는 안된다.

 

아무에게나 충성을 맹세하지 말아야 하는 것처럼, 아무나 멸시해서도 안된다. 우리는 자신이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고 모든 일을 할수 있다고 믿기를 좋아해서, 다른 이들의 목소리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곤 한다. 우리는 소수의 사람이나 책을 유달리 선호하며, 거기에 귀를 기울이고 거기에서 영감을 얻는다. 그러나 사실 영감은 어디에나 있다. 가장 하찮은 지성일지라도 거기에는 무한한 신의 지혜를반영하는 측면이 있으며, 지극히 겸손한 사람은 그것을 알아챌 수 있다. 공부를 위한 정신에 고귀함을 더하기 위해 우리는 절실하게 노력하고, 집중하고, 복종하는 것 외에도 시야를 넓혀서 각각의 공부나 사유의 성과에 일종의 보편적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어떤 문제든 그 자체로는 자기충족적 일수 없다.

 

문제는 본성상 문제 자체의 범위를 넘어선다. 문제가 전제하는 이해 가능성 자체가 더 높은 근원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앞에서 비교탐구에 관해 말했던 것을 따라야 한다. 우리가 탐구하는 모든 대상은 하나의 전체에 속한다. 또 그 안에서 영향을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며, 조건에 종속되기도 하고, 조건을 부과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대상을 따로따로 탐구할 수 없다. 우리가 전문화 혹은 분석이라 부르는 것은 실은 하나의 방법이자 수단이다.  공부하는 이가 수단의 종이 되어야겠는가? 나는 더 잘보기 위해 전체 가운데 일부를 분리한다. 그러나 나는 그 일부를 손에 쥐고 눈으로 검토하는 동안에도 그것의 위치를 잊지 않으며,  그것이 전체의 일부로 움직이는 것을 본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전체를 불완전하게 만들뿐더러 일부마저 이해할 수 없게 만들면서 진리를 왜곡하는 것이다. 진리는 하나의 전체다. 모든 것은 하나뿐인 지고한 진리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인간의 정신 또한 하나의 통일체다. 참된 것과 아름다운 것을 조각조각 분리하는 것을 전문성이라 여기는 그릇된 관념을 전제하고는 정신을 만족스럽게 형성 할 수 없다.  당신이 아주 제한된 탐구를 수행하거나 아주 작은 주제를 탐구하더라도 인류 전체와 우주는 실제로 연결되어 있다. 하나를 공부한다는 것은 실로 단계마다 -  모든 존재와 아우러져 합주를 하고, 우주 그리고 자기자신과 합일을 이루면서-다른 모든 것과 그것들간의 결속의 의미를 떠올린다는 뜻이다.   

 

집중하는 것과 넓게 보는 것은 심장의 수축과 이완처럼 하나의 동일한 움직임이다. 내가 말하는 집중이란 한 점으로 주의력을 모으는 것이다.  내가 말하는 넓게 보는 것이란, 그 점이 방대한 전체의 중심이라고 의식하는 것이다.  더 깊이 꿰뚫어 보기 위해 대상을 분리하되 그런 뒤에는 대상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통합해야 한다. 당신이 위대한 비밀에 손대고 있다는 것, 위대한 정신의 영감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라. 만물의 순수한 근원에서 흘러나와, 저 멀리서부터 여기저기로 막힘없이 흐르면서 세상을 가득 채우는 희미한 빛줄기를 지각하라.예술가는 사소한 작업을 하는 동안에도 묵상해야 하고, 작가와 철학자, 연설가는 우주를 사유하고 느껴야 한다.  우리는 지구에 손가락 하나만 대고도 지구 전체의 크기와 둥근 모양을 느껴야 한다. 우리는 늘 전체에 관해 말하는 것이다. 편협한 규정으로 스스로를 옭아매는 것, 경직된 형식으로 자기 정신을 마비시키는 것은 지적 소망과 상반되는 열등함의 표식이다.

 

사유하려 애쓰는 사람은 새로운 진리를 볼 때,  느끼는 일종의 눈부신 빛이 무한한 원경과 보편적인 결속에 대한 이런 감각과 연결되어 있음을 깨달을 것이다. 참된 것을 향해 내닫는 이의 한걸음은 햇빛을 받으며 떠나는 소풍과 같다. 자신이 모든 것을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아무 것도 파악하지 못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모든 문제는 신이 자연을 통해 우리에게 제시하는 수수께끼다파스칼은 ‘우리는 어떤 것도 모두 알지는 못한다’ 라고 말했다.  생리학자 베르나르는 ‘단 하나를 철저히 이해하려면 모든 것을 이해해야 한다’ 라고 덧붙였다. 더욱이 멀리 있는 그 빛은 우리가 거기에 도달하기를 바라는 한 공부하도록 우리를 자극한다. 반대로 이미 모든 것을 들었고 그것들을 배우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작은 궤도안에서 공부하면서 한 곳에 머무를 것이다. 만물의 신비는 우리가 아는 빛이다. 1이 수의 원천이고, 부동성이 아찔할 만큼 빠른 속력의 비밀인 것과 같다. 만물은 만물과 연결되어 있으며, 뚜렷하게 눈에 보이는 대상들의 관계는 내가 이리저리 더듬으며 길을 찾는 어둠에 뿌리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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