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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 가고 있

새로운 세대의 정체성3

계약서 숫자가 늘어나면서 도덕은 사라지고 카메라 숫자는 많아진다. 내면화된 권위는 없다. 때문에 카메라가 필요하다. 어른들에게도 어린아이처럼 물질적 보상, 인센티브로 유혹해야 규칙준수를 호소할 수 있다. 노동에서 결혼까지, 교육에서 치료까지, 오늘날 거의 모든 인간관계가 계약을 통해 규제된다면 정말 나쁜 징조다.  계약만하면 모든 것을 방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래의 국민을 계약으로 규제해야 하는 사회란 얼마나 깊이 병든 사회인가? 자신의 노동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느낌과 자신이 조직의 일부라는 소속감은 무기력과 개인주의로 방향을 선회했다. 초기단계에선 인간을 독자적인 결정을 내릴수 있는, 신뢰할 수 있는 성인으로 취급했다. 그러나 이젠 모든 사람들이 외부규칙에 따라야 하며, 어떤 것에도 영향을 미칠수 없이 계속 통제를 받아야 하는 어린아이처럼 느낀다. 권력없는 책임은 반드시 실패할 수 밖에 없다.

 

중앙의 결정이 제일 아랫단계까지 전달되는데 2주도 걸리지 않는다. 중간차원은 완전히 배제된다. 이들은 그저 다른 곳에서 대부분 외부 자문위원과 협의를 통해 결정된 프로그램을 지시 받아, 단순히 실행에 옮기는 실무자에 불과하다. 능력주의에 크게 고무되었던 소속감은 이제 완전히 실종되었다. 이런 시스템은 소수의 승자에게만 보상하기 때문에, 공포와 질투를 불러온다. 연대감 대신 불평이 지배하다보니 충성심과 소속감마저 고용주가 투자를 해야 얻을 수 있다. 벨기에의 루이스 토바크 장관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 축구장에서 열한개의 주식회사가 뛰어다닌다. 선수들의 머릿속엔 한 가지 생각밖에 없다. 다음 시즌엔 어디로 가야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까? ‘ 신자유주의 능력주의는 보편적 이기주의라는 애초의 출발점으로 돌아온다.

 

돈을 벌기에 급급하고 이기주의가 팽배한 이 현실은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고, 남은 배려해줄 필요도 없고, 심지어 남을 희생시켜도 된다고 가르치는 사회에서 원인을 찾는 것이 올바르다. 모든 것은 생산, 성장, 이윤의 개념으로 측정된다. 이를 위해 모든 조직이 쉬지 않고 평가를 실시해야 하니 순식간에 평가가 통제로 변질된다. 모든 개인은 예외없이 의심을 받는다. 다들 자기 이익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조직의 꼭대기도 자기 이익을 먼저 생각하며 따라서 더욱 더 의심스러운 개인이 앉아있다. 이들 역시 통제와 평가의 대상이다. 물론 '누가 이들을 평가할 것인가'라는 의문이 있다. 그런 사회에 권위가 있을리 만무하다. 거의 모든 직원이 권리를 박탈당했다고 느끼면서 조직과 더 거리를 취하게 된다. 그리고 사실상 모두가 넘쳐나는 규칙과 감시체제를 피하려고 최대한 노력한다. 평가 결과를 점점 더 믿을수 없게 되고, 다시 더 강력한 감시 및 통제가 필요해진다. 순식간에 공포와 불신의 분위기가 확산되는 것이다. 계약사회와 비디오를 통한 감시, 이 두가지야 말로 불행한 공동체의 특징이다.

 

플랑드르 주간지 ‘크낙’의 칼럼니스트인 코엔 묄레나레는 출세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갖추어야 말 몇가지 특성을 이렇게 요약했다. 일단 말을 잘해야 한다. 그래야 많은 사람들을 내편으로 만들수 있다. 느슨한 만남에서 무조건 자기능력을 자랑해야 한다. 죄책감 따윈 느낄 필요가 없다.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효과가 입증된 도구적 폭력을 사용한다. 여기서 도구적이란, 합리적이란 말과 같은 뜻이다. 감성같은 통속적인 것이 흔들리지 말고 폭력사용을 정당화 한다. 이것은 사이코패스 핸드북에서 이야기 하는 것들이다. 연대감은 희귀한 물건이 되어버렸다. 대신 남들보다 더 많은 이윤을 올리는 것만 생각하는 한시적인 동맹이 자리 잡는다. 심도 깊은 인간관계는 맺을 수가 없다. 기업이나 조직과의 정서적 결합 역시 불가능하다. 학생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왕따가 일터에서 목격된다. 자신의 절망을 약자에게 쏟아붓는 무력함의 전형적 증상이다. 줄어드는 자율과 늘어나는 종속, 계속해서 변하는 규칙은 세넷이 '노동자의 유아화'라 부른 현상의 원인이다.

 

어른들도 어린아이처럼 갑작스럽게 터져 나오는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고,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일에 질투를 느끼며,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위조와 조작에 참여하며, 남이 못되면 고소해 하고 잘되면 복수심에 불탄다. 이 모든 것은 독립적 사고와 행동을 가로막는 체제의 결과이다. 자기존중이 공격 당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자기존중은 대부분 타인의 인정에서 얻는다. 타인이 나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을지 모른다는 공포가 잠재의식으로 숨어있다. 안타깝게도 ‘아무도 당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당신은 잉여 인간이다’ 라는 대답을 듣게 될 사람들이 날로 늘어가고 있다. 그러므로 모두가 노력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외쳐대는 사회에서는 굴욕감과 죄의식, 수치심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난다.

 

신자유주의 능력주의는 성공이 노력과 능력에 달려있다고 사기를 친다. 모두가 모든 것을 책임을 지기에 정부는 각자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허용하여, 이들이 성공할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이다. 원하는 자에게 불가능이란 없다.  무한한 선택 가능성이라는 멋진 동화를 믿는 자에게 자기관리 및 자기경영은 뛰어난 정치적 메시지다. 우리에겐 강요된 ‘생정치(biopolitics)'를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다. 여기서 생정치란 사랑에서 시작하여 교육, 음식, 주거를 거쳐 의료 및 심리적, 사회적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언론에서 환경에 이르기까지, 생명의 모든 측면을 통제하는 정치다. 만들수 있고 향상시킬 수 있는 인간이라는 관념과 더불어 자유는 현대가 주장하는 최대의 거짓말이다사회학자 바우만은 우리 시대의 역설을 정확히 짚어냈다. ‘이렇게 자유로었던 적은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무기력하게 느꼈던 적도 없았다’ 과거와 비교해 보면 우리는 매우 자유롭다. 종교를 비방할 수도 있고, 성적으로도 예전에 금지되었던 모든 행위를 시험해 볼 수 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해도 좋다. 하지만 일상에서는 불합리한 온갖 규제가 넘쳐난다.

 

빵에 들어가는 나트륨 함량에서 양계 허가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아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 규제를 받는다. 우리의 자유란 한가지 조건을 달고 있다. 성공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며, 우리는 성공해내야 한다는 조건말이다성공스토리 너머에 자리 잡은 다른 형태의 자아실현을 선택할 자유는 지극히 제한돼 있다. 대학을 나왔음에도 부모역할에 집중하고자 회사를 가만두는 남녀는 참 딱한 사람들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승진을 거부하는 사람은 바보천치다. 예전의 규범과 가치, 예전의 윤리는 실제로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리 대부분은 초기에 그것을 해방으로 느꼈다. 하지만 어느새 우리는 규범의 실종을 위협으로 느끼게 되었다. 규범과 가치는 우리 정체성의 일부이다. 우리는 가치를 상실할 수 없다. 기껏해냐 바꿀수 있을 뿐이다. 변화된 사회는 다른 윤리를 가진 변화된 정체성의 거울이다. 새로운 규범의 이름은 효율성이고 목표는 물질적 이익이라면, 덕목은 소유욕이다. 우리의 유전자에는 두가지 상반되는 기본행동모델이 숨어있다. 하나는 매우 이기적이어서 분배와 지배를 추구하며, 다른 하나는 매우 이타적이어서 주고받기에 역점을 둔다. 현재는 이기적인 쪽이 승리를 거두고 있다. 현재의 경제체제는 우리의 가장 나쁜 면을 지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