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장하준 지음,

케인스 학파, 제도학파

케인스 학파: 개인에 이로운 것이 전체 경제에는 이롭지 않을 수도 있다.

 

슘페터와 같은 해에 태어났고, 자기 이름을 딴 경제학파를 가지는 또 한명의 경제학자가 바로 존 메이너드 케인스이다. 케인스는 20세기 가장 중요한 경제학자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거시경제학분야를 창시하여 경제학에 대한 정의를 바꾸었는데, 거시경제학이란 경제학의 각부분을 단순히 더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전체를 하나의 단위로 보고 분석하는 경제학 분야이다. 케인스는 한 사회가 생산하는 모든 것을 소비하지는 않는다는, 생각해 보면 명백한 사실에서 이론을 시작한다. 생산된 것이 모두 팔리고, 노동자들의 노동서비스를 모두 포함하여 생산에 투입된 모든 자원이 활용되는 완전 고용상태가 이루어지려면, 생산과 소비의 차이, 즉 저축이 투자가 되어야 한다. 미래는 불확실성으로 가득차 있다. 불확실성은 단순히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뜻만은 아니다.

 

어떤 일들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가능한 상황이 벌어질 확률들을 상당히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다. 경제학자들은 이를 위험 또는 리스크라 부른다. 사실 죽음, 화재, 자동차 사고 등 사람들의 삶과 관련된 여러 리스크를 계산하는 능력은 보험상업의 토대이다. 그러나 어떤 상황이 벌어질 확률은 커녕, 어떤 상황들이 가능한지 모르는 경우도 수없이 많다. 불확실한 세상에서는 투자자들이 갑자기 미래를 비관적으로 생각해 투자를 줄일 수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저축이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생길 수 있다. 이를 전문용어로 저축과잉이라고 한다. 고전주이 학파들은 저축과잉이 되면 저축에 대한 수요가 감소해서 이자율이 떨어지고, 이에 따라 투자하기에 더 매력적인 조건이 형성되므로, 조만간 과잉상태가 해소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케인스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했다. 투자가 줄어들면 전체적으로 지출이 줄어들고 소득이 줄어든다. 한 사람의 지출은 다른 사람의 소득이기 때문이다.

 

소득이 줄어들면 저축도 줄어든다. 저축은 결국 소비를 하고 남은 것이기 때문이다. 소득이 줄었다고 그에 비례해서 소비가 줄어들지 않는다. 소비는 생존에 꼭 필요한 필수품과 습관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이다. 결국저축은 줄어든 투자수요와 맞춰서 같이 줄어든다. 잉여저축이 줄어들면 이자율을 낮춰야 하는 압력이 생기지 않고 따라서 투자에 대한 추가적 자극도 생기지 않는다. 케인스는 완전고용이 가능할 정도로 투자가 이루어지려면 새기술, 금융시장의 들뜸 등의 특별한 사건 등으로 잠재적인 투자자들의 야성적 충동이 자극을 받아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보기에는 완전고용을 지탱하기에 부족한 유효수효(실제 구매력이 뒷받침되는 수요) 수준에서 저축과 투자가 균형을 이루는 것이 정상적인 상태였다따라서 완전고용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출해 수요수준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케인스 학파에서는 팽배한 불확실성 때문에 고전주의 학파에서처럼 돈이 단순한 회계단위나 편리한 교환수단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돈은 재무상황을 신속하게 바꿀수 있도록 유동성을 확보하는 수단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금융시장은 투자할 돈을 공급하는수단일뿐 아니라, 같은 투자프로젝트에 대해 사람들이 가진 견해차를 이용해 돈을 벌수 있는 장소, 다시말해 투기의 장이기도 하다.케인스에 따르면 이것이 금융시장에서 자주 목격되는 군중심리의 기초가 되기 때문에, 금융시장은 금융투기와 거품, 그리고 거품이 꺼지는 위험을 내재하고 있다. 기업이 큰 물줄기를 이루고, 투기가 그 위를 떠다니는 거품일때는 투기도 별다른 해가 없다. 그러나기업이 투기라는 소용돌이위에 떠다니는 거품이 된다면, 상황은 심각해진다. 한 나라의 자본개발이 도박의 부산물로 생긴 것이라면 작동을 잘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케인스학파는 현대자본주의 사회에서 금융이 하는 중요한 역할을 제대로 강조한다. 신고전주의 학파는 케인스가 살던 때와 비슷한 상황에서 발전했지만, 불확실성을 인정하지 않는 성향 때문에 돈이 별로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케인스이론에서는 금융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케인스학파는 거시경제의 단기적 변수에 초점을 맞춘 탓에 기술발전이나 제도변화와 같은 장기적 문제에 상당히 취약하다. 

 

제도학파- 신제도학파? 구제도학파? : 개인이 사회적 규칙을 바꿀 수 있다 해도 결국 개인은 사회의 산물이다.

 

19세기말부터 일단의 경제학자들이 당시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던 고전주의 및 신고전주의 학파에 반발하기 시작했다. 개인은 사회의 산물이라는 개인의 사회적 성격을 과소평가하고, 심지어 무시한다는 점에 반론을 제기한 것이다. 이들은 개인에게 영향을 주고, 개인을 만든다고까지 할 수 있는 제도, 즉 사회적 규칙을 분석해야 한다주장했다. 이 집단을 제도학파라 부른다. 제도학파의 탄생은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개인이라는 개념에 의문을 제기 하면서 명성을 얻은 소스타인 베블런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인간의 행동은 본능, 습관, 신념 등 여러 층의 동기에 기반을 두고 이성은 그중에서도 가장 마지막 층이라고 주장했다. 인간의 합리성은 시공을 막론하고 변함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관찰하는 특정 개인을 둘러싼 공식적인 규칙 과 비공식적 규칙으로 이루어진 제도에 의해 형성된다고 강조했다. 이 학파가 가장 빛을 발한 것은 뉴딜인데 많은 제도학파 경제학자들이 뉴딜정책의 설계와 실행에 참여했다. 요즘은 뉴딜이 케인스주의에 입각한 프로그램으로 알려져 있지만, 생각해 보면 케인스의 명작 ‘고용, 이자,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은 1936년에 출간되었다. 제2차뉴딜이 시작되고 1년후이다. 뉴딜은 거시경제정책보다는 금융규제, 사회복지, 노동조합 및 수도 가스전기 등의 공익사업규제 등 제도에 관한 부분이 훨씬 많았다. 

 

제도학파는 제도를 공식적인 집단결정과정 혹은 역사의 산물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제도는 다른 식으로 형성되는 경우도 많았다. 합리적 개인간의 상호관계에서 나오는 자발적 질서이기도 하고, 복잡한 현상에 대처하기 위해 개인과 조직이 인식장치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나오기도 하고, 기존권력관계를 유지하려는 노력의 결과로 나오기도 한다. 그들은 사회적 제도와 제도가 구성하는 구조가 전부이며, 개인은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에 의해 완전히 결정된다고 보았다. 1980년대부터 더글러스 노스 등을 필두로 신고전주의, 오스트리아학파의 성향을 띤 경제학자들이 신제도주의 경제학이라는 새로운 제도주의 경제학을 만들었다. 신제도주의 주요개념은 거래비용이다. 신고전주의 경제학에서는 재료비와 임금 등 생산비용만이 유일한 비용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신제도주의는 경제활동을 조직화 하는 데도 비용이 든다는 것을 강조한다.

 

제도주의학파는 거래비용 개념을 사용하여 흥미있는 이론을 연구했다. 시장경제에서 왜 이토록 수많은 경제활동이 시장이 아니라, 기업안에서 벌어지는가 하는 질문이다. 시장에서 거래하려면 정보를 찾아 처리하고 계약을 실행하는 비용이 비싼 경우가 많은 데, 이 경우 기업내의 위계적 명령체계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신제도학파는 제도학이론으로서 치명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제도를 개인의 무한한 이기적 행동에 제약을 가하는 도구로 본다. 그러나 제도는 제약할뿐 아니라 가능하게도 한다. 제도는 단지 개인의 행동을 제약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동기를 형성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