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문가에게 실제보다 더 어렵게 보이는 분야가 경제학 뿐만이 아니다. 어느 정도 지식이 필요한 분야는 그 분야의 사람끼리 의사소통을 위해 쓰는 전문용어때문에, 외부인에게 어렵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적절한 전문지식이 없이도 온갖 일에 강한 의사표시를 하곤 한다. 기후변화, 동성결혼, 핵발전소 등등 ..... 유로화의 전망이나 중국의 불평 등 혹은 미국 제조산업의 미래를 두고 논쟁을 벌여본 기억이 있는가? 이런 문제들은어디에 사느냐와 상관없이 생활에 커다란 영향을 준다. 우리의 고용기회, 임금, 그리고 결국 연금에까지 영향을 주는 일임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별로 진지하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하버드대학 경제학 교수이자 가장 널리 사용되는 경제학 교과서 중 하나를 집필한 그레고리 맨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 경제학자들은 과학자인 척하기를 좋아한다...’ 경제학에는 다양한 여러가지 다양한 이론이 있고, 각 이론은 복잡한 현실의 서로 다른 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서로 다른 도덕적, 정치적 가치판단을 적용해 결국 서로 다른 결론을 내린다. 게다가 경제학 이론들은 각자 초점을 맞추는 분야에서 마저 실제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을 제대로 예측하는 데 계속 실패해 왔다. 화학에서 다루는 분자나 물리에서 다루는 물체와는 달리 인간의 자유 의지를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가장 널리 알려진 몇몇 경제학책에 따르면 경제학은 경제만 다루는 것이 아니다. 그들에 따르면 경제학은 인생,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관한 궁극적 질문을 다루는 학문이다. '경제학콘서트'의 저자 팀 하포드에 의하면 경제학은 인생을 다루는 학문이다. 세계적으로 많이 알려진 '괴짜 경제학' 저자 스티븐 레빗과 스티브 더브너는 경제학이 ‘모든 것의 이면을 파헤치는 학문’이라고 말한다. 경제학은 심각한 과대망상증에 사로잡혀 있는 듯하다. 자기 분야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마당에 모든 것을 설명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도대체 무슨 경우란 말인가? 경제학에 대한 신고전파 정의는 1932년 라이어널 로빈스는 경제학을 ‘다른 용도로 사용이 기능한 희소성을 지닌 수단과 목적 사이의 관계로서 인간행동을 연구하는 과학’이라고 정의했다. 경제학이 합리적 선택을 연구 하는 학문이라고 정의를 내리는데, 필연적으로 희소성을 지닐 수 밖에 없는 수단을 사용해 최대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방법을 의도적이고 체계적으로 계산해서 내리는 선택을 합리적 선택이라고 한다. 이 계산의 대상에는 직업, 돈 혹은 무역과 같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전형적인 경제적 문제뿐만 아니라, 199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유명한 시카고학파 경제학자 게리 베커가 많이 연구했듯이 결혼, 출산, 범죄, 약물중독 등 모든 것이 포함된다.
경제란 과연 무엇인가? 대부분의 독자들이 납득할만한 가장 직관적인 대답은 경제가 돈과 관계된 모든 것이라는 정의일 것이다. 그런데 경제가 돈에 관한 것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물리적인 돈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다. 지폐가 되었든 금화가 되었던 혹은 일부 태평양섬에서 통용되는 돌이든 간에 물리적 상징일 뿐이다. 돈이란 나와 같은 사회에 사는 사람들이 나에게 빚진 혹은 그 사회의 자원중 얼마만큼이 내 몫인지를 나타내는 것이다. 돈을 비롯한 금융에 관한 권리, 예를 들어 주식, 파생금융상품들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매매 되는지를 다루는 은 금융경제학이라고 부르는 경제학의 큰 분야중 하나이다. 돈 혹은 자원에 대한 권리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여러가지이다. 돈을 버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직업을 갖는 것이다. 물려받는 방법을 제외하면, 돈을 소유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직업에 종사해서 돈을 버는 것이다. 따라서 경제학의 많은 부분은 직업에 관한 연구가 차지한다. 취업을 하고 보수를 얼마나 받느냐 하는 것은 개인이 가진 기술과 그 기술에 대한 수요가 얼마나 많은가에 따라 좌우된다. 임금과 노동환경은 또 정치적 결정에 깊이 영향을 받는다. 노동시간, 노동조건, 최저임금 등에 대한 규제는 모두 우리 직업에 영향을 주는 정치적 결정들이다.
직장을 통해 일하는 것 말고 이전을 통해 돈에 손에 넣을 수도 있다. 먼저 아는 사람이 해주는 이전이 있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베푸는 도움, 나이든 가족을 돌보는 행위, 결혼식 축의금 같이 이웃이 주는 선물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또다른 형태의 이전으로 기부가 있다.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자발적으로 이전하는 행위를 말한다. 경제학의 많은 부분은 자연스럽게 정부를 통해 이전을 다루게 되며 이를 공공 경제학이라 부른다. 임금이나 이전을 통해 자원을 손에 넣고 나면, 사람들은 그것을 소비한다. 우리는 일정량의 음식과 옷, 에너지, 집을 비롯해 기초적인 육체적인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재화를 소비해야 한다. 그리고 이보다 높은 단계의 정신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책, 악기, 운동, 기구, 텔레비전, 컴퓨터 등의 다른 재화도 소비한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머리를 자르고, 식당에서 밥을 먹고 해외여행을 하는 등 서비스도 소비를 한다. 따라서 경제학의 많은 부분은 소비에 관한 연구로 이루어져 있다. 사람들이 서로 다른 종류의 재화와 서비스에 어떤 식으로 돈을 분배하는지, 같은 종류의 다양한 재화와 서비스중 선택을 할 때에는 어떤 방식으로 하는지 광고에 의해 조종 당하거나 정보를 얻는지, 기업들이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어떻게 돈을 쓰는지 등 무궁무진한 연구가 이루어지는 분야이다.
애초에 재화와 서비스가 생산되지 않으면 소비도 있을 수 없다. 농장과 공장에서 생산되는 재화, 사무실과 가게 등에서 생산되는 서비스 말이다. 이것이 바로 생산의 영역인데 이를 다루는 경제학 분야는 교환과 소비를 강조하는 신고전주의 경제학파가 1960년대부터 주류를 이루면서 도외시 되어왔다. 일정량의 노동과 자본이 합쳐지면 재화와 서비스가 생산되어 나온다는 정도이다. 생산영역의 변화야말로 사회변혁의 가장 강력한 원동력이 되어 왔다. 나는 방법론이나 이론적 접근법이 아닌 다루는 대상으로 경제학의 영역을 규정하고 성격을 정의해야 한다고 믿는다. 경제학이 다루는 대상은 경제여야 한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인생,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관해서가 아니라 돈, 직업, 기술, 국제무역, 세금 등을 비롯해 우리가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고,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수입을 분배하고, 그 결과 나온 생산물을 소비하는 것과 관계되는 연구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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