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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정심, 나를 지켜내는 힘( 토마스

생각과 느낌

사람마다 기질이 다르고 체질이 다른 것은 맞다. 수천년된 인도의 민간의학 아유르베다에서는 사람을 바타, 피타, 카파라는 세가지 체질로 나눈다. 바타는 공기, 피타는 불, 카파는 흙을 상징한다. 바타와 피타의 기질이 많은 사람은 더 불안하고, 신경질적인 경향을 보이는 반면, 카파 체질인 사람은 여간해서 흔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기질과 체질은 조정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평온한 사람들을 지루하다고 한다. 사람들은 지루함과 평온함을 혼돈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익숙한 분위기에서 살아가며, 스스로를 변화시키려고 하지 않는 방어적 경향이 있다. 철저히 무너져본 후에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일은 극중에서는 신선한 전환으로 보일지 몰라도 현실에서는 고통 그자체다. 모든 사람은 언제든지 인생의 방향을 돌이킬 수 있다. 꼭 바닥으로 추락해봐야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일에 무관심한 것과 평온한 것은 다르다. 뭐든 일에 시큰둥한 사람들이 간혹 평온한 척 하지만 그런 평정심은 우울증에 가깝다. 이런 선입견을 가진 사람은 평정심을 이해하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마음 편하게 있다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까봐 두려워 한다. 차분하고 평온한 사람은 성급하게 서두르는 사람보다 성공할 확률이 더 많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모든 것이 문제로 다가온다.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 구분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온한 태도로 임하면 스트레스로 인해 문제로 보였던 것들의 거품이 사라지고 진정한 문제가 뚜렷이 부각되면서 쉽게 해결할 수 있게 된다. 평온한 상태에서 사람들은 더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으며, 진짜 문제에 대한 더 좋은 해결책을 발견하게 된다. 내면의 평온에 이를 수 있는 두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외적인 방법으로 외부세계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만듦으로써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는 일이다. 외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외부환경을 자신의 마음에 들게 구성하면 평화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평정심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은 내적인 변화를 꾀한다.

 

외부세계의 일들이 예상에서 크게 벗어날 때마다 우리는 불안해진다. 화가 나고, 걱정하고, 실망하게 된다. 내부세계와 외부세계 사이의 긴장은 스트레스가 된다. 우리의 기대를 현실에 맞추거나, 반대로 현실을 기대에 맞춰 외부세계를 우리의 생각에 맞게 만들 때 조화로움에 도달할 수 있다내적인 방법과 외적인 방법은 서로 배타적이지 않다. 우리는 생각하는 대로 느낀다. 우리의 느낌이 생각에 좌우된다는 말, 합리정서치료와 인지행동치료, 이것은 우리는 생각한 대로 느끼고 행동한다는 모토에 기반을 둔 치료 방법이다.사방에서 생각, 감정, 행동 사이의 연관관계가 나타나지만, 사람들은 그 연관성을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미국의 심리학자 앨버트 엘리스는 우리의 기분이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생각에 좌우된다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이 관계를 ‘감정의 ABC’라고 불렀다. 여기서 A는 생각을 활성화 시키고, 자극하는 사건 activating event이고, B 생각, 확신 belief, C는 결과 즉, 기분과 행동consequences을 가리킨다. 원인의 사슬은 A에서 B를 거처 C로 나아간다. 임의의 사건이 생각을 일깨우고, 그 생각이 감정과 행동을 유발하는 것이다. 이 사슬을' ABC사고' 라고 부르자. ABC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생각을 도구로 감정과 행동을 조절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AC사고를 한다. 외부의 사건이 곧바로 감정과 행동을 유발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기분과 행동이 외적환경에 달려있는 것이 맞다면, 나는 그 환경에 속수무책으로 내맡겨진 존재이다. AC사고는 일상적인 언어습관에도 반영된다.  ‘그 사람이 날 화나게 했어. 그 사건이 날 실망시켰어, 그 일이 날 기쁘게 했어’라는 말도 AC사고가 반영된 말이다. 이를 ABC사고로 바꾸면 ‘ 나는 그 사람 때문에 화가 나지만 잘 대처할 수가 있어, 그 사건이 일어난다면 괴롭겠지만, 평정심을 유지할 수가 있어’가 될 것이다. AC사고로 인해 우리는 필요 이상으로 괴로워하고, 화를 내고, 겁을 먹고, 우울해 한다.

 

미국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은 처음으로 우울증을 예방하는 프로그램을 계발했다. 누군가 상대에게 ‘이 바보 천치야’라고 말한다면, 대부분 그 말을 들은 사람이 기분이 상해서 어떻게든 되받아칠 것이라고 예상한다. '바보 천치'라는 말을 들은 상황에서 ’맞아요. 나도 때론 바보라는 생각이 들어요' 혹은 ‘그나 저나 가족들은 다 잘계시죠’라고 대답하면서 평온한 표정을 짓는다면, 다들 어리둥절할 것이다. 익숙한 사고와 기분, 행동이 고착되어 있는 한, 상황이 행동을 결정한다는 오해를 당연시 하게 된다. 사고, 감정, 행동이 유동적이고 자유롭다면, 아무도 당신이 어떤 방응을 보일지 섣불리 예측할 수 없다. 전과 다를바 없이 행동할 수도 있지만,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행동하면, 다른 사람들은 물론 자기자신 까지도 놀라게 할 수 있다. 상황은 절대로 생각과 기분과 행동을 결정하지 않는다. 상황은 우리 모두에게 선택을 허용한다. 

 

우리는 상황을 과장되게 평가함으로써 마음과 평온을 잃어버릴때가 많다. 그냥 사실에 충실하지 않고 현재와 과거, 미래를 각색하고 괴로워 한다. 과장된 평가는 감정이 강하게 실린 표현에도 반영된다. '끔찍해, 끝장이야, 죽인다, 대박이야'. 우리는 일상에서 이런 말을 자주 접한다. '만날, 늘, 완전히, 결코, 절대로, 아무도...' 등의 말에도 강한 과정이 숨어 있다. 이런 표현들은 말하자면 예외가 없다는 뜻이다. '견딜 수 없다. 참을 수 없다'는 외침은 이렇듯 상황을 과장하고 부풀리는 것에서 비릇된다. 사실을 과장하고, 상상 속에서 불행한 모습을 그리고 나면, 이제 그런 상황을 견딜수 없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를 죽이지 못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견딜수 있다. 다만 과장된 언어와 도를 넘는 상상으로 스스로의 삶을 힘들게 만들고 있을 따름이다. 이런 태도의 결과는 바로 스트레스다. 사람들이 죽고, 회사는 망하고, 친구들은 우리를 떠난다. 이런 사건들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삶은 늘 그랬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힘든 상황을 무사히 이겨냈다. 부부나 연인이 헤어지는 경우도 비일비재 하다. 매일 수많은 커플들이 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