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1200년부터 이스라엘 북쪽 현재 레바논지역에서 해안선을 따라 비블로, 시돈 등 페니키아 도시국가가 출현했다. 페니키아의 바다 사람들은 대서양과 아프리카 해안까지 항해하여 지중해 세계를 확장했다. 페니키아인은 헤라클레스의 기둥이라 불렸던 지브롤타 해협 부근의 해류와 바람에 대한 그들만의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기원전 9세기말에는 북아프리카, 에스파냐, 사르데냐, 카르타고에 식민지를 건설했고, 카르타고는 그 후 서지중해에서 가장 중요한 해양국가가 되었다. 페니키아인이 이룬 가장 큰 업적은 알파벳이었다. 기원전1100년에는 설형문자를 사용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설형문자를 알파벳으로 대체해 갔다. 글자가 소리에 상응하는 진정한 알파벳이었다. 페니키아인의 문자체계와 수의 체계는 그리스인을 거쳐 로마인이 개조하여 30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사용하고 있다.
페니키아인이 지중해 세계를 확장하고 있을 때, 세계 최대의 분쟁지가 될 땅으로 이주한 새로운 민족이 이스라엘이다. 기원전 13세기 중반 가나안 땅으로 이주할 때, 이스라엘은 부족 연맹이었다. 2세기후 이웃부족의 위협을 받은 이스라엘 민족은 사울을 최초의 왕으로 옹립했다. 사울의 후계자 다윗은 이스라엘 부족을 단일국가로 통일하고, 영토를 유프라테스강과 홍해까지 확장했다. 다윗과 그의 아들 솔로몬시대에 왕국은 번성했다. 페니키아와 이스라엘은 평화로운 공존관계를 유지했다. 기원전 926년 솔로몬 왕이 죽고 유다왕국과 이스라엘 왕국으로 분리되었지만, 이스라엘은 근동의 왕국이 재건될때까지 군사강국이었다.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 왕국이 건설되었을 때, 이스라엘은 함락 되었다. 바빌로니아왕 네부카드네자르는 추방된 왕의 조카 시드가야를 왕으로 내세웠다. 기원전 597년의 일이었다.
바빌로니아인의 관점에서 보면 네부카드네자르는 위대한 통치자였다. 이집트, 팔레스타인, 페니키아 도시국가들을 차례로 정복했고, 왕국의 최고신 마르두크를 위해 7층 높이의 탑인 지구라트를 건설했다. 구약성서에서는 인간의 교만을 상징하는 바벨탑으로 나온다. 유대문화는 지구상에 사라졌지만 바빌론 유수 (BC 598(또는 597)년과 BC 587(또는 586)년 바빌로니아가 유대왕국을 정복한 뒤 유대인을 바빌로니아에 강제로 억류시킨 사건. Babylonian Captivity라고도 함)를 통해 유대인들은 새롭게 태어났다. 최초의 일신교인 유대교와 십계명을 근간으로 하는 도덕규범으로 그들은 서양문화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 일부 유대인은 신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이스라엘로 돌아갈 꿈을 꾸는 유대인이었다. 기도와 단식과 율법공부로 의례를 대신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작은 부족이야기는 ‘토라’ (넓은 의미에서 하느님이 이스라엘, 즉 유대백성에게 내린 계시의 본질이며, 하느님이 인류를 위해 계시한 가르침 또는 지침이다. 토라는 종종 〈구약성서〉 처음 5권을 가리키는데 국한되며, 율법 또는 오경(Pentateuch) 이라고도 한다)가 되어 유대교와 기독교 , 이슬람교츼 초석이 되었다. 솔로몬 신전이 있는 예루살렘은 유대교, 그리고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성지가 되었다. 이슬람교도에게 예루살렘은 메카와 메디나 다음으로 중요한 예언자의 집으로서 무하마드가 신의 계시를 받은 곳이다.
키루스대왕이 메디아와 바빌론에서 페르시아 제국을 건설한 후 키루스의 아들 캄비세스 2세는 기원전 525년 이집트를 정복했다. 캄비세스 후계자 다리우스1세는 영토를 최대한 확장했다. 페르시아 제국은 영토가 동에서 서까지 4830킬로미터에 이르렀다. 서부에서 반란이 끊이지 않았고, 다리우스는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수도와 지역수도 사이 도로를 건설했다. 도로가 건설되자 다리우스는 24킬로미터마다 하나씩 총 111곳의 초소를 지었다. 24킬로미터는 남자가 도보로 하루에 갈 수 있는 거리었다. 훗날 다리우스의 도로는 오히려 적이 그를 치러오는 통로가 되었다. 페르시아 제국은 이 길로 온 작은나라 마케도니아의 지배자 손에 무참히 쓰러져갔다.
지중해의 소용돌이와는 멀리 떨어진 또다른 곳에서 새로운 문명이 움트고 있었으니, 중국이다. 지중해와 마찬가지로 철을 주조하는 능력이 사회적, 정치적 질서를 빠르게 재편했다. 기원전 5세기말 중국은 일곱명의 왕이 패권을 다투는 전국시대였다. 새로 등장한 무기들이 전쟁의 성격을 바꾸었다. 석궁, 철제 칼, 갑옷이 청동을, 기병이 전차를 대체했다. 기원전 246년 13세의 나이로 제위에 오른 영정嬴正은 기원전 221년 전국을 통일했다. 진나라 첫황제 진시황이다. 전쟁무기가 대량 생산되면서 기원전 5세가 폭력이 난무하고, 암흑기가 계속 되었다. 그러나 세기말로 접어 들면서 인류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던 중요한 철학체계가 등장했다. 중국에서는 전국시대 동안 노자(기원전 604-531년)와 공자(기원전551-479년)로 대표되는 제자백가 사상이 꽃 피었고, 인도에서는 붓다 (기원전500년무렵)가 인간의 깨달음을 설파했다. 페르시아에서는 그보다 1세기전에 자라투스트라 (조로아스트: BC 628경 ~ 551경.이란의 종교개혁자, 조로아스터교의 창시자)가 출현했다.
그리스에서는 소크라테스 (기원전469-399년)와 플라톤(기원전429-347), 아리스토텔레스 (기원전384- 321)를 비롯한 고전 철학자들이 사물의 원리를 밝히고자 노력했다. 이떤 이는 이 시대를 인간사유의 기본 방식이 확립 되었다고 해서 기축시대라고 부른다. 고대 계몽시대라 할 수 있다. 고대제국은 철제무기를 제조 하는 평민에 굴복했다. 상인과 반란군과 피란민이 세운 새로운 도시국가가 그 자리에서 솟아올랐다. 100년도 지나지 않아 세계인구 절반 이상이 편입될 이 두 제국의 공통 기반은 바로 비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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