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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우리 모두의 이야기(패멀라 D.

철의 시대 : 문명의 시작1

기원전 21세기에 인간은 새로운 금속, 철을 발명했다. 철은 많은 것을 바꾸었다. 보통 사람도 새로운 도구를 만들어 많은 땅을 경작할 수 있게 되었고, 강력한 제국의 군사엘리트에 대항해 무기를 만들수도 있었다. 기원전 1250년 무렵 히타이트와 이집트, 시리아, 미케네는 청동기시대 권력과 문화의 중심지였다. 기원전1200년에서 기원전1150년 사이의 50년 동안 청동기시대의 제국들이 몰락한 첫번째 이유는 자연재해 때문이었다. 이 시기 유독 아이슬란드에서 지진과 대규모 화산폭발이 잦았다. 기원전1200년 무렵 예전에는 연료로 나무와 동물 배설물을 사용했지만, 지금은 숯을 사용했다. 숯의 탄소와 결합한 철은 청동을 대체할 만큼 충분히 강하다. 이 발견으로 기원전12세기 삶의 중요한 두 영역, 곧 전쟁과 농업이 성격이 변했다. 선사시데 우리 조상은 항철석을 갈아서 동굴 벽화에 색을 입혔다. 그 후에는 토기의 유약으로 썼다. 철은 지구를 원소중에서 가장 풍부하며, 지구핵의 90%를 차지한다.

 

지원의 감소와 자연재해, 질서붕괴로 고대는 암흑기로 들어갔다. 자연이 적이 되자 인간은 서로 등을 돌리고 정복과 생존을 위해 온 힘을 다해 싸웠다. 힘센 부자들이 전유하던 무력정복이 배고픈 대중도 할 수 있는 영역이 되었다. 철무기를 든 침략자들의 모습은 해석과 피난민의 중간쯤이었다.이들은 어쩔수 없이 고향을 떠난 피난민의 모습이었다. 10년에 걸쳐 마케도니아와 현재 시리아에 해당하는 히타이트의 중요한 도시들이 모조리 파괴되었다. 기원전 4세기에 근동에서 이집트와 경쟁할 수 있는 상대는 히타이트 제국뿐이다. 현재 시리아 연안에 자리잡은 우가리트는 당시 히타이트의 속국중에서 가장 번성한 도시국가였다.

 

바다사람들이 근동문명을 유린하는 동안 도리아족(고대 그리스는 약 20개의 폴리스로 구성되었는데, 그 중 스파르타에 수도를 둔 도리아족(Dorians)의 라케다이몬이 최고의 국가적 교육을 발달시킨 나라이다. 북방에서 그리스 본토로 이동해 온 도리아족은 선주민족先住民族을 정복하고, 이들의 문화에 이집트 문화의 영향을 더하였다) 은 그리스 청동기시대 미케네 문명을 파괴했다. 주요도시는 파괴되었고 인구는 많이 감소했다. 그리스 사회는 소규모 농경가축의 시대로 회귀했다. 글쓰기가 거의 500년동안 사라졌다. 도리아족은 그리스 중심에 정착해서 점차 펠리폰네소스와 소아시아로 진출 했다. 그들은 역사상 최고의 군사기술을 개발한 스파르타 등 여러 소국가로 분화했다.

 

기원전 1000년무렵 생존자, 피난민, 반역자들이 지중해를 따라 다시 작은 국가들을 세웠다. 그리하여 이집트, 로마, 포에니, 그리스라는 도시국가가 탄생했다. 도시국가 대부분은 외적의 침략을 방어하고자 언덕위 도시 한가운데 세워졌다. 높은 도시라는 뜻의 아크로폴리스가 바로 정치, 행정, 종교의 중심이었다수메르의 도시국가처럼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은 정치적으로는 독립되었지만 언어와 종교, 문화는 공유 했다. 그리스 시민은 동쪽의 제국, 특히 전제주의 나라 페르시아는 야만적인데 반해 자신들은 정치적으로 독립적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두 도시국가 즉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고대 그리스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다. 아테네는 도시국가의 평의회 구조로부터 민주주의의 본보기를 만들어냈다. 스파르타도 시민이 뽑은 평의회가 통치한다는 점은 동일하다. 하지만 소수시민집단과 다수의 헬롯집단으로 나눈 엄격한 계급체계를 유지했다. 헬롯은 국가가 소유한 국유노예였다. 기원전 5세기무렵 시민 1만명당 대략 20만명의 농노가 있었다. 스파르타 남자들은 일곱살이 되면, 공용 막사에서 국가에 의해 양육되었다. 스파르타는 가장 강력한 철광을 장악했고, 대장장이들은 치명적인 무기를 만들어냈다. 기원전5세기 최대의 맞수였던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페르시아라는 강력한 공동의 적 앞에서 단결하지 않을수 없었다.

 

페르시아와 그리스의 무력충돌은 기원전 546년 페르시아의 키루스 대왕이 이오니아를 정복하면서 시작 되었다. 그리스와 페르시아전쟁이라고도 하는 1차 페르시아전쟁은 기원전 490년에 시작되었다. 페르시아 정예부대 2만5000명과 아테네보병 7200명의 싸움에서 아테네가 승리했다. 페르시아는 10년후 크세르크세스대왕은 1200척의 대군을 태우고, 그리스로 밀고 들어왔다. 그리스는 사람 하나 다니기 어려운 좁은 산길 테르모필레에서 페르시아에서 항전했다. 그리스의 마지막 위대한 패배였다. 페르시아군대는 시작부터 기병과 궁수라는 정예군으로 무장했다. 반면에 그리스군은 긴 창날과 칼로 무장한 보병 위주였다. 기원전 490년 8월 페르시아와 그리스 연합군이 마라톤이 가까운 평원에서 팽팽하게 대치한다. 페르시아는 30만 정예기병이다. 그리스 연합군은 보병 3만이다. 그러나 그리스에게는 난공불락의 팔랑크스대형이 있다. 전투의 진정한 승리자는 그리스 시민권력이었다. 고대 그리스 세계에서 성장한 민주주의는 로마 공화정에서 다시 출현하여 이후 식민지 북아메리카에서 만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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